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겹겹이 쌓인 편견을 파고드는 달콤쌉쌀한 웃음 – 폴레트의 수상한 베이커리 [영화]

계속 ‘더 나은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기 위한 고민
글 입력 2022.06.1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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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거기 가서 배울 게 또 많아, 젊은이들의 세계에.

야, 이러한 변화도 우리가 또 한번 체험을 해보는 구나.

그러니까 참 기분이 좋습니다, 요새.”

 

 

30여 년간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 왔던 ‘세계 최고령 MC’이자, 오랜 기간 국민적인 인기를 얻은 방송인이었던 故 송해 님의 부고 소식과 함께 그의 생전 일화들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중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은 2018년 故 송해 님께서 ‘퀴어문화축제’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었다.


당시 ‘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종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여기에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고 이야기하며 퀴어문화축제를 언급한다. 그리고 종로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은 퀴어문화축제에서 “배울 게 많다”고 이야기한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92세였다.

 

물론 나이와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굳이 연결시키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오랜 시간 학습해온 문화와 가치관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상당한 연세에도 당신의 입장에서는 새로울 수 있는 문화와 가치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배울 게 많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故 송해 님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몇 년 전부터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에서 따온 ‘라떼’가 미디어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과거의 가치관과 경험에만 기반한 말들이나 이에 담겨 있는 편견 어린 시선에 대해 이 말을 빌려 조금이나마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라떼’나 ‘꼰대’ 같은 말들이 들려올 때면, ‘나는 ‘잘’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과거의 경험과 가치관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해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 갈 수 있을까?’ 또 ‘그동안 체화해온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존재들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을까?’ 하는 여러 고민들이 계속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다.

 

그런데 여기 ‘라떼’나 ‘꼰대’를 훌쩍 넘어서, 자신의 개인적인 불행마저 ‘흑인’과 ‘아시아인’의 탓으로 돌리며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노인 여성이 있다. 그의 이름은 ‘폴레트’, 영화 <폴레트의 수상한 베이커리(Paulette, 2012)>의 주인공이다. 상상치 못할 경험을 하며 스스로의 생각도, 주변과의 관계도 점점 변해가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이 듦’과 함께 마주해 갈 고민과 우리 안의 편견들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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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쌓인 편견을 파고드는 달콤쌉쌀한 웃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이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가진 편견이 비틀어질 때, 우리는 어딘가 씁쓸하면서도 통쾌한 기분으로 웃음 짓게 된다. 영화 <폴레트의 수상한 베이커리>는 인종차별, 노인과 이민자에 대한 편견, 노인 빈곤 문제 등을 다루면서도 이러한 웃음 포인트를 너무나 잘 꿰뚫어 내는 ‘코미디’ 장르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폴레트’는 남편과 사별한 뒤 얼마 안되는 노령 연금과, 주워 온 물건이나 식재료들로 겨우 혼자 생활하는 노인이다. 그는 가난한 생활만큼이나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일부러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음식 속에 바퀴벌레를 넣고, 성당에서 헌금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신뢰하지 못하며, 흑인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면서도 ‘아랍인과 동양인, 흑인들이 프랑스를 점령해서 우리 일자리를 뺏어갔다’며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심지어 딸이 흑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위는커녕 손자까지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이렇듯 영화 안에서 드러나는 폴레트의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은 굉장히 노골적이고,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폴레트는 예전에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베이커리가 문을 닫게 된 이유를 주변에서 가게를 차린 다른 이민자들의 탓으로 돌리며, 이들 때문에 상심한 남편이 술만 마시다 죽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일을 겪으며 폴레트는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과 미움을 더 키워간다.

 

당연히 인종차별을 하는 ‘정당한’ 이유란 존재할 수 없듯, 폴레트가 내세우는 이유 역시 합당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다만, 폴레트가 마주한 비극과 가난이 폴레트의 인종차별적인 편견과 혐오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모두가 비극과 가난을 마주한다고 해서 인종차별주의자가 되거나 물리적인 여유가 있어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앞서 이야기했듯 폴레트가 마주한 현실이 인종차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빈곤한 삶에 약자의 자리에 몰린 채로 또 다른 약자들을 혐오하고 자신의 불행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는 폴레트의 모습이, 우리 곁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습들과 너무나 닮아 있기에 더 안타깝고 막막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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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폴레트 역시 편견의 대상이 된다. 영화 초반부 폴레트를 향해 가장 많이 들리는 대사는 ‘할머니가 설마…’이다. 우리 사회에서 폴레트와 같은 가난한 노인 여성은 물리적으로도, 또 편견과 혐오에도 굉장히 취약한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 영화 <폴레트의 수상한 베이커리>는 특히 이들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기에는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건강하지 않고, 어떤 사회적인 영향력도 가지지 못하는 ‘무해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여기는 편견을 과감하게 비틀어 버린다.


폴레트는 사회적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기는 하지만, 다른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이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범죄조직의 아지트로 직접 들어가 마약 파는 일을 시작하는 결코 무해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 심지어 폴레트의 친구들인 다른 노인 여성들 역시 폴레트의 범행을 알고는 그와 함께한다.

 

이렇듯 영화 속 폴레트와 그의 친구들이 저지르는 대담하고 선 넘는 범죄들은 노인 여성을 향한 우리의 편견을 파고들어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영화 역시 이들의 행동을 도덕적인 잣대 위에 먼저 놓기 보다는, 보는 이들에게 허를 찔린 듯한 씁쓸함과 웃음을 동시에 유발한다.

