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열은 판도라의 상자 - 서른다섯, 늙는 기분 [도서]

이 글은 지금의 마지막 기억이다.
글 입력 2022.06.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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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은 나이 담론에 대한 한때의 의견을 글로 갈무리해 남겨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언제가 될 수 있을지 계속 재보고 있던 중이다.

 

얼마만큼의 나이를 먹어야 비로소 ‘늙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주제를 떠올릴 때마다, 여기에 말을 얹으면 “너는 먹어봤자 나이를 얼마나 먹었다고”라던가, “나잇값 못한다” 등의 말을 듣지는 않을까 걱정부터 되었다. 그만큼 조심스러웠고, 여전히 조심스럽다.

 

 

 

 

이 자리를 빌어 그에 대한 그동안의 내 입장을 굳이 밝혀보자면, 나는 ‘늙는 기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쪽에 가까웠다. 특히,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늙음에 대한 그 조롱성 언어가 너무나도 싫었다. 분명 저마다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 텐데, 그 흐름에 휘둘려 스스로마저 늙었다고 자조하기란 결국 얻는 것 하나 없이 제 얼굴뿐만 아니라 동년배들 얼굴에까지 침 뱉는 꼴밖에 더 되지 않나 싶었다.

 

흔히 쓰고들 하는 ‘그 기준’에 맞춰 설명해 보자면 반오십, 거기서 1년을 더 먹은 것이 바로 내 나이다. 이걸 자기 연민이라고 해야 할지, 참으로 애매하디애매한 기로에 선 나는 점점 늙음을 떠올리는 것을 스스로 금기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늙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마치 무례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땐 ‘서른다섯’과 ‘늙는 기분’이란 말이 묘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나는 서른다섯보다 9년은 어리지만, 분명 그 나이면 한창일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기에 대체 어디가 늙었다는 거냐고 반박부터 하고 싶었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비단 당신의 것만이 아니지 않은가, 왜 함부로 늙었다고 하는가, 하고 아직 살아보지도 않은 나이를 멋대로 상상하고 질타하며 늙었다는 표현을 견디지 못하고 발악했다.

 

내게 다가올 서른다섯은 절망보다는 희망이길 바랐다. 조금 더 어린 내가, 조금 더 자란 나를 위해 하는 변호가 차곡차곡 쌓이면 내 이후는 순순히 쉽게 정의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미한 희망. 그러니까, 이런 생각과 태도는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요즘의 나는 ‘그토록 요동치던 내 불안한 마음을 잠재워 줄, 안정을 얻은 서른 살’에 대한 환상까지 품고 있었다.

 

애초부터 듣고 싶었던 말을 미리 정해뒀기 때문이었을까? 첫 장을 펼쳤을 때 이미 나는 전투 태세를 갖추듯 상당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책에서 이소호는 드라마 〈사랑과 전쟁〉을 보며 이보다는 덜할 것이라고 판타지를 바라는 마음으로 봤다던 일화를 풀은 바 있는데, 솔직히 이 책을 펼치는 때 내가 딱 그 심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서른다섯 살의 늙는 기분이 대체 얼마나 상세하게 기록되었기에 책으로 나왔을까, 하는 궁금증에 경계심을 바짝 세우며 문화초대를 신청했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었을 때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서른다섯, 늙는 기분 표1 띠지.jpg

 

 

오랜만에 들여다본 타인의 세계였다. 처음 글을 읽으면서는 혹시 내가 요즘 내 안위에 치여 사느라 감수성이 그렇게 메말랐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소호가 실감했다는 노화는 신기할 정도로 공감이 안 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미리 알았다면’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코르셋 같은 엑스 스몰 사이즈를 입던 원래의 몸무게로 되돌아가기 위해, 그리고 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버는 족족 쏟아부어도 봤던 일화들을 풀었다. 더 이상 자본 치료마저 통하지 않는 늙음에 대한 좌절은 마치 꼭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역시 내가 아직 어리고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 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있는 걸까 의심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랬다면 글을 읽고 나서 나는 적어도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라며 안심했어야 할 것이다. 세간의 말마따나 ‘유리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기회를 좇아야 하는 나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박탈감마저 일었다. 그가 그리워하던 자기관리의 기준은 지금의 나에게도 이미 충분히 높았기 때문이다. 그의 가치 판단들은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그냥, 우리의 삶은 역시 나이와는 일절 상관없고, 그냥 다르다, 하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 보려 했다. 그렇게 반발심을 지우지 못한 채로 한장 한장을 겨우 읽어 나갔다.

 

그런데 이 일화들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텍스트가, 하필 책을 읽을 때 나의 집중력이 가장 하찮게 발휘되는 초장에 있었다. 나는 이를 읽는 내내 간과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책에 쓰인 이야기는 ‘뒤집어진 그’였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의 ‘거울’이었다. 그의 거울은 세상의 잣대를 비추며 그의 모습이 상으로 맺히던 각도를 내게 알려주려 했다. 그리고 여지껏 나를 수없이 저울질하던, 나에게만 들리는 내 안의 목소리로부터 나를 잠시나마 해방시키기도 했다.

 

 

거울 앞에 선다는 것은 공포다. 

거울 속에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울은 아이러니하게 내가 아니기도 하다.

거울은 남이 보는 내 모습.

그러므로 좌우가 반전된 내 모습이다.

[...]

그러므로 이곳에 밝힌다.

그러니까 나는 뒤집어진 나를 여기 남겼다.

