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하고 수더분한 날것 그대로의 다큐 ‘땐뽀걸즈'

글 입력 2022.06.20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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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지 않은 민낯 그대로가 예쁘다


 

화장 안 해도 예뻐 나중에 어른 되면 다 이해될 걸? 그 시절 어른들이 했던 말이 이해가 된다. 왜냐고? 전혀 꾸미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의 실루엣 장난치고 노는 모습, 그러니까 다큐멘터리 땐뽀걸즈가 그랬으니 말이다.

 

요즘엔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들이 봇물 터지듯 참 많이도 나온다. 시즌이 9에서 10까지 가는 장수 프로그램도 많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춤, 연기, 노래, 랩 등 분야도 가지각색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프로그램 속에서 경쟁을 시키고 꼭 문제의 인물을 넣거나 짠한 참가자의 사연들을 내비치며 서사를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잘하기에 감동을 주는 것이다. 다른 이들과 경쟁을 시키고 승패의 모습을 보여주며 울고 웃는 감정들을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 빠져있던 내게 조미료를 치지 않은 담담한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필요했다.

 

설정되지 않은 모습, 과정을 보여주는 모습,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보고 싶어 넷플릭스 다큐를 선택했고, 자연스럽게 내 손이 본능이 이끌리듯이 ‘땐뽀걸즈’를 선택했다. 영화로 각색한 것보다 실제 이야기를 마주하고 싶었다. 또 하나는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들이 땐뽀(스포츠댄스)로 추억을 넘어 무언가를 도전한다는 모습, 오롯이 그 하나의 모습이 예쁘게 느껴졌다. 땐뽀걸즈는 전혀 꾸며지지 않는 천연덕스러운 모습들로 하나하나 쌓아 올라가는 표정, 몸짓, 숨소리 그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담담하다.

 

아이들은 스스로 알고 있었다. 땐뽀를 한다고 당장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땐뽀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수업이 끝난 후 남아서 박자에 몸을 실어 춤을 춘다. 금방 따라 추는 아이, 장난하듯이 추는 아이, 몸에 밸 때까지 반복하며 익히는 아이 ……. 사람들의 성격이 천차만별이듯 아이들의 모습도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목표는 같았다. 땐뽀(스포츠댄스)로 곡 하나에 동작을 완성시켜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현진은 같이 사는 친구에게 ‘댄스스포츠’는 되게 힘들다고 말한다. 여기서 힘들다는 의미는 체력적으로 많이 숨 가쁘고 힘들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내 돌아 누우며 그런데 재밌다고 말한다. 아이들도 알고 있다. 아이들에게 꿈과 야망보다는 현실을 부비며 당장 살아가야 할 환경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당장 돌봐야 될 동생들이 있다. 내 엄마 엄마의 엄마가 그랬듯이 조선소 행정업무 등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은 학창 시절 내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만 칠판 가득 채워진 수업시간, 수업을 들으며 딴청을 피기도 하고 듣다가 엎드려 잠을 자기도 한다. 상업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진학보다 취업전선으로 위해 고군분투하니까. 지현은 연필로 꾹꾹 입사지원서를 쓰고 취업관계자에게 직접 서류를 점검받는다. 자소서의 틀이 부족하다는 피드백을 듣고 마음에 많이 담아두지 않고 친구들에게 흘리듯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시 연습을 위해 체육관으로 간다. 땐뽀걸즈의 연습은 완주할 때까지 계속된다.  

 

 

 

