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의 '내일' [미술/전시]

글 입력 2022.06.20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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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 사람들은 성인지 감수성에 예민하다. 그만큼 사회는 젠더 간 갈등과 차이를 좁히는 노력을 지속해왔고 그에 따른 시민 의식도 높아졌다. 기존 예술에 심각한 윤리적 오류가 있지만 과거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허용됐다 해도, 지금 현재 그렇지 않다면 재고할 필요가 있음에 재작년 인상깊게 본 작가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한다.

 

 

 

'2020 올해의 작가상' 후보작가, 정윤석



정윤석은 ‘올해의 작가상 2020’ 에 뽑힌 4인 중 한 명의 후보 작가로, 시각예술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영상매체 전반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그는 특유의 예리함으로 미술과 영화를 수단 삼아 개인의 삶을 통해 사회정치적 문제를 들여다보며 국가와 사회의 ‘공공성’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작업하여 영화와 미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같고 다른 감각의 지평을 제시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연구을 꾸준히 시도한다.

 

작가 정윤석은 <눈썹(2018)>, <내일(2020)> 등 과 같은 작품에서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비율과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수동성을 가진 마네킹과 섹스돌을 제작하는, 즉 ‘사람이 사람을 만드는 풍경’에서 이루어지는 강도 높고 부단한 노동의 과정과 섬세한 작업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이 욕망을 위해 ‘인간 같은 소비재’를 제작하는 모습을 기괴하게 포착함으로써 ‘인간과 인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정윤석 <내일>



작가 정윤석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파생시킨 작품으로 단연, <내일(2020)>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의 작가상 2020’에 출품된 정윤석의 작품인 <내일(2020)>은 장편 영화 한 편과 사진 설치로 구성된 전시이다. 영화 <내일>은 러닝타임 2시간 34분인 장편 다큐멘터리로, 인간과 닮은 인간의 대체물들을 제작하거나 소비, 이용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영화의 전반부는 중국의 한 섹스돌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현장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후반부는 일본에서 인형과 함께 살아가는 인물 센지 그리고 인공지능 로봇을 정치적 대안으로 제시하는 인물 마츠다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보여줌으로써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들이 선택하는 삶의 모습들을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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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다큐멘터리 영화 및 영상 설치, 2020

 

 

영화 <내일>의 일부 장면을 정지시켜 포착한 사진 작품도 함께 전시했는데, 제작 공정 중 일부임을 전제하지만 각 이미지는 마치 인간의 신체를 절단한 듯한 폭력적인 장면들이 담겨있다. 각기 다른 모습의 아름다운 섹스돌의 모습으로 눈썹, 눈, 턱선, 다리, 발 등 어느 신체 부위가 중심이 되는 사진이나 음부에 기구를 넣어 세밀하게 만드는 과정 혹은 엉덩이의 완벽한 곡선을 위해 탱탱하게 다듬는 좀 더 사람처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는 모습이 보여졌고 사람들은 이에 불쾌함을 표하며 많은 비난을 쏟았다.

 

정윤석 작가는 이에 대해, 관점에 따라 이 영화의 소재를 보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그 불편함을 통해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봐야한다고 말하며 해당 장품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했고 이 작품의 문제의식은 우리에게 곧 도래할 미래이자 해결해야 할 질문들이며 <내일(2020)>이라는 제목 역시 그런 관점에서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의구심이 들게하는 <내일>



작품 <내일(2020)>은 ‘여성’의 성별을 지닌, ‘섹스돌’이 작품의 핵심 소재로 사용되었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공장에서 상품이 만들어지는 공정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엉덩이, 생식기, 목, 다리, 얼굴 등 여성의 신체 부분이 공장 노동자들에 의해 거칠게 다뤄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간접적 행위와 유사하게 느껴진다는 비판 여론이 많았다. 현 사회 속 ‘성’은 아주 민감한 주제로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을 통해 어떠한 시선을 제공할 때에는 그 어느 때보다 현명하고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설사 그것이 진짜 사람이 아닌 인형이더라도, ‘여성’의 신체만을 가지고 은밀한 부분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며 잔인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사람들, 특히 ‘인간 여성들’에게 불쾌감을 주며 그들에게 ‘정신적 성폭력’까지도 범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이 매년 국내·외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작가들을 선정해 지난 한 해 동안 이들이 준비해온 신작을 소개하고 시상하는 미술상이다. 한국의 미술과 2020년의 미술을 대표하는 중요한 전시이기에 조금 더 고민하고 고찰하여 선정해야 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여자, 남자를 나누어 한 성별만이 가지고 있는 신체가 잔인하게 주목되는 작품을 ‘올해의 작가’ 중 1인으로 뽑힌 것에 의구심이 든다.

