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음을 울리는 순백의 깨끗함 - 찰리 채플린 라이브 콘서트 'City Lights'

글 입력 2022.06.0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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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찰리 채플린의 영화이며, 생애 첫 필름 라이브 콘서트다. 지난 5월 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찰리 채플린 라이브 콘서트>는 이토록 나에게 다양한 새로움을 전달해 주는 공연이었다. 위대하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지루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다른 밀려있는 유성영화들 틈에서 볼 일이 없었던 찰리 채플린의 영화, 그리고 비싼 값에 선뜻 경험하기 어려웠던 라이브 콘서트를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렘을 감출 방도가 없었다.

 

1. 모든 것이 신기한 나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것은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지휘자의 악보 위로 피어오른 따뜻한 온도였다. 내가 지금까지 즐겼던 공연은 극단적인 편에 속했다. 영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불을 다 끄던지,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밝게 불을 다 켜던지다.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불빛이라고는 비상탈출구 뿐이었던 나에게 공연장 한가운데에 피어오른 따뜻한 온도의 불빛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마치 연등축제 같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은 배가 되었다.


2. 나는 음향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막귀다. 스피커나 이어폰의 질의 차이도 잘 느끼지 못하며, 정말 심할 때에는 음원으로 듣는 노래와 라이브로 듣는 노래의 차이점을 잘 구분하지 못할 때도 있다. (물론 아닐 때도 많지만) 가수의 공연을 보고 실제로 들으니까 확실히 음원과는 차이가 있다며 감동받아있는 지인의 모습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동의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보며 그 영화의 음악을 오케스트라 연주로 직접 듣는다'라는 문장 자체가 나에게는 일종의 수수께끼 같았다. 좋을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어떻게 다를까, 혹시 나의 무신경함으로 인해 그냥 영화를 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의구심이었다. 큰 연주장 안에 풍요로운 사운드가 가득 울렸고, 그 사운드는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영화의 스토리에 따라 다양한 소리들이 나의 귀로 다채롭게 흘러들어왔다. 지금껏 평면적인 영화만 봐온 덕에 음악이 좋고 영상이 좋고 스토리가 좋으면 전부가 아닌가 생각했던 나에게 '현장감'은 얼마나 사람을 영화에 몰입시켜주는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배로 울리게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영화 속 모든 효과음이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연주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악기들로 어떤 소리들을 묘사하는지 듣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부랑자 (찰리 채플린 역)가 넘어질 때, 미끄러질 때, 딸꾹질을 할 때 각 효과음들이 현장에서 생생히 들리는 것은 마치 정말 내가 영화 속으로 들어와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영화관에서 좋은 음향으로 영화를 본다고 해도, 그때와는 느껴지는 감상과 몰입감이 전혀 달랐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촉감 놀이를 하듯 청각 놀이를 하는 것만 같은 즐거움이었다고 생각한다.

 

3. 찰리 채플린의 영화는 대단하다. 대사 하나 없이 관객들에게 희로애락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었다. 대사가 없으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데, 긴박하게 진행되는 스토리와 반갑게 나오는 코믹한 장면들에 지루함을 느낄 틈은 없었다. 그의 과장되면서도 과하지는 않은 유쾌한 움직임 속에서 관람객들은 집중하며 영화를 즐겼다.


꽃을 팔며 하루를 연명해 살아가는 눈먼 소녀와 가진 것 없는 부랑자, 그리고 그런 부랑자와 술을 마셨을 때에만 친밀한 사이가 되는 알코올 중독자이자 백만장자인 남성. 이 세 명의 이야기는 관람객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했다. 부랑자가 분명 젠틀한 신사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소녀와, 그런 소녀를 위해 가진 것이 없어도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부랑자의 이야기는 순수한 만큼 마음에 따뜻하게 다가왔다. 술에 취했을 때에는 부랑자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지만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에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백만장자의 모습을 보면서는 분명 언젠가 이 아슬아슬한 관계가 문제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분명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이다. 그러나 단순한 코미디 영화라고 하기에는 안타까운 장면도, 불안한 장면도, 서글픈 장면도 많았다. 그렇기에 더욱 영화 속 코미디가 즐거운 점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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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공연이 끝나있었다.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영화 속 이야기와 결말은 아름다웠고, 가슴 깊이 울리는 오케스트라의 공연과 함께 그 아름다움은 극대화 되었다. 생애 처음 느껴보는 색다른 황홀함이었다. 좋은 뮤지컬, 전시, 영화를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행복감이었다. 이 공연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순백의 깨끗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브로 생생히 들려오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들, 목소리 하나 없이 느껴지던 감정들, 불순한 의도 없이 이야기되던 선량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 모든 것이 깨끗했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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