함께 가는 그 중심의 별, 선생님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땐뽀걸즈에서 이규호 선생님은 여고생들에게 댄스 스포츠를 알려주는 동아리 담당 선생님이자 체육선생님이다. 다큐멘터리 속 선생님은 이상하리만치 그냥 여고생들의 친구 같다. 보통 선생님이면 거리가 생길 법도 한데 아이들이 선생님을 대할 때 거리낌 없는 모습을 보며 ‘저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내가 얼마나 사회생활에 찌들었으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지켜야 될 선이 명확하다 보니 된다 안 된다는 구분 짓기를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치킨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며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선생님을 놀리기도 한다. 이규호 선생님은 대회를 위해서 조바심을 내지도 빨리 해야 한다고 닦달하거나 상 받는 것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제자들이 땐뽀를 추며 훗날 아줌마가 됐을 때 추억할 수 있기를. 땐뽀를 처음부터 끝까지 추며 완주라는 개념으로 ‘성취감’을 느끼면 그걸로 됐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수상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냐는 말에 큰 상이 아니라 입상이라도 하면 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친구 같은 선생님이라는 수식어가 딱 맞는 부분은 현진이 땐뽀 수업에 빠진 이유에 대해 선생님에게 찾아와 직접 말했던 대목에서 느낄 수 있었다. 현진은 보증금 260에 월세 60을 친구와 나누어서 내는 친구다. 이쯤이면 학교에 다니면서 댄스 연습을 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18살에 본인을 낳고 도망간 엄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선생님께 이야기하며 ‘선생님이어서 말을 한다’라는 말이 내 마음을 웅웅웅 하고 울렸다. 선생님이어서 할 수 있다는 말은 뭘까. 정말 선생님이어서 일까, 편안하게 내 사정을 말해도 될 것 같은 사람이어서 일까? 다른 친구들은 현진의 사정을 아무도 몰랐다. 한 달에 절반 이상을 반복했고 힘들어서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던 현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 그랬구나’라고 속으로 말했다. 결과만 보고 문제아라고 생각하는 시대에 선생님은 이해하지만 술은 안 된다고  선생님은 소소한 행복을 주는 산타클로스 같았다. 선생님은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혜영에게 누나 역할을 하라며 빵집으로 데려가 빵을 고르게 한다. 그게 선생님의 제자를 대하는 진심인 방법인 것이다. 예쁜 귀걸이, 명품백이라도 선물 받은 것처럼 ‘개이득’이라고 하며 좋아하는 혜영과 동생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보는 내내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물렁물렁하게 다 받아주는 것도 아니다. 대회를 앞두고 연습이 부족하고 진도가 원활하게 나가지 않을 때는 대차게, 따끔하게 땐뽀걸즈를 꾸짖기도 하면서 혼자가 아닌 다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이야기마다 쉼표처럼 전해지는 섬세한 배경음악


 

다큐멘터리 ‘땐뽀걸즈’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연습하는 모습, 연습이 끝나고 난 뒤에 경쾌한 음악과 웃음소리들이 사이사이에 녹아들어 있다. 음악들은 경쾌하게 연주되었다가 이내 잔잔해지기도 하고, 특히 아이들의 일상과 그녀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는 잔잔하면서 템포가 빨라지는 듯한 간지러운 느낌의 음악이 등장한다. 빠른 템포의 폴짝폴짝 뛰는 여고생의 발걸음을 표현하는 음악이 나오다가도 개개인의 이야기를 할 때는 다소 조용한 음악으로 급반전된다. 조선소에서 나와 운수업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횟집이 잘 안돼 창업대출을 알아보다가 청주로 떠나는 시영의 아빠. 아이들 개개인의 가정사가 잠깐잠깐씩 스친다. 실제로 땐뽀걸즈의 음악들의 숨결 사이사이의 소리에 귀를 대보고 느껴보자니 잠시 그 소리에 불이 꺼져 있다. 

 

그것은 초라하고 아픈 모습이 아닌 잠시 쉬었다가는 모습. 현실에 직면하는 아이들의 모습일 것이다. 아이들은 울지도 않고 때 쓰지 않는다. 아빠와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영도, 고깃집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현진도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어둡다는 말보다는 잠시 불이 꺼진 느낌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땐뽀걸즈

 

완 뚜 쓰리엔 뽀, 예쁘게 화장한 모습에 무대의상, 긴장한 땐뽀걸즈에게 이규호 선생님은 그의 방식대로 아이들이 떨지 않게 한마디를 한다. 화장을 해서 너인지 잘 모를 것이라고. 무대 위 빛나는 조명이 너를 멋있게 해 줄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땐뽀걸즈는 무사히 무대 위에 오른다. TV 오디션처럼 음반 발매를 한다던지 데뷔를 하는 일은 없다. 화면을 교실로 다시 돌아가 상을 받아 꺄르르 웃는 평범한 여고생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준비를 하고, 아빠를 기다리며 떨어져 지내는 아이들의 모습들이 나온다. 이미 아이들은 현실에 익숙해짐을 넘어서 달관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땐뽀걸즈’는 대회에 나갔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선물 같은 추억을 심어주었다. 다큐멘터리 ‘땐뽀걸즈’ 속 아이들을 보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 할 수 있다, 몸에 익혔다는 뿌듯함이 내 가슴속에서 아스라이 스며드는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아봤다. 나도 17살 때 배웠던 자이브가 생각이 났다. ‘완 뚜 쓰리 앤 뽀’ 나도 모르게 내 입술이 달싹거렸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잠시 잊을 수 있었던 것 힘들지만 재밌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꼭 타임머신을 타고 가깝지만 먼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최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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