 

<내일(2020)>의 주제와 소재의 관계성과 적절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공감하지 못했다. 그 결과, 불통의 작품을 작업한 작가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전시를 개최한 국립현대미술관에게도 화살이 돌아갔다. 결국, 국립현대미술관은 공식 sns를 통해 “영화 <내일>은 돈으로 인간 대용의 인형을 사고파는 당면 사회적 이슈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다루는 작업”이라며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같은 시대의 미술에서는 불가피한 면도 있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공식 해명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양한 반응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하면서, “이것이 동시대 예술이 사회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술관도 현재 성명서와 온라인의 다양한 비판과 의견들을 계속 경청하고 있다고 또 한번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전시 관람객 중 일부는 SNS와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채널 등에 글을 올려 “작가가 섹스돌을 작품의 소재로 삼고, 이 작가를 공공기관이 ‘올해의 작가상’ 후보로 삼은 것 자체가 거대한 여성 혐오다.”, “데이트 폭력이 사회문제인 한국에서 물체가 된 여성 신체를 두고 남성의 인간적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 혐오”라며 전시를 당장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 sns상에선 ‘#올해의작가상_정윤석_후보박탈하라’는 해시태그가 번지기도 하며, 루이즈 더 우먼(2020년에 시작한, ‘#미술계 내 성폭력’ 운동이 있던 시기에 학교에 재학 중이었거나 신진 작가로 발돋움했던 세대로 이루어진 여성 예술가 비평 모임)도 이에 동조의 목소리를 내어 예술계의 성평등을 강조했다.

 

 

 

누군가의 책임



인간 그리고 외로움이 주제였다면,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여성 섹스돌’을 메인 소재로 사용했다면, 여성의 성을 강조한 모션을 취하기보다 섹스돌이지만 ‘섹스’의 의미에서 벗어난 ‘인간’ 자체에 대한 것을 더 표현하는 것이 관람자들로 하여금 작품과 작품의 의미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말하는 인간다움을 표현하기에는 리얼돌에 성적 기능이 추가된 ‘섹스돌(리얼돌+성기능)’보다는 ‘리얼돌’과 일상 생활을 함께 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차라리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비디오 등 특정 대중문화에 몰두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말하는 ‘오타쿠’의 삶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이 작가의 의도와 더 잘 맞는 표현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작가의 표현방법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또한, 이 전시를 주최한 ‘국립현대미술관’의 결정은 현명했는지, 그들의 책임은 어디까지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의 결정에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여성이 여성의 몸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는 문제을 담는 과정에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있다면 여성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로 그러한 장면들은 최소화 했어야만 했다. 그것이 자신의 영향력을 인지하고 있는 작가의 도리이자 ‘국립’미술관의 의무라고 여겨진다. 시스템을 고발하기 위해 포착할 장면에 시각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또 다른 모순을 낳고 누군가에게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 본인과 미술관 측은 이번 작품이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았을 적절한 해결책을 찾았어야만 한다. 정윤석 작가를 올해의 작가 후보로 선정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사안을 교훈 삼아, 공공성에 위배되지 않을 전시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충분히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다. 수평적 시선이 빠진 반쪽짜리 영상에서 대다수 대중이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작가의 행위가 면죄부를 얻는 데에 미술관의 역할은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인식하고 각성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반쪽짜리 시선


 

