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영화]

글 입력 2022.07.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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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분화하고 있는 화산을 바라보며 익숙한 듯 심통이 난 듯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묵묵히 방에 쌓인 화산재를 닦아내는 한 소년이 있다. 한바탕 청소 후 등교할 준비를 마친 소년은 훌라춤을 연습하는 할머니와 그릇을 닦고 있는 엄마를 뒤로 한 채 친구들과의 약속시간에 늦을 새라 부리나케 달려가기 시작한다.

 

화산이 분화하는데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되고, 이런 언덕에 학교를 지은 것도 이해가 안 되는,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상황의 연속에 있는 듯한 코이치의 가고시마 생활도 어느덧 6개월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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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형 코이치는 엄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가고시마에서, 동생 류노스케는 아빠와 함께 후쿠오카에서 살고 있다. 각자의 지역에서 수영 수업 후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통화를 하는 코이치와 류노스케는 형제지만 서로 확연히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코이치가 온 가족이 모여 공원에서 나들이하는 꿈을 꿀 때 다코야키를 던지며 싸우는 부모를 피해 밥을 먹는 꿈을 꾸는 류노스케의 차이는 지금 생활의 만족도에 큰 기여를 하는 듯 보인다. 여전히 네 가족이 함께 살던 때를 그리워하며 가고시마에서의 생활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코이치와 달리 부모님이 매일 싸우던 때를 생각하며 지금 후쿠오카에서의 생활에 착실히 적응해나가는 류노스케는 한없이 밝아 오히려 짠하기까지 한다.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땐 외갓집에서 따뜻하고 안정적이게 지내는 형과 달리 무책임한 양육 현장의 정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인디밴드 아빠 밑에서 만족스럽게 지내는 류노스케의 모습에 속이 부글부글 끓을 뿐이다.

 

엄마 아빠에게 새 애인이 생기지 않도록 감시하며 하루하루 화산재를 견디는 코이치와 텃밭을 기르며 새로 사귄 후쿠오카 친구들과 불꽃놀이를 하며 지내는 류노스케. 그렇게 각자의 생활을 착실히 이어나가던 중, 화산이 폭발해서 네 가족이 다시 함께 살기만을 기도하는 코이치에게 솔깃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가고시마에서 ‘사쿠라호’가 260km로 달리잖아. 하카타에서 ‘츠보미호’가 260km로 달리고. 두 열차가 처음 서로 스치고 지날 때 일어나.”

“뭐가?”

“기적이.”

“기적?”

“엄청난 에너지가 생기거든. 그걸 본 사람들은 별똥별처럼 소원이 이뤄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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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통달한듯한 어른스러운 눈빛을 보여주던 코이치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린아이의 눈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한다. 엄청난 용기와 실천력을 가진 두 형제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기적을 향한 여행을 준비한다.

 

물론 기적을 향한 여행은 시작부터 많은 어려움에 부딪힌다. 형제의 다툼과 친구의 여행 포기 발언, 구마모토까지 가기 위한 교통비 마련 등 넘어야 할 산들이 있었지만, 주변 어른들의 도움과 아이들 스스로의 극복을 통해 7명의 아이들은 마침내 철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게 된다.

 

6개월 만에 만난 형이 마냥 반가운 류노스케와 예상치 못한 동생의 친구들을 보며 못마땅한 코이치 그리고 각자의 소원을 하나씩 마음에 품고 온 형제의 친구들은 두 열차가 서로 스치는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명당자리를 찾아 바쁘게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예상과 달리 밤은 빠르게 찾아왔고 낯선 환경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은 순찰을 하던 순경 아저씨의 눈에 띄게 된다. 하마터면 계획이 무산될뻔하지만 아역배우를 하고 있는 메구미의 순발력과 마음씨 좋은 노부부 덕분에 여행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활기에 온 정성을 다해 챙겨주는 노부부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아이들은 맛있는 저녁식사와 따뜻한 보금자리에 다시 기운을 되찾기 시작한다. 둥글게 모여 앉아 커다란 천 위에 각자의 소원을 꾹꾹 눌러 담아 적는 모습이 꽤나 기특하면서도 아이들의 간절함에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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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열차를 향해 떠나는 아이들은 착한 노부부가 사기라도 당할까 걱정을 하며 (아이들의 순수함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미리 생각해둔 명당자리로 신나게 뛰어간다. 저 멀리 마주 오는 열차를 발견하고 소원을 빌 준비를 하는 아이들. 커다란 굉음과 함께 혹시라도 소리가 묻힐까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아빠가 하는 일이 다 잘 되게 해달라고 소리치는 류노스케, 그림을 잘 그리게 해달라는 칸나, 배우가 되게 해달라는 메구미, 빨리 달리게 해달라는 렌토, 죽은 반려견 마블이 다시 살아나게 해달라는 신, 아빠가 파친코를 끊게 해달라는 유, 그리고 아무 소원도 빌지 못한 코이치.

 

처음 생각했던 소원과 다르더라도 그저 이 순간 가장 간절함을 담은 마음들을 온 힘을 다해 내뱉는 아이들 속에서 이 기적 여행을 가장 바라던 코이치만이 정작 소원을 비는 순간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일상의 사소하고 소중한 순간순간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할 뿐이었다.

   

 

 

매 순간 기적을 마주하는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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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가루칸’ 같은 영화이다. 형제의 외할아버지의 마음을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던 가루칸 떡은 아무 맛이 안 나는 듯하지만 은은한 단맛이 올라오는 가고시마 지역 전통 떡이다. 단조롭게 흘러가는 영화 속 은은하게 지나가는 장면들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마냥 어린애 같던 류노스케가 엄마와의 통화에서 보여주는 모습에 사랑을 느꼈고, 죽은 마블을 여행 내내 소중히 그리고 담담히 가방 속에 넣어 다니던 신은 끝내 기적을 이루진 못했지만 앞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가는 용기를 보여줬고, 메구미의 머리를 가만히 빗어주던 할머니의 손길에 큰 위로를 얻었고, 밍밍하기만 했던 가루칸 떡에서 은근한 단맛을 느끼게 됐다는 코이치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무에게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7명의 아이들 그 누구도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처음 모습 그대로 밝게 인사하며 각자의 집으로 뛰어가 창문을 열고 춤을 추고 장난을 칠뿐이다. 두 열차가 스쳐 지나가던 그 순간 누구보다 더 큰 기적을 발견한 코이치처럼 밍밍하기만 한 인생 속 은은한 단맛 같은 순간들을 마주하는 거야말로 어쩌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기적이 아닐까.

 

 

[송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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