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양이를 그렸기에 가장 인간 다웠던 화가 - 루이스 웨인전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들은 어쩌면 가장 인간답다.
글 입력 2022.06.2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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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을 들어봤을 것이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 312만 시대, 더이상 동물은 이전에 주로 쓰이던 '애완동물'이라는 표현처럼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수단적인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반려'라는 말의 본 뜻처럼, 사람과 그의 반려동물은 평생을 더불어 함께하는 파트너인 셈이다.


언뜻 보면, 인간이 동물을 돌보는 것처럼 보인다. 때 되면 밥을 주고, 배변을 치워주고,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단순히 생계에 관한 부분을 보면 그것은 어느정도 맞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있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오히려 그들이 동물에게 받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가 고도로 발달되고 문명이 발전되는 만큼, 인간은 큰 풍요를 누리고 있는 반면 점차 자기 중심적이게 되고, 마음의 여유는 고갈 되어가고 있다. 반면, 동물은 늘 순수한 태초의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있다. 사람은 이런 동물과 교류하면서 인간다움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려동물'의 개념을 누구보다 명확히 화폭에 옮겨 담은 이가 있다. 바로, 고양이 명화계의 아버지이자 반려묘 피터의 집사, '루이스 웨인'이다. 그는 생전 '나는 말못하는 동물을 정말 좋아합니다' 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반려동물, 특히 고양이에 대한 지대한 사랑을 그림 속에 온전히 담아냈다.


루이스 웨인은 힘겨웠던 시기를 고양이와 함께 하며 치유 받았으며, 반려묘를 그려냄으로써 아내에게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와 고양이는 말그대로 ‘공생’을 넘어 서로를 ‘반려’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번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전시에서 고양이에 대한 애정 어린 화가의 시선을 오롯이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털 한 올까지 생동감 있게, 섬세한 묘사



루이스 웨인은 생계를 위한 부업으로 프리랜서 삽화가 일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그의 창작 활동 시작점이었다. 게다가 그는 누이들의 가정교사였던 에밀리와 사랑에 빠져 결혼 한 후, 유방암에 걸려 온 종일 집에서만 생활 해야했던 에밀리를 위해 다양한 움직임과 자세를 취하는 반려묘 피터를 스케치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루이스 웨인의 그림 속 고양이들은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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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두 마리의 적 사이에서>라는 제목이 이 작품에서 그의 섬세한 묘사가 드러나는데, 이 그림 속 고양이는 부엉이와 강아지라는 두 적들 사이에 끼어 입에 문 쥐의 사체를 사수하고 있는 모습이다. 고양이의 꼬리에 주목해보자. 고양이는 본디 겁을 먹거나 흥분하면 꼬리를 부풀리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그림 속 고양이의 꼬리는 확실히 일반적인 고양이들의 꼬리보다 부풀어 있다.


이렇듯 루이스 웨인은 고양이의 특성과 습성에 대한 관찰, 그를 통해 알아낸 것을 토대로 고양이의 털 한 올 한 올의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 전시장의 모두가 떠난 후 불이 꺼지면 당장이라도 액자 안에서 걸어 나와 움직일 것 만 같은 그의 그림 속 고양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특징이 숨어있다. 바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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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쇼의 초보 과학자>라는 제목의 작품 속에는 11마리의 고양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멀리서 보아도 각각의 고양이들은 각자의 뚜렷한 특색을 자랑하는 듯하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나 생동감 있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그 비밀이 11마리 고양이들의 각기 다른 표정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똘망 똘망한 표정, 화가 잔뜩 난 표정,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 듯 나른한 표정까지, 이 고양이들은 분명히 무언가를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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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사건은 작품 사진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 순간 나타났다. 위 사진을 보면, 고양이들의 얼굴 마다 노란색 테두리가 나타난 것을 확인 할 수 있는데, 바로 안면 인식 기능이다. 그 시절 루인스웨인의 묘사가 얼마나 생생했기에 현대의 기술로 고양이들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게 루인스웨인이 의도했던 그의 작품 속 다음 특징으로 연결된다.

 

 

 

고양이가 지구를 정복한다, 인간과 닮은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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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웨인의 고양이들은 점차 다양하고 풍부한 표정을 지을 뿐 아니라 인간처럼 입고, 인간처럼 행동하게 된다.

 

어떤 고양이들은 그 시절 상류층 귀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골프를 즐기는가 하면, 어떤 고양이들은 마치 신사처럼 중절모를 쓰고 양복을 빼 입었다. 또한 그들은 눈이 오면 썰매를 타고, 날이 좋으면 숲으로 나들이를 나가며 계절을 즐기기도 한다. 어디로 보아도 인간의 활동과 다를 바 없다.


