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퇴’와 ‘고’ 사이 망설임을 거듭하는 우리에게 [사람]

우리 삶에도 필요한 '퇴고'의 과정
글 입력 2022.06.1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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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개월 간의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을 거치며,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곤 했지만 4개월 전을 돌아봤을 때 분명 변화한 부분도 있다. 그 중 하나가 ‘퇴고’에 좀 더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글을 쓰는 과정에서 ‘퇴고’는 필수라는 걸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퇴고는 유난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스스로 쓴 글인데도, 아니 오히려 스스로 쓴 글이라서 애써 끝낸 글을 다시 돌아보며 부족한 부분을 마주하는 것이 더 어려웠고, 왠지 모르게 민망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교수님께는 죄송하지만, 그동안 퇴고도 제대로 안한 채 레포트를 낸 적이 참 많다. 그렇게 낸 레포트는 노트북이나 외장하드 깊숙한 곳에 저장해두고 웬만하면 열어보지 않으려 했다. 다시 읽어봐야 할 일이라도 있을 때는 막연한 죄책감과 부끄러움, 레포트를 쓸 당시의 괴로움이 밀려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나서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흐린 눈을 하고서야 이를 간신히 다 읽어낼 수 있던 적도 많다.

 

하지만 아트인사이트에서 매주 글을 쓰며, 에디터 네임 태그 속 이름과 함께 글이 올라가서 인지 불특정 다수에게 글이 보여진다는 생각 때문인지, 조금 더 퇴고에 힘을 내게 되었다. 몇 번씩 글을 다시 읽어보고 때로는 소리 내서 글을 읽어보기도 하면서, 맞지 않은 표현이나 오해를 불러 일으킬 표현이 있는지, 조금 더 좋은 표현은 없을지 살펴보았다.

 

때로는 이렇게 고민하면서도 결국 처음에 썼던 표현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고, 계속되는 고민과 수정에도 확신 없이 ‘될 대로 되라’며 퇴고를 끝마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퇴고’라는 이름 아래 여러 번 고민하고 생각해 본 것들은 지금의 글 뿐만 아니라 이후의 글이나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또 이것이 글을 쓴 자신 뿐만 아니라 글을 읽을 누군가 에게도 조금은 편안한 글로 다가가기 위한 밑 바탕이 될 거라 생각한다.

 

 

 

'끝'을 앞두고 그동안의 시간을 곱씹어 살피는 일


 

‘퇴고(推敲)’는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음. 또는 그런 일.’ 을 가리키는 고사 성어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당나라 중기, ‘가도’라는 시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나귀 등에 앉아 길을 가면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밀다로 할까? 아니야, 두드린다가 더 좋아. 밀다가 더? 아니지 두드리다.

허 참, 헷갈리네.”


그러면서 혼자 손짓으로 미는 시늉도 해 보고 두드리는 시늉도 해 보았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그를 힐끗거리며 이상한 눈길을 주었다. 하지만 가도는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지금 시 한 편을 두고 혼자 씨름 중이었다. 가도는 앞의 세 구절은 만족스러워지만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고(敲)'로 할까, '퇴(推)'로 할까 갈피를 잡지 못했다. ‘두드릴 고(敲)’를 쓰면 “스님이 문을 두드린다”가 되고, ‘밀 퇴(推)’를 쓰면 “스님이 문을 밀었다”라는 뜻이었다.

 

그때 높은 관리의 행차가 나타났다. 하지만 가도는 어떤 글자가 더 좋을지에만 깊이 빠져 앞에 누가 오는지도 몰랐다. 이윽고 제멋대로 가던 나귀가 행차를 가로막았다.


“무엄하구나!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행차를 가로막느냐!”


가도는 시종들에 붙잡혀 앞으로 끌려갔다. 다행히 그 관리는 유명한 시인 한유였다.

가도가 길을 막은 사연을 이야기하자 한유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여보게, 그건 두드릴 고(敲)로 하는 편이 낫겠네.”


이 일을 인연으로 두 사람은 고삐를 나란히 하고 돌아가 함께 시를 논하며 친구가 되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퇴고 [推敲] (공부왕이 즐겨찾는 고사성어 탐구백과, 2016. 1. 15., 글터 반딧불, 황기홍)

 

 

