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

글 입력 2022.07.0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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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작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린 포토저널리즘의 선구자이다.

 

어린 시절 그림을 배우던 카르티에 브레송은 1930년대 초, 사진작가 외젠 앗제와 만 레이의 사진을 접한 것을 계기로 사진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카메라는 그에게 눈의 연장이었으며, 그의 작업 방식은 직관과 본능에 의거하여 진정성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사진보다 삶에 더 관심이 많다"라고 말했던 그는 일체의 인위성에 반대하며, 연출이나 플래시, 사진을 크롭하는 행위 등을 배제하는 대신, 대상이 형태적으로 완벽히 정돈되면서도 본질을 드러내는 순간에만 셔터를 눌렀다. 따라서 미학적 완전성과 일상적 휴머니즘을 동시에 담아낸 그의 작품 세계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될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작품 속에서 삶과 세상을 응시하는 예리하지만 따스한 시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전이 오랜만에 한국에서 열렸다. 그것도 <결정적 순간>에 실린 오리지널 프린트들을 볼 수 있는 기회로. 그래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을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금 카르티에 브레송의 그 따뜻한 시각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전시 소개 >


- 사진작가들의 바이블, <결정적 순간>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기회

- 시대의 변화와 세대의 차이를 넘어서는 사진예술의 정수

- 미국, 인도, 중국, 프랑스, 스페인에서 촬영된 삶과 역사의 순간들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정수가 담긴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발행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이 오는 6월 10일부터 10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결정적 순간>에 수록된 오리지널 프린트, 1952년 프랑스어 및 영어 초판본, 출판 당시 편집자 및 예술가들과 카르티에 브레송이 주고받은 서신을 비롯하여 작가의 생전 인터뷰, 소장했던 라이카 카메라를 포함하는 컬렉션을 소개한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는 레츠 추기경의 회고록에서 발췌된 문구인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서문 첫머리에 인용되었다. 그 원문은 이세상 모든 것에는 저마다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는 문구인데, 이 문장만큼 사진을 잘 표현하는 문구는 없을 듯하다.


2015년 DDP에서 보았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전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그 때 보았던 모든 사진들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진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전, 당시 타이틀이 '영원한 풍경'이었던 그 때의 인상은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다. 왜인지 명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나에게 브레송의 사진은 따뜻한 시각이 담겨 있다는 인상이 확고하다. 설정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렇게 날것의 몸짓과 표정을 담아내면서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번에 열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전은 '결정적 순간'이라는 타이틀로 열렸다. 그의 사진집 이름과도 같다. 그는 사진이 스스로 말하도록 내버려 두기만을 바랐다. 그런 그가 결정적 순간들을 담았다는 것은 충분히 기대해봄직 한 일이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2분 이상 바라볼 수 있는 사진을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결정적 순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보고 또 보고 곱씹으면서 보고 싶은 순간들을 담은 것이 아닐까. 그의 결정적 순간 사진집을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그런 기대감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이 무엇인지를 오로지 사진들로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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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정말 별 것 아닌 순간일 수도 있다. 시장에서 일하는 상인이 잠시 졸음이 쏟아져 하품을 하는 혹은 깜빡 잠에 든 순간 말이다. 그러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그 짧은 순간을 포착했다. 오른손으로 눈가를 감싼 상인의 옆얼굴과 벽면에 그려진 사람의 옆얼굴이 대응되면서 이 사진은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 사진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여행을 다니며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사진은 좀 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여행지에서 보통 찍는 사진은 그곳의 풍경이나 특색있는 건물이나 상징을 찍거나, 그곳과 어우러지는 나 자신을 찍지 아무런 관계가 아닌 타인을 찍는 일은 잘 하지 않는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본인이 사진작가였기 때문인지, 자신이 인상을 받는 순간이라면 그 어느 때고 셔터를 누를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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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세비야에서 찍은 이 사진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유럽 여행 중에 찍은 작품 중 하나다. 한창 젊은 나이의 그에게 세비야의 이 폐허 같은 장소와 아이들의 모습이 어떻게 비쳤던 것일까.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코멘트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상상력을 동원해 카르티에 브레송의 의중을 유추해볼 수 밖에 없다.


이 작품을 보았을 때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폐허처럼 보이는 벽의 부조화스러운 조화다. 거기에 더하여 부서진 벽면이 주는 운동감과 이리저리 장난을 치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아이들의 생동감이 왠지 모르게 재미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이 공간 속의 아이들을 보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감정이다. 생기 넘치는 아이들을 향해 그가 미소 지으며 사진을 찍었을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든다. 이렇게 피사체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너무나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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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회화적인 면이 잘 보이는 사진이다. 그가 최초에는 회화로 시작했다는 점이 이런 데에서 부각되는 듯하다.