아이러니 한 것은, 고양이들이 의인화된 그림이 어색하거나 이상하기 보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워서 과연 그들이 인간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에 관한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답다. 루이스 웨인이 처음 고양이의 의인화를 시도했던 19-20세기, 우아한 상류층 귀족들은 가면을 쓴 것만 같은 삶을 살아갔다. 표정과 감정을 숨기고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그것이 일종의 예의와 교양으로 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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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반대로 루이스 웨인의 그림 속 고양이들은 자신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었다. <향수병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들>에서 줄무늬 고양이의 장난에 향수를 잔뜩 뒤집어쓴 치즈 고양이는 가감 없이 잔뜩 성난 표정을 드러내 보이는가 하면, <숟가락 위에 달걀 얹고 달리기> 작품 속 고양이들은 놀이를 즐기며 들뜨며 흥분된 몸짓과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이렇듯 자유분방하고 당당한 그들의 행보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끔 만든다. 그 시절 귀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신에게, 타인에게 솔직할 수 있을까? 기쁜 감정, 서운한 감정을 때로는 숨겨야 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사회 풍조는 지금까지 잔존하고 있다. 그 속에서 한껏 움츠러들고 자신의 감정마저 속여야 했던 우리는, 어쩌면 의인화된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고 어떠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루이스 웨인은 최초로 이러한 고양이 의인화를 시도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기도 했다. 당시 고양이는 노처녀들이 키우는 동물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강아지보다 온순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동물로 잘 기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환경에서도 루이스 웨인은 전혀 굴하지 않고 비 오던 어느 날, 어미를 잃은 피터를 반려 동물로 맞이하였으며 그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도록 만들었다.

 

 


서로에게 ‘반려’가 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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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웨인에게 고양이는 단순히 함께 사는 동물, 혹은 그림의 소재가 아니었다. 그는 운명처럼 만난 아기 고양이 피터를 통해 죽어가던 아내 에밀리에게 기쁨을 선사할 수 있었으며, 여러 번의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고양이의 모습을 그리며 그 온기로 치유 받았다. 그에게 고양이는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였으며, 상처를 치유해주는 존재이자, 인생 전반을 함께한 동반자, 말 그대로 ‘반려’ 그 자체였을 것이다.


루이스 웨인의 작품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할 무렵, 그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폭풍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성실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 자신의 저작권에 대한 협상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의 모작들이 활개를 치고, 정작 자신에게는 한 푼도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의 첫 반려묘였던 피터가 세상을 떠났으며 가계부채로 인한 소송에서 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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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삶의 의지를 잃을 만큼 가혹한 상황에서도 루이스 웨인은 고양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림만 보아서는 그 시절의 루이스 웨인에게 닥쳤던 시련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그의 그림 속 고양이들은 유머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여전히 그들은 행복해 보였으며, 작은 마을을 이루어 오손도손 살고 있었다. 어쩌면 루이스 웨인은 그 안에 자신을 투영해보며 일종의 대리 만족감을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거듭된 시련으로 정신 병동에 수용된 이후 그려진 어딘가 기묘한 기하학적인 그림들을 두고 이것이 루이스 웨인이 조현병을 앓던 증거라고 일컫는 이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는 고양이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또렷한 정신으로 직물 디자이너이셨던 어머니가 자주 쓰던 태피스트리를 이용해 고양이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에 담긴 의미를 스스로 추측해보게 만들기도 했다.

 

 

 

알찬 구성을 통해 인해 더욱 몰입을 이끌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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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통해 루이스 웨인과 그의 고양이 그림에 푹 빠질 수 있었던 것은, 단연 전시장의 구성과 소품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루이스 웨인의 생생한 그림을 대변하듯, 전시장은 단순히 액자와 벽면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사람 크기 만한, 혹은 그보다 더 큰 고양이 판넬 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고, 이는 마치 고양이가 정말 인간처럼 우리와 함께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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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액자가 걸린 벽면의 밑 부분에 고양이를 그려 넣는다던지, 단순한 액자 배치에서 벗어나 생동감 있게 액자를 배치하고 작품 명을 텍스트로 센스 있게 배치한 것도 인상 깊었다. 사소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센스 있는 요소들이 더해져 루이스 웨인의 작품이 가지는 장점인 유머와 행복감을 더욱 더 고양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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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웨인 전시는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까지 방심하지 못하게 만든다. 고양이 발자국이 난 계단 위를 올라 어딘가로 바삐 사라진 듯한 환상 속 고양이를 쫓다 보면, 꽤 넓은 굿즈샵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에서 전시장에서 보았던 귀여운 고양이들은 여러가지 제품으로 변모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보통 전시가 끝나는 것을 체감하는 때가 마지막 섹션의 커튼을 헤집고 나가 바깥의 소리와 환경에 노출된 굿즈샵을 마주했을 때인데, 이번 전시에서는 달랐다. 굿즈를 고르는 과정 또한 작품을 감상하는 순간들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계단 한 칸만 오르면 닿을 수 있었기에 아직까지 전시장 안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전시 구성의 이러한 세심한 요소들이 루이스 웨인 전시를 더욱 실감나게 즐기게 해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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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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