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와인 메뉴판이 두려운 이를 위한 친절한 입문서 -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글 입력 2022.06.0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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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오랜만에 동기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돌담길을 마주하고 있는 한 와인바를 발견했고, 우리 모두 분위기에 반해 바로 예약을 하곤 가게를 방문했다.

 

한적한 내부와 마주 보이는 돌담길 뷰에 감탄하며 메뉴를 고르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그 가게에선 꼭 와인을 시켜야 했는데(와인바이니 당연하다) 우리 모두 와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도통 어떤 와인을 고르는 게 좋을지 결정할 수 없었다.

 

어려울 땐 무조건 사장님 추천 찬스를 이용해야 실패가 없다는 지론 덕분에, 그리고 친절하게 메뉴와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 주신 사장님 덕분에 맛있는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와인 좀 잘 알고 싶다'라는 작은 바람이 생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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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는 유난히 진입 장벽이 높은 와인을 보다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친절한 입문서이다. 테루아, 빈티지 같은 기본 용어부터 다양한 와인 품종에 대한 기초 지식을 성실히 설명하는 동시에 저자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곁들여 재미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자 매력은 바로 이 책이 와인과 그림 동시 입문서라는 점이다.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와인을 공부하고 지금은 10년째 문화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특별한 이력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저자는 와인과 그림을 공부하면 할수록 둘 사이의 공통된 가치와 감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차근히 정리해 36개의 키워드로 정리해낸 책이 바로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이다. 그림과 와인, 둘 중 하나만 잘 알기도 쉽지 않은데 이 둘에 대한 동시 입문서라니 읽어보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

 

어느 날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는데 문득 샹볼 뮈지니라는 와인이 떠올랐습니다. 그림에서 전해지는 꽃향기와 따스함, 연못에 고인 물의 습함이 피노 누아로 만든 샹볼 뮈지니 와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와인을 들고 모네가 그림을 그린 장소에 찾아갔습니다. 마치 모네가 된 것처럼 모네가 보았을 풍경을 바라보며 이 와인을 마셨습니다. (...)

 

서로 닮은 작품과 와인을 함께 즐길 때 배가 되는 이 감동을 혼자서만 느끼기엔 아까웠습니다. 와인을 마실 때, 또는 그림만 볼 때 느낄 수 있는 각기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2가지를 함께하면 감동은 배가 됩니다. 제가 느낀 이 감동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랑스에서 와인과 미술을 공부한 내용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썼습니다.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작가의 말

 

 

와인과 그림을 동시에 즐길 때 느낀 감동을 전하고 싶었던 저자의 의도대로 책은 한 키워드 당 와인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씩 엮여 있다. 1장에서는 와인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관련 용어들, 와인을 마시는 방법 등 기본적인 개념을 미술 작품과 함께 소개한다.

 

와인을 즐기기 위한 초석을 다진 후, 2장부턴 저자가 미술 작품과 와인으로부터 공통적으로 느꼈던 감정을 중심으로, 마지막 3장에서는 와인 라벨과 병에 담긴 작품을 바탕으로 미술과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단어들이 저자의 편안한 말투, 그리고 미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더해지니 꽤나 친근하게 다가왔다. 책을 읽다 보니 와인과 관련한 얄팍한 몇몇 경험도 떠오르게 했는데 그 중 한 키워드를 소개해 본다.

 

*

 

자연: 자연의 가치를 담은 노력 - 내추럴 와인 & 가우디

 

근 몇 년 간, 국내에서 내추럴 와인 붐이 일었다. 이전엔 이름도 생소했던 내추럴 와인을 이젠 분위기 좀 있는 레스토랑이라면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여기저기에서 내추럴 와인 이야기를 하니 '요즘 이게 대세인가 보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에 이 책을 통해 내추럴 와인의 유래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이 꽤나 컸다.

 

내추럴 와인은 자연을 생각하는 친환경 운동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와인이라고 한다. 화학 비료와 제초제, 농약을 이용할 경우 훨씬 쉽고 편리하게 포도를 재배할 수 있지만 점차 토양이 오염되고 미생물이 줄어 황폐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와인 업계에서도 자연 친화적인 포도 재배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고 한다. 포도를 재배하고 수확해 와인으로 만드는 과정만 해도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데, 그 와중에 인간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며 더 어려운 농법을 선택했다니 갑자기 내추럴 와인의 비싼 가격이 용서되는 것 같다.

 

저자는 내추럴 와인과 더불어 자연을 반영한 건축물로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소개한다. 유럽 여행의 마지막 도시로 방문했던 바르셀로나에서 실제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갔던 순간이 떠올랐다. 성당의 내부로 들어서자 오후 3시의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 빛을 가득 머금곤 성당을 채우고 있었다. 이전까지 봐왔던 딱딱하고 엄숙한 성당의 느낌과 달리 포근하고 따뜻하단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자연을 담고자 했던 가우디의 노력 덕분임을 이번에 깨달았다.

 

대부분의 유럽 성당은 르네상스 양식이나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반듯하고 웅장하며 엄숙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건축물에 곡선을 많이 활용했다. 성당 내부의 기둥들은 마치 숲속의 나무처럼 가지가 뻗어나가는 모습으로 만들었고, 성서 속 이야기로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든 다른 성당들과 달리 가우디는 추상적인 색만을 이용해 성서의 이야기를 표현했다. 저자는 내추럴 와인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통해 자연의 가치와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권한다.

 

*

 

내추럴 와인과 가우디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한 와인과 미술 이야기들은 독립된 이야기가 아닌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에 개인의 경험과 감정까지 더해지니 좀 더 단단하게 연결되어 책 속의 개념들이 쉽게 휘발되지 않을 것 같다는 점도 이 책의 강점으로 꼽고 싶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갑자기 능수능란하게 와인을 주문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된 건 아니다. 여전히 와인은 어려운 대상이지만 이 책은 그 어려운 대상을 좀 더 알아보고 싶도록 흥미와 재미를 불어 넣어주었다. 돌담길 앞 와인바에서 함께 고초를 겪었던 동기들에게도 책을 선물해야겠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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