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학교는 사라져야 하는가 [도서/문학]

<스콜라스틱 교육 : 학교를 변론하다>
글 입력 2022.07.0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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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더 나은 미래와 발전을 상징한다.

 

20세기 후반에는 학교의 존립 자체에 이의가 제기되는데, 학교를 빨리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를 주장한 이들은 스콜라스틱 교육, 즉 학교를 학교답게 하는 교육이 만악의 근원이며 제도적 논리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굳이 배움의 기관으로서 학교가 필요하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학교 밖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비대면 수업이 강화되면서 평생교육이나 이러닝의 교육 환경에서 과연 학교란 필수적인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드는 것과 비슷하다.

 

혹자는 학교가 곧 사라질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 시대착오적인 학교에 대대적인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 학교를 변론하려는 모든 시도는 설득력이 없고 장황하며 그저 보수적인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치부된다.

 

저자는 이와 같이 학교를 향한 날선 비난에 반하여 학교가 무죄임을 <스콜라스틱 교육 : 학교를 변론하다>를 통해 밝히고자 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이야말로 학교가 필요한 시기란 것이다. 구시대의 유물로만 취급받던 학교, 현대적이지 못한 학교 등 이런 비난들은 오히려 학교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과연 학교란 무엇인지, 학교의 기능은 무엇인지 말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학교에 대한 의혹이 그저 구시대적 공포나 혐오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스콜라스틱 교육을 주장하는 것은 절대로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수하려는 보수적 계획이 아니란 점을 명시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자면, 이 책은 학교를 다시 구상하려는 이유와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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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대한 혐의 사항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학교의 ‘고립’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는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교과서는 인위적이며, 학교는 학생에게 진짜 인생을 준비시키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학교는 학생이 성인의 삶을 준비하기 위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교육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변론을 하자면, 스콜라스틱 교육과정의 핵심은 학생이 실제로 경험하는 삶과의 실질적 관련을 맺지 않는 데 있다. 그렇기에 학교는 학생의 요구와 단절되어 결국 학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학생은 사회로부터 고립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긍정적인 입장으로, 학교가 변화 가능하며 개방적이고 실용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극단적인 입장으로, 고립과 단절을 특징으로 하는 모든 학교교육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콜라스틱 교육이 강조하는 것은 학생이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를 끊어 지연시키는 것으로, 오히려 학교 안에서 세계를 흥미롭고 매력 있는 방식으로 만나는 것이다.

 

학교의 두 번째 혐의는 ‘부정부패’이다. 일부는 학교가 각종 이익을 남기기 위해 자기 권력을 악용한다고 주장한다. 즉 학교는 사회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학급 분반 제도, 평가 제도, 교과교육과정과 각종 수업 및 교육 방식 등 이 모든 것이 권력을 영속시키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라고 주장한다.

 

변론을 하자면, 학교의 부정부패를 부정하지 않지만, 이 모든 시도들이 스콜라스틱 학교에 내재된 명백하고 급진적인 잠재력을 길들이려는 데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문화 자본을 회수하여 모두가 쓸 수 있는 공공재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학교의 세 번째 혐의는 청소년들의 ‘학습 동기상실’이다. 청소년들의 동기 상실 문제에는 대체로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거나, 학습은 재미없고 고통스러우며, 무엇보다도 교사를 지루해한다는 것이다. 일부는 청소년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학습 내용을 선택할 권리와 더불어 관련 정보를 제시해야 하는데, 학교는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즉, 학교는 근본적으로 보수적이며 교사는 구세대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교육 활동은 교사에게만 좋은 일일뿐, 학교는 침체를 주도한다는 것이다.

