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에 대한 '작별인사'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6.0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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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를 읽었다.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한번 읽어보고 싶기도 했고, 전자책 플랫폼 주간, 월간 1위를 달리고 있는 책이었기에 고민없이 택할 수 있었다. 기대보다 좋았던 책으로 남진 않았지만, 완독하기에 어려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감탄을 하며 읽었던 구절들을 나누어 보려고 한다.


[“이야기는 인간이 겪는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은연중에 말합니다. 가장 많은 인간이 믿었던 두 종교는 모두 하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최초의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이야기가 인간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주신다고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거기까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취제는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이야기는 인간의 공감 능력을 이용해 인간들을 끼리끼리 결속시킵니다. 같은 이야기를 믿는 인간들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 다른 인간들에게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굽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모두 어떤 이야기를 믿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이 음모를 꾸민다는 얘기, 조선인이 대지진을 틈타 우물에 독을 탄다는 얘기, 마녀들이 밤마다 끔찍한 저주를 행한다는 얘기. 그 결과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들이 말하는 자아니, 존재니, 의식이니, 이야기니 하는 것들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p349)]

 

공감한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 아닐까.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게 만들고, 다양한 의견들을 나눌 수 있게 만들어 결속시킨다. 책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이야기의 힘이 곧 종교의 힘이라는 생각도 한다.

 

책 속에서 주인공들을 인간을 그다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기적인 존재에, 괜히 힘들게 살아가는 존재로만 인식된다. 이야기는 쓸모 없을까? 아무 의미 없는 그저 부정적인 결속의 원인이자 고통의 정당화 수단인 것일까? 동시에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얻고 꿈을 찾는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네가 너도 내가 나라는 것도 모르고 만나게 될 거야. 어쨌든 만나게 돼. 충분히 긴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긴 시간일까?”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우리가 그전에, 그러니까 내가 나라는 것을 알고, 네가 너라는 것을 잊지 않았을 때, 어디선가 꼭 다시 만날 것만 같아.” 나는 선이와 나누는 이런 이야기들이 언제나 좋았다. 선이의 시선은 늘 아주 먼 곳을 향해 있었다. 내가 눈 앞에 닥친 뭔가로 전전긍긍할 때, 선이는 무한대의 관점에서 우주의 시간으로 생각했다. 그때도 이미 선이에게는 영적인 기운이 넘쳤다. 우리는 여기서 헤어질 것이고, 아마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할 것이고, 다시 만나려면 억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어찌 보면 진부한 말도 선이가 말하면 더없이 아름다운 비가처럼 들렸다. (p484)]

 

표현이 참 좋았다. 나도 그들의 대화에, 그들의 우정에 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사람이라면 (비록 이 책 속 주인공들은 온전한 인간은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 관계를 맺고, 그 관계가 끊겨 버릴까봐 걱정하고, 끊어진 관계에 아쉬워하기 마련이다. 그런 마음들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구절이었다. 비록 지금 이 순간의 관계로는 너와 내가 마지막일지도 모르지만, 또 어느 순간의 어느 관계에서는 너와 내가 다시 시작일수도 있다는.

 

[선이의 세계관에서도 생에 대한 집착은 당연했다. 지금의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개별적인 의식을 갖고 있지만 죽음 이후에는 우주정신으로 다시 통합된다. 개별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나와 너의 경계 자체도 무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이에게도 이 생의 의미는 각별했다. 개별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니 너무나 짧은 이 찰나의 생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분투하고, 우주의 원리를 더 깊이 깨우치려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선이에게는 그래서 모든 생명이 소중했다. 누구도 허망하게 죽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자신의 목숨도 헛되이 스러지지 않도록 지켜내야 했다. (p227)]

 

[그 결과로 이들은 궁지에 몰린 인간들처럼 잔인하고 무정하게 자기 생존을 도모하는 데에만 몰두하게 되었고, 그럴 때 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 되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어쩌면 이들도 인간이 심어놓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신까지 믿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토록 삶에 집착하며 죽음을 피하고자 한다면, 어째서 그들이 사후 세계를 약속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겠는가. (p223)]


작별인사. 왜 제목이 작별인사일까? 작품 속 주인공 ‘철이’는 휴머노이드로 영원히 살아갈 수 있지만 삶을 포기한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죽음을 결심하고 겸허히 받아들인다. 인간은 살기 위해 집착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이러한 소망과 두려움 속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하는데 말이다.

 

우리의 생은 너무나도 특별하다. ‘나’는 하나뿐이다. 이 순간, 이 세계에서 나 혼자.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잘 살아내려고 하고, 그것은 이따금 우리를 너무 버겁게 한다.

 

너무나도 특별하고, 너무나도 잘 살아내고 싶은 욕심에 우리는 고통을 피할 수가 없다. ‘다음’ 세계, ‘다음’의 나를 상상할 수 없기에 지금 이 삶에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욕심은 실제로 잘 살아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한다.


작가가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싶었던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휴머노이드, 인간다움, 종교, 고뇌와 고민, 감정 등등 정말 많은 힘을 쏟은 것이 느껴졌다. 작가는 이 책에 대하여 ‘어쩐지 슬픈 결말’이라고 표현한다.

 

정말이지 어쩐지 슬픈 삶들인 듯 하다.

 

 

[윤영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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