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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선혈 위에 살고 있는 우리가 [공간]

제 67회 현충일을 맞이하며

by 윤지원 에디터
2022.06.06 17:39

 

 

2022년의 6월은 흐린 날씨가 연속이었다. 비가 올 것처럼 구름이 해를 가리었고 결국엔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했다.

 

공기가 머금은 물기는 뜨겁게 열을 지피던 건조한 대지를 촉촉하게 만들었고 그 흙에서 자라나던 생명들은 간만의 수분에 목을 축였다. 다시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기 시작했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초여름이 인사를 하는 듯하다. 그렇게 6월은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다가왔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5월이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가족의 행복을 바라고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날들이 많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그러했고 좀 더 사회를 넓히면 선생의 은혜에 감사하는 스승의 날도 있었다. 석가탄신일에는 오색 연등이 하늘에 주렁주렁 달렸고 연등 행사에 눈을 빛내며 감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따스함 넘치는 5월에서 불과 며칠이 지난 오늘, 어쩌면 가장 차가운 날일 수도 있겠다.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던 지난 달과 대조되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참혹하고도 잔인한 범죄인 살인, 그리고 그 살인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일어났던 시기에 대한 날이기 때문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는 오늘, 현충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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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발전이란, 결국 생존이 보장된 시기에 이루어진다. 당장 죽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에 노출되어 있다면 개개인이 남긴 문화적 유산은 있을 지 몰라도 그 문화가 꽃피울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의 우리가 현대의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생존이 보장되어 있고 그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의식주에 심각한 결여를 비교적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살펴보면 물론, 산업화라던가 민주화라던가 하는 극동의, 그러나 위대한 문화 유산들이 탄생한 시기가 있긴 하였다만 그 때에도 생존하며 이루어낸 것이었다. 즉, 나, 너, 그리고 우리가 생존조차 보장받을 수 없었던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제의 탄압이 심각해져 총동원령을 내리던 시기에, 살기 위해 이웃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시기에는 문화조차 숨을 죽였다. 숨을 죽이고 울었다. 그 울었던 자국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잔혹한 폭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충원에 갔다. 이유라는 건 딱히 없다. 그냥, 가고 싶어서 갔다. 그래서 무언가 거창한 것을 깨닫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공간을 다 둘러보지도 않았다.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앞에서 향을 피우고 묵념을 했고, 현충탑 앞에서도 역시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현충일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거닐고 있었고 어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 소리도 들렸다. 내 주변은 고요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강렬한 눈빛을 지낸 동상들이 저 앞을 응시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동상들의 시선을 따라갔다. 수도 없이 많은 묘들이 보였다. 빼곡하게 들어선 그 비석들은 햇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좀 더 걸어보았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는 글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조국의 따뜻한 흙 속에서 잠들라는 글귀가 보였다. 아마 죽어간 그들이 마지막으로 느꼈던 것은 서늘하게 식어가는 자기 자신이였을 거다. 어느 순간 내가 걷는 행위 자체가 그들의 육신을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뒤를 돌아봤다. 이미 수분이 날아간 콘크리트 땅 위에 피를 묻힌 내 발자국이 남는 듯했다. 햇빛을 받은 비석들이 번쩍거리며 빛을 반사하는 게 갑자기,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황급히 현충원을 나섰는데 그 와중에 눈에 보인 것은 조심스레 비석을 확인한 어느 노신사께서 떨리는 손으로 국화 한 다발을 놓고 묵념을 하는 모습이었다.

 

내게 갑작스레 찾아 온 이 느낌들은 단순한 나의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의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숭고한 정신으로 생명을 희생한 분들의 혼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가며 청소년들이 현충일 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인식 자체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적어도 그들의 몸과 마음을 함께 하는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 만큼, 항상 감사한 마음을 마음 한 켠에 지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번쩍이던 비석들이 섬짓하게 머리에 남겨진 오늘, 제 67회 현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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