 

또한 폴레트가 보여주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적인 시선은 그 정도만 다를 뿐 우리 사회와 어쩌면 우리 개인 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폴레트가 범죄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또 그 범죄를 그만두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혐오했던 인종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들과 유대감을 쌓아가는 모습 역시 왠지 모르게 통쾌하면서도 괜히 미소를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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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동안 영화의 주된 화자로서 주목받지 못했던 ‘노인 여성’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부터 어쩌면 우리의 편견을 깨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전혀 ‘사랑받을 것 같지 않은’ 가난하고 성격도 괴팍하며 범죄까지 저지르는 노인 여성을 전면으로 내세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스스로의 선택으로 변화를 거듭하는 폴레트와 그의 친구들을 보면, 도덕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이들 안의 사랑스러움을 누구라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도덕적인 판단을 중요하게 내세우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다양한 소수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이들이 처한 현실을 너무 무겁지 않게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 무겁고 진지하게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이야기들도 꼭 필요하지만, <폴레트의 수상한 베이커리>처럼 다양한 화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곁의 편견과 혐오를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 있다면, 더 많은 중요한 이야기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용기 : 계속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


 

그저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꽤 심각한 범죄를 다룸에도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영화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코미디라는 장르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인공 폴레트가 인종차별주의의 태도에서 벗어나 제대로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폴레트의 모습은 얼마나 나이가 들더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폴레트의 변화는 폴레트의 힘만으로 이룬 것은 아니다. 폴레트에게 편견 어린 시선을 받고 상처가 되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늘 폴레트에게 무시받던 사위 ‘오스만’은 계속해서 폴레트를 친근하게 대하며 그를 배려하고자 한다. 어린 손자 ‘레오’ 역시 미움 받고 다투면서도 폴레트의 목숨을 구한 이후에 ‘우리 할머니’이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텃세를 부리며 폴레트를 때리는 ‘프랑스인’ 마약 판매책들 사이에서 그들을 말리며 유일하게 먼저 손님들을 소개해 준 것도 폴레트에게 막말을 들었던 아랍인 청년이었다.

 

이러한 사람들 속에서 폴레트는 스스로 세웠던 마음의 벽을 점점 허물어 간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혐오했던 누군가가 내민 손을 잡으며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 간다. 그리고 이것은 폴레트 스스로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폴레트는 다양한 사람과 마주해 가고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함께 보내며, 자신이 변하는 것이 두렵다고 고해성사한다.

 

 

"신부님, 제가 변하는 것 같은데 이 나이가 되니 두려워요.

전 아무도 안 좋아했어요. 흑인과 동양인은 경멸했죠.

일식집에서 밥을 먹었는데 맛있더라고요. 아랍 애하고도 친해졌고요.

우리 꼬마 검둥이랑 옆집 남자하고 화해도 했어요."

 

 

폴레트의 말처럼 오랜 세월 고수해온 자신의 가치관과 태도를 바꾸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두려운’ 일이 되어간다. 그것이 심지어 과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이 상처 준 사람들을 제대로 마주 봐야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변화를 받아들이는 용기’는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더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작점은 이러한 용기를 내는 것에서부터 일 것이다.

 

폴레트는 용기를 내어 사람들이 내밀어 준 손을 잡았고,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제대로 알아가며 그들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던’ 폴레트의 주변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중 한 명이 손자 레오였다. 누군가는 폴레트가 금전적으로도 여유로워진 만큼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 것이라 말한다. 실제로 폴레트는 제빵사였던 자신의 능력을 살려서 마약을 넣은 빵과 과자를 만들어 팔며 높은 수익을 내기 시작하고, 이를 통해 번 돈으로 레오와도 친구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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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폴레트는 마약 범죄 조직 두목인 ‘타라스’가 레오 또래의 아이들에게도 마약 넣은 과자와 빵을 팔자는 제안을 받고, 처음으로 자신이 하는 일이 법적으로는 물론 양심과 도덕에도 어긋나는 일이라는 걸 인지한다. 그리고 레오를 생각하며 타라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너무나 빈곤했던 생활을 겪고 그것에서 벗어나 여유를 누리는 생활을 해봤음에도 폴레트가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돌아가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다양한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소중해진만큼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폴레트가 자신의 편견을 깨뜨리고 사람들 가운데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단순히 그가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이전과 같이 편견과 불행 속에 홀로 살아갔던 폴레트였다면, 그 여유로운 생활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결국 얼음장같이 단단한 편견을 녹여 내고 제대로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고, 또 그것을 잡을 수 있는 작은 온기와 용기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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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폴레트의 주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가치관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강요되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또 아무리 변해간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폴레트가 주변 사람들에게 주었던 상처는 여전히 폴레트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나이 때문에, 너무 오래 다르게 살아온 시간만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영화를 보면서 나이가 얼마나 되었든 폴레트처럼 변화를 위한 용기를 낼 수 있다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어쩌면 ‘잘’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지나온 시간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마음을 넓혀가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신과 주변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을 키워가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폴레트가 그랬듯 어쩌면 물리적인 여유도,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도 필요할 수 있고, 무엇보다 스스로 변화를 위한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도 더 다양한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도 이를 도울 수 있는 환경이 좀 더 체계적으로 마련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도 계속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또 이러한 용기를 낸 사람들에게 조금은 더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우리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효중 태그 .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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