고사 속 ‘가도’처럼 ‘한유’와 같은 존재를 맞닥뜨릴 수 있는 행운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퇴’와 ‘고’ 사이에서 망설임을 거듭하고 때론 스스로와 타협하면서 글을 다듬고 완성시켜 간다. 퇴고가 어려운 이유는 이렇듯 코 앞에 ‘완성’ 혹은 ‘끝’을 앞두고 잠시 멈춰서는 일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퇴고는 얼마만큼 해야 끝낼 수 있는지 그 기준 또한 스스로 정해야 하기에 더욱 어렵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기 만족과 현실적인 타협 사이에서 끝없이 줄다리기를 하며 ‘최선’을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대기도 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갔던 시간들과 그 결과물을 다시 곱씹어 살피게 된다. 어느 방송에서 김영하 작가가 일상적인 공간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집중이 잘 되는 이유는 일상적인 공간에 남은 기억과 상처들 때문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일상적인 공간에서는 집중을 하려고 하면 그런 기억들이 떠올라 집중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퇴고의 과정도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떻게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어떤 단어와 구성을 활용할지, 글을 쓰며 했던 수많은 고민과 그것을 견뎌야 했던 마음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어려운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꼭 글을 쓰는 과정이 아니더라도 어떤 일을 마무리하기 전에 끝내고 싶은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멈추어서, 그동안의 과정을 점검해 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결과를 위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고쳐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괴롭고 힘든 일임은 분명하지만, 그 필요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물론 지나친 ‘완벽주의’에 얽매여 지나온 것들에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자신을 극한으로 모는 것도 좋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를 외면하고 스스로에게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결국 진짜로 손에 남는 것은 없을지 모른다. 열심히 퇴고를 해서 내보낸 글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기억에 남지만, 퇴고도 하지 않고 ‘적당히’ 마감과 구색을 맞춰 쓴 글은 다시는 꺼내보지 않을 것처럼 숨겨놓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퇴’와 ‘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망설임을 거듭하는 우리이지만, 그 망설임을 외면하지 않고 그동안의 과정과 지금의 고민을 계속 마주해 나가는 것 만으로도 ‘잘 하고 있다’고, 그것이 무엇이든 ‘더 나은’ 결과를 향하고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오늘도 용기를 내 글 뿐만 아니라 어떤 것에서라도, ‘퇴고’를 포기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이 글 안에 한가득 놓아 둔다.

 

 

 

글 안에서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이처럼 퇴고는 글을 쓰는 스스로가 더 나은 글을 써 나가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글을 읽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처음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온전히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풀어내는 데 집중한다면, 퇴고의 과정에서는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 글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또 어떻게 받아들여졌으면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물론 읽는 이들의 입장에서 표현 자체를 더 보기 좋고 와닿을 수 있게 고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상처받거나 혹시라도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나 감정이 멋대로 끄집어져 아파하지는 않을지, 누군가에게 무례할 수 있거나 어떤 누군가를 배제하는 표현을 쓴 것은 아닌지,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편견을 재생산하는 내용이 포함되지는 않았는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읽는 이들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프로 작가들뿐만 아니라 글이나 말을 통해 누군가와 소통하려고 한다면 꼭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태도를 ‘불편러’라거나 지나친 ‘자기 검열’이라고 깎아내릴 수도 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을 고려하다 정작 글이 방향을 잃고 흔들리게 될지 모른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통에 있어 이렇게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는 것은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과 글 안에서, 대화 속에서 더 즐겁게 함께 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들이 모였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삶과 사회를 향한 더 풍부한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산자로서의 입장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 역시 고려하며 고민과 수정을 거듭해나가는 것의 필요성은 다른 예술 분야에도 적용된다. 최근 2021년에 미국에서 방영된 패션디자이너들의 경연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19>을 보았다. 추억 속에만 있던 프로그램의 새로운 시즌을 보니 반갑기도 했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반영된 의상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의 멘토인 ‘크리스찬 시리아노’가 “Edit! Edit! Edit!” 이라고 외치며 디자인에서 수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특히 디자인과 같은 예술분야에서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영감이나 창의성에 기반한 아이디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에 못지 않게 그러한 아이디어를 잘 다듬고 때로는 과감하게 덜어내며 옷을 입을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는 과정 역시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도 기발한 아이디어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수정을 거듭하면서 글에 담긴 생각을 점점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고, 읽는 이들의 입장을 고려하며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스스로만 보려고 쓰는 글이 아닌, 더 많은 타인과 소통하고 무언가를 공유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글이라면, 퇴고를 통해 계속 고민하고 수정해 나가는 것은 생략할 수 없는 과정일 것이다.

 

그 필요성을 알면서도 퇴고를 앞두고 계속해서 한숨이 나오고 퇴고를 미룰 핑계를 자꾸만 찾게 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이 글도 얼마큼이나 퇴고를 할 수 있을지, 퇴고를 통해 얼마나 ‘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글을 나중에 다시 볼 스스로도, 그 글을 보게 될 누군가에게도 그것이 조금 더 편안하고 공감 될 수 있는 것으로 다가갔으면 한다. 그래서 오늘도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퇴고를 이어 간다.

 

 

 

김효중 태그 .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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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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