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10년대 힙합 씬의 상징적인 앨범, 빈지노의 '24 : 26' [음악]

글 입력 2022.07.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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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은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우리는 거리를 지나다니다 자연스럽게 힙합 음악을 접한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위화감 없이 힙합/알앤비 뮤지션을 마주친다.

 

특히 힙합의 인기에 박차를 가한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 더 머니>는 재능 있는 신인 래퍼들에게 등용문과도 같은 역할을 꾸준히 수행한다. 뜨거운 열기와 열정을 자랑하던 락페스티벌은 그 명성과 위상을 힙합 페스티벌에게 넘겨준 지 오래다. 사실 지금 대세는 힙합이라고 말하기엔 늦을 정도다. 그만큼 국내 힙합씬은 한국의 대중문화에 충분히 영글어진 상태다.


대중친화적 문화로 거듭난 한국 힙합 씬에서 빈지노(Beenzino)라는 아티스트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그의 첫 솔로 앨범 [24 : 26] 역시 마찬가지다. 본 앨범에 담긴 세월에서 힙합이 대중문화에 깊게 스며드는 과정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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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노가 활동하던 2010년대 힙합씬은 한국 힙합 역사상 대단히 뜨거웠던 시기다. 1990년대는 김진표, 드렁큰타이거, 서태지와 듀스 등 1세대 힙합 뮤지션들이 각각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 문화 속에 힙합이라는 씨앗을 뿌렸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은 온오프라인,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에서 소울컴퍼니, 무브먼트와 허니 패밀리 등을 중심으로 뿌리내리는 시기였다. 빈지노가 등장했던 2010년대 힙합씬은 단단한 기반 위에 여러 가지를 치기 시작한 시기와 같았다.


당시 힙합 마니아들은 온라인상에서 래퍼들의 혁신적인 시도를 두고 뜨거운 논쟁을 펼쳤다. 재치를 극대화하는 스윙스의 간결한 펀치 라인이 앞으로의 힙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대중을 겨냥한 발라드 사운드가 가미된 발라드 랩은 힙합이 갖고 있는 정체성을 격하시킨다는 냉담한 시선이 오가기도 했다. <쇼미 더 머니>의 시작과 파급력이 힙합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경직된 상태에서 진행되었기에, 힙합 마니아 사이에서 초기 <쇼미 더 머니>는 원수 같은 존재기도 했다. 한국 힙합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정이 한꺼번에 분출하던 시기였다.

 

빈지노는 격렬하고 거친 에너지가 태동하고 있던 시기에 등장했다. 그렇지만 그의 커리어는 불안정하지 않았다. 겉보기엔 오히려 탄탄대로였다. 그는 피처링, P'skool의 2집 앨범 [Daily Apartment] 객원 멤버, Hot Clip 등 다양한 활동으로 두각을 나타낸다. 이후 2010년 재즈힙합 기반 프로듀서 시미 트와이스와 함께 재지팩트를 결성하고, 대망의 앨범 [Life's Like]을 발매한다. 재지한 비트 위에 풋풋한 사랑, 가족,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수려한 플로우로 전달하여 그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2011년 빈지노는 동시대 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힙합 마니아들 사이에서 실력을 증명한 도끼, 더콰이엇이 창설한 일리네어 레코즈에 합류한다.

 

 

 


24살부터 26살까지 빈지노 자신이 겪은 감정을 담은 앨범 [24 : 26]은 여러 방면에서 과도기적인 앨범이다. 24살부터 26살은 학생 신분을 정리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나이다. 빈지노에게도 재지팩트의 풋풋한 이상을 말하는 청년에서, 일리네어 레코즈 수장으로써 힙합씬의 스타로 거듭나는 시기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마냥 순수하지 않지만 젊은 기운이 고스란히 담긴 앨범이다. 매력적인 여자가 자주 신고 다니는 신발에 대한 곡 Nike Shoes나 어장 관리를 재치있게 해석한 Aqua Man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남녀 사이의 기류를 보여준다. 지고지순하고 간질거리는 사랑의 모습이 가득 담기던 재지팩트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스웨그를 보여주는 곡 Profile에서 일리네어 레코즈 멤버들과 함께 하면서 힙합씬의 정점을 찍고 있던 본인의 위상을 자랑하기도 한다.

