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앙소르를 좋아하세요.. [미술]

소개하고 싶은 작가의 작품
글 입력 2022.06.1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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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보리수 열매,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를 연상케 하는 광경이 눈 안에 가득 찬다. 상기된 군중들의 얼굴들 때문에 한여름같이 느껴지고, 어디선가 시끌벅적한 음악대의 연주가 들려올 것 같다.

 

아-잠시만요, 라고 말할 겨를도 없이 빨간 망토를 걸친 거대한 한 남자가 내 어깨를 무심히도 툭 치고 지나친다. 광기 어린 웃음을 띠는 그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미간조차 찌푸려지지 않는 압도감이, 순간의 당황함을 가뿐히도 이겨버린다.

 

 

131.jpg

제임스 앙소르,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 Christ's Entry into Brussels>, 1889, 

252.7 x 430.5cm, 폴 게티 미술관 소장

 

 

몇 달 전 폴 게티 미술관을 방문했던 일이다. 머릿속에 흐리게 남은 미술사 지식을 꺼내 복습하느라고 어지럽던 두 눈이 한 작품에 꽂혔었다. 이전에 잠시 접했던 제임스 앙소르의 작품,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 (Christ's Entry into Brussels)>이었다.

 

관객과 눈이 마주친 이 그림은 보란 듯이 붉은 신호에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처럼 시선을 한 번에 끌어당긴다. 저기 맨 앞에서 날카로운 것을 들고 앞장선 남자의 눈을 주목해 보아라. 조금은 지나치게 웃는 모습이 그 어떤 것도 무색하게 만들고도 남을 것 같지 않은가.


당대 작가들보다 그리 유명하지는 않았던, 이 화가의 작품 속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이 사람들과 섞이는 경험. 그것으로 나만의 미술관 방문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며, 그림 속 인물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인파에 묻혀 입을 맞추는 이들. 아가씨를 모시는 듯한 여성의 살가운 귓속말, 나만큼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동그랗게 눈을 뜬 한 남성. 한편 흰 가면에 붉은 입술, 피에로를 생각나게 하는 섬찟한 가면을 쓴 이들도 보인다. 여기는 대체 무슨 상황이며 화가는 왜 이러한 광경을 담았을까.


우선 화가에 대해 알기 전에 그가 속한 벨기에 최초의 아방가르드 그룹, 레 뱅(Les Vingt, Les ⅩⅩ)이라고 불리는 ‘20인회’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인회는 스무 명의 예술가들이 국가가 전시회를 독점하는 것에 저항하면서 생겨났다. 마치 프랑스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이 까다로운 심사를 받았던 살롱전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앙데팡당’을 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레 뱅 이전에 ‘레소르(L'Essor)’라는 그룹이 있었다. 잠시 ‘레소르’의 설립 배경을 거슬러 살펴보자면, 1876년 브뤼셀의 미술 아카데미 동창생들이 모이게 되는 데부터 시작한다. 이 푸릇한 젊은이들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예술세계에 더 관심을 가졌고, 브뤼셀의 부르주아, 보수적인 예술계에 대비되는 반항아들이 되어 그룹을 만든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1883년, 앙소르가 그린 <굴 먹는 사람>이라는 작품이 분열의 원인이 된다. 이 작품을 수용할지에 대한 의견이 그룹 내에서 분분해지면서 일부 예술가들은 떠났게 되었고, 결국 레소르는 해체하게 된다.

 

이 작품은 앙소르의 여동생이 식탁에서 굴을 먹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미혼 여성이 굴을 먹고 술을 혼자 마시는 행위’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었다. 작품의 ‘굴’은 정욕을 촉진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었고, 이는 기득권을 차지한 남성들에 의해 성적 욕망의 의미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과는 아주 다르게 홀로 여성이 술을 차지한 행위는 불건전하다고 여겼다.


결국 그의 작품은 당시 안트베르펜 살롱전에서 거부되었고, 레소르의 일원들에게도 거부 받게 된다. 진보적이라고 여겨졌던 레소르도 기존의 미술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며, 동시에 제임스 앙소르의 진보성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앙소르와 동료들은 더 자유로움을 쫓는 미술그룹인 ‘20인회’를 새롭게 창설하게 된다. 그렇게 레 뱅은 벨기에의 예술가들이 모여, 1883년부터 1893년까지 10년 동안 매년 예술 전시회를 열게 된다. 제임스 앙소르는 현실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었고 20인회에서 활동하면서, 해골이나 망령 같은 요소를 그림 속에 넣어 짙은 어둠의 색채를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인 상황과도 관련 깊다.

 

당시 벨기에의 권력자이던 레오폴드 2세는 콩고에 식민지를 세워 비약적인 부를 만들었다. 높이 치솟은 부만큼 골고루 부가 돌아가지 못해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자들의 격차는 커지기만 했고, 살아남기 위한 파업과 군중 시위도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짓밟으려는 핏빛에 물든 학살 또한 일어났다.

 

앙소르의 또 다른 작품, <파업 또는 어부들의 대학살>을 보면 의식을 잃은 사람에게조차 계속 폭력을 가하는 군인이 등장한다. (신미라, 2019) 이러한 묘사는 지배계층에 대한 분노를 암시하며 폭력적인 사회에 대한 고발이자 증인이 된다.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 역시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889년 노동자들의 파업을 탄압하려는 대학살이 일어난 시기이다.


제목은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이었지만 실제적으로는 ‘군중’을 더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즐거워 보이는 군중의 모습은 서구사회에서 오랫동안 진행된 카니발적인 면모를 보여주는데, (조수진, 2011) 카니발은 사순절 전에 시작되었으며, 행진이나 공연과 같이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치 어른들이 대학 진학을 앞두기 전에 맘껏 놀라고 어르듯이. 말 그대로 큰 시험을 앞둔 어른들을 위한 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카니발은 재미와 동시에 지배집단을 향한 풍자이자 조롱의 역할도 다했다고 한다. (조수진, 2011) 그러므로 이 작품은 권력자였던 레오폴드 2세에 대한 반항과 그에 대한 쓰라린 비판적 시각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림 상단에 위치한 빨간 깃발의 글귀, ‘Vive La Sociale(사회주의 만세)’를 통해 결국 민중이 이길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

 

그리고 다시 그 군중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어쩌면 그들이 쓴 무서운 가면은 흘러나오는 눈물을 감추기 위함이었을지도. 악대의 음악에는 광기 어린 서러움이 담겨있었을지도. 군중을 가득 차게 그림으로써 국민이 중심이 되는 국가를 원했음을, 그토록 바라는 마음에서 인물 한 명 한 명을 빼곡히 그려 넣었음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된다.


오랫동안 어둡다는 이유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앙소르. 그러나 꿋꿋이 작품 세계를 지켜나갔던, 그의 진심이 명확하게 전해지는 순간이다.

 

 

* 참고자료 

- 조수진. (2011). 제임스 앙소르 회화에 나타난 카니발적인 특징. 현대미술사연구, 29(), 239-264.

- 신미라,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 1860-1949)의 <1889년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 The Entry of Christ into Brussels in 1889>(1888)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2019, pp. 1-45.

- Andrew Smith, “Les Vingt and the Belgian Avant-Garde” A Discussion of the Music Staged Under the Auspices of Les Vingt; its AEsthetic Relationship to Music, Art and Literature in Belgium and France, with reference to La Soxiete Nationale de Musique, Paris, Doctor of Music Arts Degree, The Hartt School, University of Hartford, 2003, pp.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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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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