 

작품 속에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지만 그 누구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카메라와 눈을 맞추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 작품의 재미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카메라를 등지고 앉아있는 것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같은 시각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굉장히 고무적이다. 네이버 바이브를 통해 들은 오디오 가이드에 따르면, 이 작품 속의 일요일은 프랑스에서 유급휴가가 처음으로 생기고 맞은 일요일이라고 한다.

 

이러한 작품의 배경을 듣고 본다면, 마치 이들이 바라보는 저 센 강 너머에는 더없이 꿈 같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들이 바라보는 그 아름다운 이상향이 무엇인지, 프레임 밖에서 보는 나도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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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인물을 담아내는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풍경 그 자체를 담은 사진들도 많이 찍었다. 이전 '영원한 풍경' 전시에서는 그런 풍경사진들도 많았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결정적 순간' 전시에서는 풍경보다 인물이 포함된 사진들이 더 많다고 느껴졌다. 그런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에서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풍경 사진은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다. 바로 이 작품처럼 말이다.


사진이지만 그림같은 작품이다. 폐허가 된 부둣가의 모습이 전체 프레임의 반절을 차지하여 하늘 및 허드슨 강 너머의 스카이라인과 대비되어 구도와 공간감의 배치가 절묘하다. 구도와 공간감의 배치가 절묘하여 그림 같기도 하고, 빛과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잘 포착하여 놀라운 시각적 효과까지 얻어냈다. 2015년에 이 작품을 보았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들어서인지 유독 눈길이 오랫동안 갔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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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정적 순간이라는 표현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가장 잘 어울리는 주된 이유는, 그가 역사적인 순간들을 잘 포착해냈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이 작품도 그가 포착한 결정적 순간 중 하나다. 그는 뜻하지 않게 1945년 독일 데사우에서 나치의 밀고자였던 사람이 잡혀 재판을 당하는 모습을 바로 카메라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군중들의 싸늘한 시선, 격앙된 한 여인 그리고 주눅 든 모습의 나치 잔당까지 한 프레임에 완벽하게 담겼다.


전쟁포로로 붙잡히기도 했던 그가 끝내 카메라를 되찾아 셔터를 눌러 전쟁의 참혹한 뒷모습을 담아낸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을 끔찍한 악몽을 겪었던 장소로 되돌아가는 것은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일이 될 수 있는데도, 그는 자신이 눈과 마음에 담았던 전쟁의 참상을 전해야겠다는 일념이 분명했던 듯하다.

 

그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에 그가 이런 결정적인 순간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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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포토저널리즘의 숙명을 안고 세계 곳곳을 다녔기에 당연히 역사적인 순간을 많이 마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그가 수많은 결정적인 순간을 남길 수 있었던 데에는 마치 운명이 그를 몰아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도에 도착하고 간디를 만나고 초상화를 찍고 헤어지는 그 길에 간디가 죽을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남긴 간디의 장례식 모습과 간디의 죽음을 알리는 네루의 모습은 어쩌면 그가 반드시 찍어야만 하는 운명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수많은 결정적 순간을 남겼지만, 바꿔 생각해보자면 그 결정적이고 역사적인 순간들이 그를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끌어들여 포착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전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런 순간들을 담아내야 했던 카르티에 브레송에게 삶이 녹록치는 않았겠지만 이건 정말 그의 운명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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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에 패배하여 국민당이 무너져가는 중국의 모습을 찍은 것 역시 그렇다. 그의 사진 속에 부연이 없더라도, 사진 속에 담긴 자욱한 안개 속의 자금성 풍경과 사람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마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당시 중국의 정세를 너무나도 선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민심을 잃어갔던 국민당 그리고 반대로 민심을 사로잡은 공산당, 이 두 세력의 치열한 대결 속에서 마치 사진 속에 서 있는 남자는 어딘가로 갈 방향을 정했지만 이에 대한 확신은 없어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시선에 마치 물어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길이 맞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마치 사진 속 남자가 중국 그 자체인 것처럼, 그가 중국이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사진은 실로 결정적 순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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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결정적 순간 전시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보여주는 구도와 공간감, 사진 속의 스토리 그리고 이를 뛰어넘어 전달하는 피사체에 대한 인애하는 마음이 어우러져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과 결정적 순간들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전시였다.


사실 결정적 순간이란 말은 정말 철학적인 표현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이 모든 작품들을 하나의 사진집으로 묶으면서 왜 결정적 순간이라고 표현했을까. 스스로에게 끝없이 질문하면서 작품을 감상해보면 더욱 풍부하게 전시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질문이 브레송의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나 스스로의 삶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은 무엇인지, 나는 매순간에 어떻게 임하고 있었는지를 성찰해볼 수 있는 계기로 삼는 전시가 되어서 좋았다.


2015년 이후로 7년만에 다시 만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전. 이 다음 전시는 언제, 어떤 작품으로 열릴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또 다른 작품들을 많이,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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