사회로부터 받았던 무수한 무시와 시선을 담았다.

그것이 똑바로 나를 비추고 있는 거울이라 철석같이 믿고. (pp.6~7)

 

*느낀 바를 담아내기 위해 원문의 글줄 정렬을 임의로 변경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책을 열었던 글의 말미엔 안전에 대한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던 경고성 메시지와 함께 이를 읽어나갈 준비가 되었냐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홧김에 그 옆에 “아니요.”라는 대답을 적어버렸었다. 그러면서도 다음 페이지를 펼쳤다. 그렇게 책이라는 벽을 사이에 두고, 그의 거울과 나의 거울은 계속해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모순에 또 모순을 직면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읽은 분량이 책의 반절 정도를 넘겼을 즈음부터는 급기야 그와 함께 분노하기 시작했다. 책에 흔적을 남기던 빨간 색연필이 요동쳤다.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하이퍼 리얼리즘적이라, ‘몰랐다면 좋았을’ 그가 겪은 편견의 표현들이 내 마음에 푹푹 내리꽂혔다. 책을 읽기 전부터 겁을 냈던 만큼 역시나 상처 입었다. 왠지 모를 억울함도 올라왔다. 그렇다고 한들, 결국 책을 펼친 건 나였다.

 

그런데 내가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될 만큼 책임을 다하긴 했나. 이 책은 계속해서 나를 책임지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나름의 고민을 하며 각자의 어려움에 맞서 싸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그래서 책임이란 것이 항상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거울에 맺힌 책임의 상을 응시하며, 내 마음도 몰라주는 채로 내려버린 결정들이 내 최선이었다고 우물쭈물 물꼬를 튼다. 이게 당장의 내가 살아남아 왔던 방법이다, 그러니 아직은 고작 책임의 질량도 아닌 부피를 어림잡는 정도가 내 지금이다, 라며 미숙한 말들을 내뱉게 된다.

 

요즘의 나는 자기 확신이 부족해서 일화들을 멀리하고 있었다. 어떤 말이 내게 영향을 끼치고, 나를 한계에 가두어버릴지 두려워했다. 맥락이 아닌 단어만 접해도 쉽게 예민해져 버리는 탓에, 너무나도 피곤한 동시에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내가 세워왔던 경계는, 나까지 인정해버리면 정말로 진실이 될 것만 같은 의심과 믿음들을 겨우겨우 쌓아 올린 허술한 모양새였다.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라는 동요의 가사처럼, 어렸을 때의 우리는 대부분 어른스러울 것을 강요 받으며 자라왔다. 그리고 그 어린이가 준비가 됐든 안 됐든, 태어난 이래로 만으로 열아홉 살을 넘기기만 한다면 불가역적으로 성인이 된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나면, 이제 하루라도 빨리 늙음에 대비해야 한다. 사회적 나이, 어른. 각자의 시간이란 것을 전혀 고려해 주지 않는 세상에게 내쫓기는 나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어린이에 대한 존중도 어른에 대한 존중도 없는 곳에 세워져 있었다.

 

 

안타깝다.

누구 하나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

내가 거닌 거리마다 폐허다. (p.159)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

내려놓으라고? 내려놓으면 다 될 거라고? 허울뿐인 말이다.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주변에서 갖고 있는 나에 대한 기대밖에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씨발, 난 인간이다. (p.196)



《서른다섯, 늙는 기분》에 남겨진 이소호의 삶의 궤적은 내가 전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영역이었다. 당연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타인인데다, 그와 나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그가 최선을 다해 헤맸던 것만은 누가 읽어도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지나왔던 그의 나이들을, 있는 그대로 읽었고 그대로 지나가게 두었다. 결론에서 그가 비친 대담함은 내게 제법 칼칼하게 시원해서, 내 속을 싸악 내려주기도 했다. 적어도 나이에 대해서는 세상과 개인을 떨어트려 놓기 위해 그가 일으켰던 물결은 내가 있는 섬의 지형에 어떤 자국을 남겼을까.


 

특히 이 책을 쓰는 동안엔 이보다 건강한 적이 없었다. 내 치부와 고통을 다 드러내고 나니 더는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고맙다. 이 책은 나를 수치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으며 그 수치를 드러내 자존감을 찾게끔 도와주었다. 사이사이 위기도 있었다. 삼십 대 중반의 이야기가 거기서 거기인 것도 있겠지만 체력 말고는 별로 내가 달라진 게 없었다는 것, 그게 가장 컸다. (p.219)

 

 

과거에 살면 후회하고, 미래에 살면 불안해진다는 말이 있다. 지금에 머물지 못해 시간선을 줄곧 헤매고 있던 나는, 맥락의 겉을 빙빙 돌기만 하고 가끔씩 분노의 엇박자를 내며 배회하고 있었다. 이제 인정할 시간이다. 우선, 조바심에 애꿎은 늙음을 노려보고 말았던 나의 기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볼 것이다.

 

나는 꺾인 것이 아니다. 희망을 바라며 위를 향해 젖혀있던 고개의 수평을 맞춘 것이다. 보던 것과 다른 상이 맺혀있어도 가장 속 시원한 초라함을 느낀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제법 그럼직한 마음이 된다. 과연 서른다섯 살의 나는 어떤 기분을 갖고 살아가게 될까.

 

이 글은 지금의 마지막 기억이 될 것이다.

 

 

 

민정은.jpeg

 

 

[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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