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작은 목소리로 노래하기 - 어린이의 마음으로 [도서]

글 입력 2022.07.0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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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주위를 둘러본다. 바쁜 도시를 빠르게 가로지르는 사람들. 모두가 나와 같이 지친 어른들의 같다가도, 예상치 못한 순간 불쑥 불쑥 작은 머리들이 보인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버스 자리를 찾는 아이와 미술관에서 신기한 그림을 보곤 달려가는 아이, 분수대를 보고 신난 마음에 힘껏 소리를 지르는 아이. 그럴 때면 가라앉은 공기에 생기가 돈다.


자꾸만 까먹는다. 어린아이였던 나를. 어린아이들을 마냥 유약하고 귀여운 존재로만 바라보는데 익숙해졌지만, 그땐 그때의 고민과 치열한 하루하루가 있었다는 것을. 작은 머리들이 뻗는 작은 손과 발, 내뱉는 작은 숨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들의 마음속에 담긴 생각과 사람들, 세상은 어떨까.

 

 

어린이의마음으로_앞표지.jpg


 

그래서 ‘어린이의 마음으로’를 읽고 싶었다. 열세 명의 시인이 어린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어린이의 마음으로 쓴 시와 산문이 담긴 책이었다. 전부터 좋아하던 익숙한 이들의 이름이 눈에 띄었고, 그들이 그리는 어린이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귀여운 표지를 넘겨 그 세계로 나아갔다.

 

 

 

어린이의 사랑


 

나는 사람의 가장 근원적인 마음, 스친 적 없는 우리가 공유하는 하나의 마음은 사랑이라 생각한다. 친구와 가족에 대한 사랑, 눈앞에서 생명력을 뿜어내는 자연에 대한 사랑, 공기를 따뜻하게 데우는 햇빛에 대한 사랑, 이 모든 사랑들 말이다.


그 사랑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날 때부터 지니고 있었을까, 아니면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속에 배운 것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하다,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믿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지니고 태어나는구나.

 

 

김소율도머리이렇게묶었는데

네가 말했고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김소율이 친구라는 것도 실은

누군가의 이름이라는 것도


김은 종이로 만들었지

혀로 김을 녹이던 너는 웃고

그리고 발견한다

김이랑 김소율 둘 다 기가 있네!

김이 조금 녹았기 때문일까

아마도 열두 번째나

스물일곱 번째의

발견


- 오늘의 뉴스, 금정연 中



시를 읽고 웃음이 났다. 어린이의 마음도 그렇구나. 어린이일 때도 똑같았구나. 누군가 좋아지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자꾸 발견하게 된다.

 

나와 비슷한 점, 열렬히 좋아하거나 절대 참을 수 없는 것이 같을 때, 그리고 함께 그리는 상상이 맞닿는 지점. 우연 같기도, 운명 같기도 한 그 순간에 사랑을 확신한다. 작은 어린이의 마음도 그렇다는 걸 알았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상상해 보게 된다.


김복희 시인은 어린이의 또 다른 사랑에 대해 들려주었다. 서점을 찾아와 한참을 망설이던 ‘어린 친구 하나가 조그만 목소리로 혹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새를 그려줄 수 있는지 물었’던 이야기였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새가 무엇일까 부엉이와 독수리, 황새를 보여주지만 모두 고개를 젓는 아이. 절대 찾아보지 말고 그려달란 말에 어떤 새를, 어떤 모습으로 그려줘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던 그는 아이에게 대신 새가 사는 둥지를 그려달라고 말한다. 신나게 둥지 이야기를 들려주다 떠나는 아이.


좋아하는 새, 세상에서 가장 멋진 새, 그 모습을 상상해 본다. 세상 어딘가에서 날깨를 펴고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지, 아이의 마음속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순수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읽었으니 말이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



어린이들의 사랑 곁으론 어린이를 사랑하는 어른들이 있다. 작은 걸음걸이와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보폭을 좁혀 어린이들이 세상을 천천히 하나씩 알아가는 길을 따라 걷는다. 함부로 앞장서지도, 어서 가자고 채근하지도 않고.

 

 

녹아내린다.

네 속눈썹에 닿아 반짝

차게 빛나는 설탕 눈송이들의 모양을 나는

반복해 그리고 있다.


신에게 영원히 버림받은 사람의 눈동자를 들여다 본 것처럼


*


두려워진다.

너를 마주하면 마음이 찬물에 닿듯 아프기 때문에.

세상에는 너와 나만 존재하던 때가 있었으니까.


하늘은 투명하게 빛나고

네가 딸꾹질을 하면 나도 따라 통통 웃던

단단한 동그라미 안의 우리.

 

- 단단하고 허약한 스노볼-준에게, 하재연 中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차게 느껴진다. 너무 소중한 존재가 생기면 마음이 따뜻하게 채워지면서 동시에 날카롭고 차가워진다. 조그만 속눈썹, 보조개, 웃음소리까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함을 느끼다가도, 알 수 없는 순간에 슬퍼지고 만다.

 

그 대상이 나의 아이인 적은, 그 아이를 사랑을 담아 바라본 적은 없지만, 가늠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상상해 본다.

 

 

얘들아 나는 너희들의 치열한 삶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통장 잔고에 구멍 나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살은 좀 많이 빠졌어. 솔직히 말하면 너희들이 나를 괴롭히면서 못살게 구는 게 수업 시간의 절반 이상이잖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한여름 무더위에도 삼십 분 동안 쿠키 한 조각을 손에 꼭 쥐고 학원에 도착했을 때, 땀에 젖어 축축해진 쿠키 조각을 내 입에 넣어줄 때, 온갖 세균이 입에 들어온다 생각하면 속으로 울고 싶지만 그래도 난 너희들이 너무 좋아. 입에 넣기만 해도 당뇨병이 걸릴 것만 같은 커다란 구슬사탕을 나한테 선물로 줄 때 그걸 먹어보라고 너무 맛있다고 자꾸 강요할 때 그럴 때도 너희들이 나라는 사람한테까지 먹는 기쁨을 나누려고 한다는 게 진심으로 느껴져 감동일 때가 가끔 있단다.

 

- 나의 작고 어린 대치동 친구들에게, 박세랑 中

 


대치동 학원에서 일하며 아이들이 한없이 밉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한 마음을 담은 글이었다. 학원에서 조교 일을 오래 했던 기억이 나면서, 그게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 알 것 같았다.

 

장난 가득한 얼굴로 학원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고, 부모님 뒤로 숨어버리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 지치면서도 순수한 눈빛, 감사하다는 자그만 쪽지, 학원이 너무 많아 시간이 없지만 피아노를 치고, 축구를 하는 꿈이 있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내내 그 아이들이 안쓰럽고 사랑스러웠다.


어린이의 마음을 더 많이 알고 싶다. 더 이해하고 싶고, 더 알고 싶어진다. 다 큰 어른들만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우리보다 한 뼘 더 작고, 조금 더 느려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그 아이들이 궁금해진다.

 

모든 아이들이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으면 좋겠다. 넘치게 사랑받아 그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어린이는 학교와 가족의 품에서만 자라나지 않는다. 우연히 대화를 나누고, 스치는 모든 어른들의 품에서 함께 큰다.

 

그걸 잊지 않는 세상이 되길 오늘도 바란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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