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요즘 꾸는 나의 잔혹사

글 입력 2022.07.0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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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꿈을 유독 자주 꿔. 대부분의 꿈을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특히 요즘 들어선 더 기억을 많이 하는 것 같아. 특히 기분 좋은 꿈보다는 기분 나쁜 꿈 때문에 눈살 찡그리면서 깬 적이 많아. 무의식이 반영된 꿈인 걸까? 그냥 오랜만에 너무 많이 자서 그런 걸까? 그래서 더 기억하고 뇌리에 박힌 것일지도 모르겠어.

 

다소 잔인한 이야기가 들어있으니 유의해서 봐줬으면 좋겠어. 요즘 꾸는 나의 잔혹한 꿈 이야기들이야. 그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되니까 기분 좋은 꿈만 기억나길 바라면서 기억을 적을게.

 

 

 

신입사원의 첫 출근



현실의 나는 4학년 막학기고 이번 방학으로 진짜 백수가 되거든? 당연히 직장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 꿈에선 내가 그리던 공기업 중 하나에 합격해서 신입사원이 되었어. 두근거리고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첫 출근을 했지. 내가 들어간 부서는 아마도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문화예술계랑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부서였던 것 같아. 그래서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업무를 빨리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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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가 있는 사무실 층으로 동기와 함께 들어가 원래 일하시던 직원분들께 인사하고 잠시 담소를 나눴어. 곧 부장님께서 들어오신대. 다시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얼굴을 보는데 속으로 비명을 질렀어.

 

 

'으악! *됐다.'

 


예전, 일을 잠깐 했을 때 그렇게 좋지 않은 꼰대 소리와 약간의 훈계를 해주셨던 차장님이 인사를 하시는 거야.

 

 

“어 오랜만이네요. 수진씨”

 


그때도 내 똥 씹은 표정은 숨길 수 없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네.

 

 

“어 하하 차장님도 여기로 옮기셨어요...? 

오랜만이에요 차장... 아니 부장님”

 

 


수학여행, 소리 없는 아우성



오랜만에 수학여행을 갔어. 부산 태종대랑 해운대 쪽 해변에서 놀라고 자유시간을 주더라. 근데, 익숙한 내 친구들이 안 보여. 수학여행에 혼자라니? 어찌어찌해서 놀고 있는데 나한테 소중한 베개 같은 물건이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거야.

 

 

‘안돼. 가지러 가야 해’

 


열심히 따라서 헤엄쳤어. 온갖 암석들을 넘고 막 그랬는데도 결국 사라지고 저 멀리 누군가가 그걸 가지고 가더라고. 힘은 다 빠져버렸고 터덜터덜 다시 집합 장소로 돌아갔어. 그렇게 다 같이 관광열차도 타고 나는 넋이 나간 채 그냥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어.

 

갑자기 고등학교 때 있던 못된 남자애들 무리가 왜 혼자 있냐고 놀리는 거야. 건들거리는 애들을 그냥 무시하다가 계속 시비를 걸길래 그냥 손가락 욕을 날렸어. 원래 그런 애들은 급발진하잖아. 욕을 보고 화가 난 무리가 나한테 오려고 했는데, 계속 눈치 보던 다른 애들이 말려줬어. 마침 관광열차도 종점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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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호텔 숙소에 도착했어. 예정보다 내가 시간이 늦어져서 서둘러서 배정된 호실에 가는데 다른 여자아이들이 다 차지하고서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거야. 다른 호실에 가도 내 자리는 없어. 원래 내 자리였던 호실로 가서 비켜달라고 하는데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아. 세상에서 왕따당하는 기분. 짜증 나게도 꿈인데, 그냥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학생들, 내가 다 아는 사람들이었어. 그렇게 괴로워하다가 문을 쾅 닫아.

 

그리고 암전.

 

 

 

주적은 누구인가


 

처음엔 좀비와의 싸움이었어. 그리고 북한과의 전쟁도 벌어졌어. 점점 시간이 흐르다 보니 우리 한반도에선 그런 악의 대상화가 되는 존재들에게서 무디어졌고, 일반인들 간의 싸움으로 상황이 역전돼. 그냥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죽임과 죽음이 반복되고 있어.


어떤 폐교에 숨어저 지낸 지 엄청 오랜 시간이 흘렀어. 워낙 큰 학교다 보니까, 여기에 누가 착한 사람인지 누가 나쁜 사람인지, 그리고 누가 여기 살고 숨어있는지조차 몰라.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당연히 사람들도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어 해. 일상 회복을 강렬하게 원하고 있지. 그런 사람들이 모여 갑자기 학교 앞 운동장에 크나큰 워터파크를 만들어. 공기를 주입해 만드는 큰 튜브형 물놀이장 있잖아. 크나큰 피자 모양 위에서 아이들은 슬라이딩하고 열심히 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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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보니 그냥 몇 년 전 내가 어렸을 때 놀던 물놀이장이 떠오를 만큼 사람들도 기뻐 보였어. 잠시 찾은 평화가 이제 영원할 것 같이 진짜 평화 같았어. 옆에는 계곡 시설도 설치해서 제법 진짜 같았거든.

 

그런데 갑자기 물놀이 시설에서 튜브를 타고 놀던 아이들이 하나둘 물로 빠져들어. 블랙홀이야.


옆 피자 모양 미끄럼틀에선 토핑처럼 아이들이 내려오는데 곧 아이들은 피자 소스처럼, 진짜 토핑처럼 피를 뿜어내고 죽어. 계곡에서 낚시하던 아저씨는 낚싯대에 이끌려 다들 계곡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


멀리 창밖으로 절망의 순간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게 된 나는 숨이 가빠져.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교실 밖으로 나가. 우선 사람들이 있는 마지막 층으로 올라가. 그 층은 여기 집단에서도 쫓겨날 위기에 처했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층이었어. 꼭대기 층이다 보니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버려진 층이었기에 그분들이 여기 살게 된 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LGBTQ+였어. 여기저기서 밀리고 밀려 적이라고 일방적으로 판단당한 그들은 꼭대기 층까지 올라오게 됐지. 그들은 그래도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었어. 나는 그들에게 달려가 창밖을 보라고 말해. 대신 내가 그들의 아이들이랑 놀아주고 있겠다고. 아이들은 밖을 절대 보아선 안 되고 잠깐 당신들만 보고 오라고. 아이들이 함께 모인 유치원 교실에서 나는 아이들을 놀아주고 있어. 이런 위급한 상황에도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 층에서 난 편안함을 느꼈어. 참 모순적이지. 그러다가 이 집단 살인 사건에 대해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눠. 이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하지만 그 살해 집단은 점점 학교 안으로까지 들어와. 계단에서 하나하나 번호를 말하고 사람을 죽여. 어떤 목적을 띤 집단일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서로를 의심해서 숨겨진 적이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있다는 거야. 점점 그들은 꼭대기 층까지 올라와. 우리가 있는 그 층 말이야. 버려졌지만 마지막 희망이 되어버린 층.


아이들을 뒤에 숨기고 어른들과 함께 나는 그들 앞에 서. 같이 숨쉬기도 싫어했던 그 아저씨들을 바라본다. 그는 나에게 총을 겨눠. 번호를 말하고 쏘려고 하는데 내가 외쳐. 미쳤냐고. 지금 상황을 똑바로 직시하라고. 우리는 모두 그냥 '사람들'인데 뭐 하는 짓이냐고. 당신은 그냥 살인자라고.


그는 번호를 외쳐. #### 탕!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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