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욕망의 끝에는 파국과 구원, 두 갈래가 있다 - 연극 육쌍둥이

인간이 가진 최대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마주 보다.
글 입력 2022.07.1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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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예술은 인간의 허를 찌른다. 감추고 싶었던 이면이 투영된 것처럼,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순간 불편한 감정이 몰려올 때가 있다. 기괴한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처럼 찜찜한 기분은 떨칠 수 없지만 결국 우리가 품고 살아가는 사회의 한 문제이자, 인간의 속성의 일부를 마주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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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쌍둥이'는 용산 망루 철거 사건을 모티브로 2014년 초연된 창작극이다. 용산 망루 철거 사건은 2009년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이다.

 

단순한 화재사건이라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철거민과 전국철거민 연합 회원들이 재개발 보상 문제와 관련하여 농성을 벌이다 경찰의 진압 과정에 저항하던 도중 화재가 발생했다. 7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을 입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극에서 불은 인간의 욕망으로 표현된다. 활활 타올랐다가 꺼지기도 하고, 쉽게 옮겨붙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쌍둥이는 ‘쌍둥이’라는 하나의 집단에 머무르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각자 개개인으로 존재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들을 하나의 족쇄로 묶어두는 것은 헤어 나올 수 없는 가난과 그로 인해 번져버린 욕망인 걸까.

 

육쌍둥이를 낳은 가난했던 고물상 아버지가 화재 사건으로 죽음을 맞이하자, 뿔뿔이 흩어졌던 육쌍둥이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조우한다. 얼굴에 똑같은 빨간색 무늬를 지니고 있는 이들은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욕망을 표출하며 부딪히기도 한다.

 

특히 가난한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300평의 땅이 재개발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들은 함께 기뻐하다가도 각자의 욕망에 눈이 멀어 이기심을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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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이 떨어져 보이는 막내 조진내와 그를 옆에서 돌보는 여인이 극에 긴장감을 더한다. 여인은 육쌍둥이를 낳은 친엄마는 아니지만 이들을 먹이고 재워준 엄마다. 스스로 경제적인 독립을 할 수 없는 조진내와 여인을 거두는 사람이 두 사람 몫의 재산까지 더 가져간다는 조건을 내걸자, 육쌍둥이는 조진내와 여인의 선택을 받기 위해 애를 쓴다.

 

이 과정에서 모자란 지능의 두 사람을 이용하는 장면이 가장 불편하면서도 기이하면서 인상 깊었다. 가장 동정심을 샀던 여인이 결국 육쌍둥이를 모두 죽이게 되지만 말이다. 결국 욕망의 부정적 속성에 잡아먹힌 인간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이토록 그 끝은 허무맹랑하다.

 

지능이 모자라 아무런 자기표현도 할 수 없을 것 같던 조진내는 돌연 “불을 꺼달라”라며 악을 쓴다. 몸속의 불 때문에 속이 뜨겁다던 조진내는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자기 자신이며, 그 과정에서 아버지 몸에 붙었던 불이 자신의 몸에도 옮겨붙었었다고 고백한다. 육쌍둥이의 욕망과 갈등이 고조될수록 조진내는 더욱 고통스러워하며 불을 꺼달라고 소리친다. 결국 다섯 형제를 죽인 조진내는 엄마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이 비극적인 거대한 서사가 지루하지 않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공연의 방식과 매끄러운 흐름 때문이었다. ‘육쌍둥이’는 그리스 비극의 구성 방식인 프롤로그, 파라도스, 에피소드, 스타시몬, 코모스, 엑소더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극에서 여인은 코러스 장으로, 육쌍둥이는 코러스로 노래와 춤을 담당하는 개개인이 모인 ‘무리’로 등장해 극에 재미를 더하며 흥을 올린다. 각자 의견을 개진할 때는 스탠드 마이크를 쥔 채 입장을 강조하며 개개인의 에너지를 더욱 키워나간다. 따라서 인물 한 명 한 명의 존재감도 클뿐더러, 무리로 움직일 때는 무대를 장악하는 수준의 에너지였다.

 

극의 내용을 떠나서 막이 내린 후 인상 깊게 남았던 또 다른 것은 배우들의 명연기였다. 배우들은 각자 맡은 인물의 개성과 특성을 살려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여섯 명의 쌍둥이를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어딘가 권위적이면서도 압도하는 힘이 있는 첫째 함화자, 여섯 명 중 가장 말도 많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하는 둘째 이기라, 최고로 똑똑하고 싶은 셋째 최고야,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갔음에도 가난의 냄새를 지울 수 없는 신기해, 술을 좋아해 늘 취해있는 박수처, 막내 조진내.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하는 코러스이자 엄마이자 여인. 이들이 가진 에너지와 연기력은 관객을 숨죽이게 만들고 무대를 장악하며 작품을 적나라하고도 풍성하게 드러냈다.

 

납작했던 활자가 배우들의 신체와 언어를 통해 생생하게 피어오르고, 덕분에 우리는 살아 숨 쉬는 메시지를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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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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