비판이 이 작품의 전부라고 느껴질 만큼의 비판을 들으니, 정녕 ‘섹스돌’, ‘성’을 다룬 모든 작품들은 비판받아야만 할까라는 의문이 생기는데, 그것은 작가가 진심으로 주장하는 바를 작품에 어떻게 녹이고, 그것을 녹이려는 노력이 있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내일(2020)>은 단순히 여성이 성적 대상화가 되었고, 그 여성 섹스돌이 남성의 욕구 충족을 위해 여성의 신체를 커스터마이징해서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식의 ‘구체적 상황에 대한 역겨움’과 벌거벗은 인간의 욕구 충족의 장면을 ‘보고 있는 것’에 역겨움이 느껴진 작품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인 ‘인간다움’인가 ‘역겨움’인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유교적 사상이 남아있고 비교적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 정도의 반향은 작가도 충분히 예상했으리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최근 몇 년간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움직임이나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고 낙태, 리얼돌의 합법화 등의 민감한 문제가 잔뜩 나왔기 때문에 충분히 찬반의 의견이 갈릴만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작가는 섹스돌, AI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서 관객들의 생각을 확장시키고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제시한다고 했지만, 인간다움의 질문치고는 시각적으로 너무 강렬하고 자극적이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해하는데에 어려움을 느꼈다. 정윤석 작가는 “인간의 모순을 왜 이해시켜야 하나, 모순은 모순일 뿐인데. 이 작품이 하나의 메시지로 전달되거나 너무 친절하게 전달되지 않아도 좋고, 누군가에겐 불편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와 다른 것을 느끼면 좋겠다.”라고 덧붙이며 작품의 당위성을 주장했지만, 이 말이 사람들을 설득시키진 못했다. 작가는 여성 노동자의 손에 의해 탄생하는 여성 섹스돌 작업 장면을 보여주어 노동자들이 얼마나 감정을 배제한 채 단순히 ‘노동’으로서 이 일에 참여하는지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것을 순수한 작업 과정으로 보여주지 않고 상당히 폭력적이고, 괴상하며, 섹슈얼리티를 유린하는 듯한 이미지로 그려내면서 전혀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자본주의가 낳은 젠더와 인간성이 결여된 기괴한 풍경으로서 인간 모순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여성 섹스돌을 성애적으로 담아낸 방식은 분명 ‘여성 혐오적’이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살 만큼 명명백백한 실수라고 생각된다. 마치 사회에 부적응한 남자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대체물로 제시되는 여성 섹스돌과 마네킹을 최선을 다해 성적 타자로서 대한 듯이 말이다.

 

작가가 진심으로 주장하는 바를 작품에 녹이고자 했다면 이를 수평적으로 놓고 평등하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가령 여성이 만드는 여성 섹스돌을 남자가 사용하는 여성 섹스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면, 반대로 남자가 만드는 남성 섹스돌을 여성이 사용하는 남성 섹스돌, 여성이 제작하는 남성 섹스돌, 여성이 제작하는 섹스돌에 관한 이야기도 골고루 담았어야 한다. 이러한 수평적 시선이 빠진 반쪽짜리 영상에서 대다수 대중이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실을 작가는 간과한 듯하다.

 

 

 

충분한 소화의 필요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의 의식과 인지 능력은 깨어 있는데 예술이 이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면 과연 어떤 예술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 자신이 담고자 하는 이야기와 표현 방식이 맞지 않는 작업은 작가가 그 매체를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다는 뜻이며, 정윤석 작가의 <내일(2020)>이 이젠 대표적인 예로 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작가의 연구가 부족했거나 아예 잘못 판단한 경우일 수 있겠다.

 

민감한 주제일수록 더욱 심혈을 기울여 전하고자 하는 논지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만 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발발한 이러한 논란은 작품과 젠더 이슈, 성인지 감수성을 비롯해 예술이 이를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이와 더불어, 작가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해당 작품이 윤리성과 인권에 대해 더 냉정하게 평가되고 있지는 않은지, 성에 대한 민감한 현대사회에서 누군가의 입김에 의해 그의 작품의 본질이 헤쳐지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과 반성의 기회 또한 안겨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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