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실을 말하는 시집, 김소연의 "수학자의 아침" [문학]

시의 언어로 보듬는 공허함
글 입력 2022.06.26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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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잘 읽지 않다가 최근 들어 시집을 자주 찾게 되었다. 몇 년 전 친한 언니가 나에게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라며 해주었던 말이 되짚이는 요즘이다. 같은 것을 설명하더라도 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며, 그래서 우리는 그런 섬세한 언어들을 잊지 않기 위해 시를 읽어야 한다고 말이다. 요즘의 나는 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의 언어가 필요한 날이 있다. 시는 아주 추상적인 동시에 아주 구체적이다. 어떤 감정이나 삶의 순간들이 시인의 눈에 포착되면, 그 순간은 시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나는 종종 시에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무수히 많은 순간을 시는 어루만진다.

 

시인들은 세상을 참 따뜻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같다고 생각한다. 지하철역에 앉아 혼자 노래를 듣거나 책을 읽는 사람을 보고도 어루만져줄 구석을 발견하는 시선이 따뜻하다. 세상을 시인처럼 바라보는 사람들만 존재한다면 세상은 온기로 가득 찬 공간이지 않았을까.


김소연 시인의 “수학자의 아침”은 공허와 쓸쓸한 순간들, 누군가를 기다리며 비워낸 시간을 담담한 언어로 풀어낸 시집이다. 기다림의 순간은 슬프다.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시작한 기다림은 그 시간이 오래 흐를수록 불안과 허무함, 공허함에 잠식된다. 기다리는 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홀로 남아 있는 고요한 순간들에 찾아오는 온갖 감정들을 견디는 일뿐이다.


기다리고 있는 이를 생각하다가, 내가 간절히 기다리는 이가 오기를 바라다가, 기다리는 이가 오지 않을까 봐 헛헛함을 느끼다 끝내는 기다리는 이가 오는 순간이 두려워 지기도 한다. 내 곁에 없는 막연한 무언가를,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언제나 큰 빈자리를 남긴다. “수학자의 아침”은 그 빈자리에 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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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아래 요정이 산다고 믿은 적이 있다

잃어버린 세계는 거기서 잘 살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 뜨거워질 수 있다


하나의 문장으로도 세계는 금이 간다

이곳은 차가우므로 더 유리하겠지”


- 열대어는 차갑다 中

 

 

“나는 오후에 걸쳐 있었고 수요일에 놓여 있었다.


같은 장소에 다시 찾아왔지만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가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없었던 것들이 자꾸 나타났고

있었던 것들이 자꾸 사라졌다 이를 테면”


- 장난감의 세계 中

 

 

우리 모두에게는 기억만으로도 뜨거워질 수 있는 잃어버린 세계가 있다. 잃어버린 세계는 어느 순간의 아름다운 기억일 수도 있고, 생각만으로도 힘이 나는 존재일 수도 있고, 막연히 존재한다 믿고 싶은 무언가일 수도 있다. 세상은 시간이 지나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차가워진다. 삶이 너무 차갑다 느낄 때를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그런 따뜻함이다.


그래서 기억은 소중하며, 돌아오지 못할 순간들일지라도 따뜻한 기억을 자꾸 꺼내 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 혹은 그 순간이 따뜻하지 않았더라도 괜찮다. 내가 뜨거웠던 순간이라면, 내가 그만큼 따뜻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며 차가운 세상에 동화되는 마음을 다잡으면 된다. “수학자의 아침” 속 쓸쓸함에는 결국 사랑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토록 공허하지 않고 다시 채워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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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두 발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했다

잘못 살아온 날들과 더 잘못 살게 될 날들 사이에서

잠시 죽어 있을 때마다


그 애의 숟가락에 생선 살을 올려주며 말했다

우리, 라는 말을 가장 나중에 쓰는

마지막 사람이 되렴


내가 조금씩 그 애를 이해할수록

그 애는 조금씩 망가진다고 했다

기도가 상해버린다고”


- 백반 中

 

 

“어떤 나라에서는 발이 시리지 않다

어떤 나라에서는 목적 없이 버스를 탄다

그러나 어떤 나라에서는 한없이 걸어야 한다


피로는 크나큰 피로로만 해결할 수 있다

사랑이 특히 그러했다 그래서


바깥에 사는 사람은 

갈 수 있는 한 더 먼 곳으로 가려 한다”


- 바깥에 사는 사람 中

 


우리가 사랑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완전하고 온전한 형태의 사랑을 주고받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나의 사랑은 때때로 상대방에게 닿지 못할 수도 있고, 더 크고 완전한 사랑을 찾고자 떠나야만 하기도 한다.

 

사랑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을 우리라고 칭하기도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랑은 그래서 무수한 기다림이다. 답이 없는 문제 안에서 많은 순간을 떠나보내고 또 떠안으며 기억을 간직한 채로 다음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리라.

 

 

“휙휙 지나쳐 가는 것들이

내 입김에 흐려질 때


차가운 유리창을 다시 손바닥으로 쓰윽 닦을 때

불행히도 한 치 앞이 다시 보인다


몸이 따뜻해지는 일을 차분하게 해본다

단추를 채우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둔다”


- 막차의 시간 中

 

 

“수학자의 아침”은 결국 우리에게 다시 따뜻해질 힘을 주는 책이다. 스쳐 간 모든 순간과 기다림을 건너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든 따뜻해질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니 순간들이 외롭고 공허하더라도 단추를 채우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자. 우리의 모습은 한 편의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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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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