[Opinion] 메리 카사트가 '모자상'을 그린 진짜 이유 [미술/전시]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 ‘모성애’일까?
글 입력 2022.07.1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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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카사트, <첫 번째 쓰다듬기> (1891)

 

 

어머니를 향해 손을 뻗는 아이와 그 손에 부드럽게 입 맞추는 어머니. 사랑에 가득 찬 두 사람의 눈빛 교환까지. 어머니와 아이 사이 유대감이 돋보이는 이 그림은 여성 인상주의 대표 화가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1845~1926)'의 그림이다.

  

메리 카사트는 '모자상'을 다수 남긴 화가로 유명하다. 흔히들 그녀를 '19세기 남성 미술가들이 표현하지 못한 따뜻한 여성의 감수성과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모성애라는 특별한 감정을 표현한 화가'라고 부른다.

 

그녀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당시 미국 여성이 경험할 수 없는 유럽 유학길까지 올랐다. 그러나 상류층인 카사트도 여성이란 이유로 정식 미술 교육을 받는 일이 어려웠다. 카사트는 파리 에콜 데 보자르와 같은 학교에도 입학할 수 없어서 개인 아틀리에에서 미술을 배웠다. 여성으로서 사회 활동 제약이 많아 자신의 그림을 자유로이 펼칠 수 없던 19세기, 메리 카사트는 '모자상'을 그리며 자신의 꿈을 펼치기로 한다.

 

 

 

여성적 '공간'



미술사학자 그리젤다 폴록은 <모더니티와 여성성의 공간>이란 저서에서 '당시 파리의 남성과 여성은 사회적, 경제적 차이에 따라 이들이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의 차이가 분명히 있었으며, 이러한 차이에서 비롯되어 남녀가 누릴 수 있는 공간 경험 자체가 극명히 달랐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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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 모리조, <테라스에서>(1874)

 

 

‘여성은 공공공간 점유에 제약이 있었다’는 폴록의 주장을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이 뒷받침한다. 메리 카사트와 동시대 활동한 또 다른 인상주의 화가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 <테라스에서> 여성은 난간에 기대 있을 뿐, 밖을 자유롭게 배회하는 건 남성들뿐이다. 공공공간 점유 방식에 있어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걸 드러낸다.


19세기 한가로이 도시의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을 'flâneur(플라뇌르)'라고 샤를 보들레르가 정의했다. 이 말에 여성은 해당하지 않는다. 오직 부르주아 남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당시 여성 혼자 밖을 돌아다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성 혼자 밖을 돌아다닌다면 주위에서 매춘부 여성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여성은 오직 집 안에 있어야 했고, 외부 활동을 하더라도 누군가를 대동해야만 했던 한계가 있었다.

 

 

 

여성이란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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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네, <잠자는 비너스> (1510)

 

 

19세기 여성이 얼마나 종속된 존재였는지 알 수 있는 건 여러 작품에도 드러난다. 여성은 오로지 그려질 관음의 '대상'일뿐이었다. 여성은 남성 예술가의 성적 욕망의 투영 대상이거나 관심거리였다. 따라서 여성 스스로 무언가를 응시하기보다 남성 시선의 대상으로 '타자화'된 모습으로 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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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

 

 

그래서인지 에두아르 마네가 <올랭피아>를 대중들에게 선보였을 때, 많은 부르주아 관객은 분개했다. 매춘부 여성이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이 자유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건 상상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작품 속 여성은 관객을 향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 가만히 앞을 바라본다. 이를 본 부르주아 관객은 매춘부 여성과 눈을 맞추자, 자신의 비도덕성에 대한 가책을 느껴서 그리고 남성을 똑바로 응시한 여성이 남성의 권위에 도전했다고 여겨서 어딘가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여성이란 이유로 사회 활동을 제한받던 시대, 메리 카사트는 여성만의 움직임을 찾으면서도 화가로서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여성을 내세우는 자신의 그림이 사회로부터 멸시받지 않기 위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 결과 메리 카사트는 ‘가정의 내밀함’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 가정에서 책을 마시고, 책을 읽는 여성의 모습을 주로 그린다.

 

아이와 함께 있는 ‘모자상’을 그린 이유도 내밀한 가정 환경이라는 주제의 연장선일 것으로 추측한다.

 

 

 

주체성을 갈망한 메리 카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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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카사트, <칸막이 관람석에서> (1878)

 

 

메리 카사트는 주체적인 여성을 갈망했다. 그녀의 주체성을 단단히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칸막이 관람석에서>라는 작품 속 여성은 응시의 주체이다. 망원경을 꼭 쥐고 스스로 오페라 공연을 관람한다. 망원경을 쥐어 솟아난 힘줄은 여성 관람객의 강한 주체성을 드러낸다. 여성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는다. 굳건히 자기의 시선을 지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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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특별 관람석> (1874)

 

 

동시대 남성 작가 르누아르가 그린 작품 속 여성을 살펴보자. 르누아르의 작품 속 여성은 응시의 대상이다. 르누아르의 여성은 하얗고 밝은 피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어 관능적인 모습이다. 반면, 카사트 작품 속 여성은 검은색 의상을 입어 몸의 실루엣만 드러낼 뿐 관능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칸막이 관람석에서>의 여성처럼 메리 카사트는 자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다. 일생 남들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닌 자기 의지가 강했던 메리 카사트다. 가족과 사회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미술을 전업으로 삼기 위해 파리로 떠났고,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미술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카사트는 사회적 제약에 부딪혔다. 그녀의 그림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사회가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그림을 그려야 했다. 필연적인 이유에서 모자상을 그릴 수밖에 없었을 테다.

 

메리 카사트는 평생 홀로 살았다. 그녀가 진정으로 모성애의 특별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면, 그녀 역시 결혼하여 아이를 낳지 않았을까. 카사트는 여성의 역할을 ‘어머니’로만 한정 지어서,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을 ‘모성애’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했을 것이다.

 

*

 

여성만이 겪을 수 있는 임신과 출산은 ‘생명의 탄생’이라는 말 아래 축복받는다. 그로 인해 아이를 위한 여성의 헌신도 고귀한 것으로, ‘모성애’라는 말도 거룩하게 칭송받는다.

 

하지만,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와중 모성애를 피로로 느낄지도 모른다.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참된 사랑도 있지만, 모성애는 사회가 강요해서 만들어진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세기부터 여성이 느끼는 ‘모성애’라는 감정이 사회적으로 학습되어서 주입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19세기 남성 화가들이 표현하지 못한 감수성’이란 말이 불편하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엄마와 아빠라고 다르지 않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육아에 참여하는 건 당연한 일, 남성이 육아에 참여하는 건 대단한 일로 보는 시선은 거둬야 한다.

 

남성과 여성 인간이라는 공통 존재에 속한다. 남성과 여성 이분법적으로 대립하여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 가장 좋은 접점은 무엇일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개개인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 있게 낼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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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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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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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18
    • 모성애를 주입시키려고 하는 미디어에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남자와 여자는 과학적으로 다르지만 그게 사회적인 성 역할의 근거가 될수는 없죠. 저도 에디터님의 의견과 같이 모성애가 여성에게만 두드러지는 것은 사회적 문화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회가 만들어낸 모성애를 더더욱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요. 덕분에 제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하고 목소리를 내야하는 지 다시 한 번 다짐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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