 

변론하자면, 스콜라스틱 교육에서 강조하는 것은 학교가 학생의 웰빙에 관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청소년들의 동기 상실에 대해 대부분 오로지 관심만을 처방으로 삼고, 흥미를 수요자 요구 충족의 문제로 착각하여 몰두한다는 점에서 학교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학교의 네 번째 혐의는 ‘취업 가능성’이다. 학교가 생산하는 성과란 바로 학업성취이다. 궁극적으로 이 가치는 학생의 취업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즉, 그 성과는 직업 환경, 그리고 나아가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상황에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부는 책임 있는 교사를 원하는데 구체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발견할 의지가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다만 이들의 주장에서 학교와 교사가 부족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학교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교에 대한 혐의이자 의문인 ‘급진적 개혁’이다. 개혁의 내용은 방대하다. 학교는 학생 중심이 되어야 한다, 능력 개발에 힘써야 한다, 학생에게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도록 사회 변화에 좀 더 반응해야 한다, 실질적인 기회균등에 노력해야 한다 등 이러한 요구는 학교가 궁극적으로 개인의 학습역량을 극대화하는 곳이라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 정상화를 원한다. 다만 학교를 학교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대부분이 학교의 목적이나 기능에 대해 관심이 있으나 학교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학교를 없애야 한다는 이들 주장에 의하면, 학교라는 인위적인 학습은 자연적인 학습 환경에서 배울 수 없었던 시대에만 필요한 것일 뿐, 이제는 필요가 사라졌으니 학교라는 기관도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바로 지금이 반론을 제기하기에 적절한 시기이다. 학교의 가치와 학업성취, 교육 용어에 집중하기보다는 학교를 학교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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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스틱 교육 : 학교를 변론하다>를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학교에 대한 신랄한 비난들이 오히려 학교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의 극단적인 면을 세세히 파악하는 과정에서 과연 학교란 무엇인지, 학교의 기능은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고 했는데, 책을 읽으며 실제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학교가 구시대적인 기관으로 무용지물이라 했다. 과연 과거에도, 현재에도 학교는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 그들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와 같은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학교에 대한 의혹이 그저 구시대적 공포나 혐오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학교를 감옥이라고 푸념을 하는 학생을 접한 입장에서 학교는 고립의 공간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는 고립의 공간이 아니었다. 스콜라스틱 교육이 강조하는 것은 학생이 사회와의 관계를 끊어 오히려 학교 안에서 세계를 흥미롭고 매력 있는 방식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오히려 사회의 간섭을 저지하는 공간이 바로 학교인 것이다.

 

읽다 보면, 이 책이 구시대적, 전통적인 교육을 주장하는 듯 보이기도 하며, 동시에 진보적인 모습의 교육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어느 한 쪽 입장에 서지 않고 교육의 공통적 성격을 들어 학교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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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육이란 무엇인가, 학교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와 같이 끊임없는 비판적 사고는 계속되어야 한다. 다시 강조하자면, 학교의 존폐 여부는 터무니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학교를 없애자는 극단적인 주장들은 그저 구시대적 공포나 혐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교의 혐의에 대한 변론의 과정을 통해 학교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순간이 소중했다. 결국 학교라는 자유 시간 안에서 청소년들은 온전한 개인으로 성장하며, 교사는 학교라는 자유 시간 안에서 교육을 사랑으로서 돕는 마스터가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교라는 기관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며, 교사의 역할 또한 무엇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학교를 변론하려는 움직임은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가열되었다. 코로나는 일상과 학교의 소중함에 대해 깨닫게 해주었다. 이는 학교를 가기 싫어했던 학생들이 오히려 학교를 그리워하는 모습에서도 확실하게 보여준다.


다만 온라인 교육이 증가하면서 등교가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이것에 대해 말해보자면, 이론과 정보만을 전달하는 측면에서는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학생들의 정서적 교감과 성장 활동 측면에서는 여러 가지 한계점이 있다. 이로 인해 현재 학교의 의미가 점점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수업을 듣는 공간이기보다 ‘체험과 경험’의 공간이 된 것이다. 즉 학생들이 학교교육을 옹호하는 데는 친구를 사귀고, 체험과 경험을 통해 교실 안에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과정을 통해 ‘학교’라는 공간을 중요하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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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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