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의식 과잉에 대하여

마음을 닦는 마음
글 입력 2022.06.1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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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의 멘탈 케어 프로그램,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상담소를 시청했다. 박찬민 아나운서의 딸인 박민하 양이 출연했고 '가족'과 '청소년'에 관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양한 키워드가 나왔다. '닫힌 가족주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부재' 등. 하지만 사연에 대한 솔루션으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바로 '자의식 과잉'이었다.

 

 

자의식 과잉.jpg


 

민하 양은 자신의 꿈을 이렇게 얘기했다. 배우로서 전세계 최초로 사격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고, 자신의 책을 출간하여 주인공으로서 영화 or 드라마를 찍고 싶다고.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을 듣기 전까지 그 꿈의 맥락이 나와 굉장히 닮아있다고 느꼈다. 나도 다양한 분야에서 고루고루 잘하는 사람이 되고, 또 그 분야들에서 명성을 쌓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항상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박사님의 솔루션은 단호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그저 "잘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라고 했다. 민하 양은 실제로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오박사님은 이어 그의 꿈이 마치 풍선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져져서 오로지 자기에만 몰두해있다고도 했다.

 

 

 

자의식에 대하여



대학교 전공과목에서 정신건강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배웠던 흥미로웠던 개념이 바로 '자존감'이었다. 너무 과도하게 낮은 자존감도, 너무 과도하게 높은 자존감도 실은 건강의 범위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업이다. 이것을 자의식과 연결지었을 때도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지나치게 경쟁주의적인 이 사회에서 적당한 자존감을 가지기란 정말 힘들 것이다.


작년에 개인 성경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에 남은 깨달음 중 하나가 인간의 자의식이 때로는 이기적인 행동을 일으키며 진리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게끔 한다는 것이었다. 좀 더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스스로에게 몰두한다면 그는 곧 (과장하자면) 재앙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우선 나는 기독교 신자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교리와 신념 일부는 찬성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지금은 성경공부를 쉬고 있지만, 때때로 삶의 시련과 깨달음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그것들을 떠올린다. 위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지극히 동의하는 바다. 그리고 오늘 방송을 보고 그 깨달음을 다시 상기했다.

 

진솔하게, 나를 바라보는 마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가치관으로 삶을 살아가지? '무엇' 되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거지? 그리고 이 물음에 답하기 오늘 아침에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읽었다. 인상깊은 구절을 공유하자면 이렇다.


 

"모든 것을 지배하는 마케팅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어,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인성마저 잘 팔아야 하는 상품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중략) 이제 살아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삶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처럼 연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존재가 아니라 퍼포먼스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자기 나름의 것은 의식적 경험에서 쫓아버리고 습득한 것(훈련해 배웠거나 소비해 얻은 것)으로 자신을 느끼려 한다."

 

-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중에서


 

위 문장을 하이라이트 치고, 두 번 세 번이고 읽었다. 그리고 지난 날을 떠올려보았다. 훈련해 배웠거나 소비해 얻은 것으로 나를 느끼려했던 수많은 순간들.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기보다는 살아 있는 것처럼 연출하고 싶었던 무수한 욕망들. 그랬던 나의 솔직한 과거들과 마음들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의 완벽주의적이고 강박적인 내면의 모습을. 이번 학기 전공과목 '가족치료' 수업에서도 알게 되었는데, (보웬의 다세대 가족치료 이론에 따르면) 이 마저도 가족의 세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전수된 요소'임을 알게 되었다. 즉 우리 할머니와 외할머니서부터 엄마 아빠도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면이 있다. 보웬의 다세대 이론에서는 이것을 세대 간 전수된 내용이라 보고, 나또한 그 내용을 습득하는 것은 그 이론에서 보면 당연함에 가깝다.

 

각설하고, 완벽주의와 곁들여져 강박적인 내면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지금의 나를 만든 8할이 성취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로 인해 얻게 된 많은 성장과 결과는 때때로 큰 기쁨을 주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스스로에게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A를 성취했으면 다음 B를 해야하고, 그 다음 C,D,E....스스로가 정한 완벽의 기준에 다가가기 위해 정말 애썼다. 그 과정에서 내가 나 자신에게 상처를 준 적도 많았다. 지금까지 들어온, 사람들이 보는 내 모습의 키워드는 '열정'일텐데, 사실 그 열정을 지속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나를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열정들은 아마 나라는 사람 존재 자체에 대한 방향보다는 '결과' 또는 '성취'를 향한 열정이었을거다.

 

 

 

마음을 닦는 '마음'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지? 지난 수많은 시간동안 나는 성취와 결과에 대해 그토록 지독하게 진심이었는데. 쿨한 척하지만 점수 몇 점, 등급 몇 점이라는 정량적 평가에 마음을 졸이는 나인데. 언제나 잘 할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으로 나아갔는데.'

 

이 생각을 마치고 다시한번 더 마음을 바라보았다. 마음을 바라보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저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그 전과 달리 마음에 매여있는 것에서 벗어나 제 3자의 입장에서 스스로의 생각과 관점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래. 마음을 닦는 그 마음이 필요한거야.

 

요즘은 월수금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있다. 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동작을 취하며, 동시에 호흡과 숨을 느끼는 수련을 한다. 요가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그 동작을 완벽하게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걸 알게 됐다. 사람마다 다른 취약한 부분에서는 쉬어가는 것이 필요하며, 호흡을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완벽한 요가 자세라도 그것을 숨을 참고 고통스럽게 버틴다면 그것은 진정한 수련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도, 자의식도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완벽한 성취라도 그 과정동안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자신을 갉아먹는 행위가 이뤄진다면, 그것은 진정한 자신이 아닐 것이다.

 

지금 당장 완벽하게 변할 수 없지만, 그런 불완전함과 모호함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절실한 순간이라 느낀다. 자신을 과대하게 팽창하지도, 축소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지금의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바라보기. 모든 사람은 평범한 동시에 비범하고, 평범하지 않은 동시에 비범하지 않은 면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걸 기억하기.

 

아무래도 우리 모두에겐 '마음을 닦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

 

 

 

신지예 컬쳐리스트.jpeg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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