 

[24 : 26]은 힙합의 대중화에도 기여한 앨범이다. 힙합의 문법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대중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들을 담아냄으로써, 대중화라는 동일 선상에 놓여있던 '발라드 랩'이 힙합 마니아에게 들어야 했던 야유를 가볍게 비껴가는 앨범이다. 또한 프라이머리, 진보, 시미 트와이스 등 개성 강한 프로듀서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비트 위에서 느긋하고 여유로운 래핑을 덧칠하면서 기존의 힙합이 갖고 있던 거칠고 투박한 이미지와 구별된다. 빈지노의 수려한 외모나 센스 넘치는 팬 서비스를 차치하더라도,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24 : 26]은 힙합 씬에 여성을 비롯한 젊은 세대 리스너를 유입시키는 데 일조했다.

 

 

[24 : 26]은 빈지노의 피상적인 면만 비추지 않는다. 빈지노는 자신만이 말할 수 있는 솔직한 심정, 고뇌 등까지 담아내며 고유한 색채를 뿜어낸다. I'll Be Back은 정석적인 커리어를 쌓아 올리면서 스스로가 느꼈던 부담이나 자신에게 찾아온 슬럼프를 토로하는 곡이다. 죽음에 관한 생각을 풀어낸 If I Die Tomorrow는 여전히 많은 힙합 팬들에게 회자되는 곡이다. 가족, 터전에 관련한 내밀한 이야기부터 미술과 음악 사이에서의 정체성을 담은 곡으로, 듣다 보면 그의 삶이 오렌지색 주마등에 스치며 생생하게 전달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 풀어낸 가사들은 그의 스타성이 더욱 빛을 발하게 한 요소다. 힙합을 분리해도 그에게 남아 있는 지적인 아티스트적 면모, 빈지노만의 트렌디한 분위기는 정직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진솔함 위에서 틔워낸 것들이다.

 


 


[24 : 26]의 앨범 커버 디자인을 담당했던 아트 디렉터 차인철은 10주년을 맞이해 인스타그램에서 비하인드 이야기를 풀어낸 바 있다. 당시 빈지노는 자신의 처지가 낙타와 비슷하다 말했다고 한다. 불꽃 튀는 논쟁이 끊이질 않았지만 지금과 다르게 입지 자체가 비좁은 편이었던 한국 힙합 씬은 사막처럼 척박한 환경이기도 했다.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리스너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그를 낙타에 비유하는 건 적절한 듯하다.

 

묵묵히 사막을 걸었던 빈지노의 [24 : 26]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를 달콤한 오아시스로 안내하는 앨범이 되었다. 무성하게 가지를 친 뒤에도 한국 힙합씬은 여러 종류의 열매를 맺어내는 중이다. 여러 힙합 아티스트들이 저마다 개성으로 씬을 물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24 : 26]이 갖고 있는 바이브와 겹치는 앨범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범람하는 씬에서도 여전히 빈지노만의 고유한 개성이 드러나는 앨범이다.


공교롭게도 나의 나이는 24살 중반에 접어들었다. [24 : 26]이 발매된 10년 전 나는 힙합에 미쳐있었다. 급작스럽게 힙합이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새롭게 힙합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을 질투하기도 했다. 때로는 그전부터 힙합 마니아였다는 사실을 혼자 훈장처럼 여기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다시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지고 우스꽝스러운 기억이지만, 그만큼 힙합에 대한 사랑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24 : 26]은 그런 진한 사랑을 풍길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인 앨범이다. 이러나저러나 당시의 [24 : 26]을 열정적으로 청취했던 순간은 여전히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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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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