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회적 의무, 웃음에서 해방될 때 - 조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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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위험하다”
‘위험’이라는 수식어는 영화 <조커>가 개봉하기 전부터 따라다니던 꼬리표다. 정치적/사회적으로 위험한 작품이라는 외국 리뷰어의 평에 한 트위터리안은 “이러한 평이 붙는 대표적 영화가 <국가의 탄생>이나 <전함 포템킨> 같은 건데, 대체 어느 정도 길래...”라는 글을 올렸고, 이는 순식간에 1400여 개의 RT(공유)를 당하며 개봉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영화 <조커>는 수십 년 간 DC의 악당으로 등장했던 ‘조커’ 캐릭터의 원동력, ‘이유 없는 악의’에 대한 계기를 다룬 영화이다. 웃음에 대해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는 된 계기는 무엇인지, 조커가 되기 전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삶부터 조명해 캐릭터의 전기를 다룬다.
나와 다르지 않았던 악당의 일생, 그가 퍼트리는 반사회적 충동, 묘하게 이입되는 그 해방감이 영화의 목표다.
사회적 최약체
영화는 그가 조커로 각성하기 전, 일반인 아서 플렉의 시간을 더 많이 보여준다. 아서는 사회 최하층이며 더럽고 쓸모없는 쥐떼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다. 사실 그는 경제적 수준의 정도를 나타내는 ‘최하층’보단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는 ‘최약체’에 가깝다. 정신질환으로 인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지도 않다.
직장동료, 사장, 상담사, 대중교통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도 무시당하는 아서는 결국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 집단에게도 굴욕적으로 구타당한다. 특히 정부지원 상담센터에서 사회적 주류이자 강자로 인식되는 백인-남성 아서가 상대적 소수이자 약자인 흑인-여성 상담사에게 무시당하는 장면은 그가 타고난 사회적 조건(인종과 성별)에서조차 탈락한 인물이란 걸 보여주기도 한다.
즉, 아서는 ‘사회적으로 잘 포장된’ 인물이 아니다. 권력으로 행사할 수 있는 성별, 나이, 인종 같은 정체성을 모두 상실했고 교육 수준조차 낮으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특히 아서가 사회적이지 않은 이유는 제대로 웃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유머 타이밍을 전혀 맞추지 못하고 패턴화 되지 않은 웃음을 마구 터트린다. ‘웃음’은 가장 사회적인 감정이다. 주류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다는 증명이자 호의를 이끌어내는 도구다. 하지만 아서는 이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범주에 끼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다.
기성 틀에서 튕겨져 나온 외톨이는 도리어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지었던 억지웃음의 의무는 이제 없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언제 어디서든 분출할 수 있는 자유만 남았을 뿐이다. 암묵적인 사회적 책무―웃음―으로부터 탈출한 자가 바로 조커다.
영화가 의도하는 것은 이 ‘해방감’에 대한 체험이다.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애써 웃는 대신 그 저변에 깔린 날 것 그대로의 감정―우울, 분노, 슬픔, 괴리, 자살 충동, 마침내 결론되는 사회에 대한 분노―을 따라가다 보면 묘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반사회적 행위가 주는 일탈의 쾌락을 경험케 하는 것이다.
노랑-청록-빨강
이런 면에서 <조커>는 2시간여의 최면제와 같다. 특정한 시각적 요소를 이용해 화면을 지배한다. 영화는 노랑(yellow), 청록(cyan), 빨강(red), 세 가지 색으로 가득 차있다.
노란 벽과 노란 조명, 노란 소파 등으로 이루어진 아서의 거실에는 TV에서 비치는 청록빛이 어른거린다. 병원 앞에 앉아있는 아서에 비춰지는 노란 가로등 불빛 너머엔 병원 내부의 푸른 청록빛이 대조된다. 하나의 화면 안에 노란색과 청록색은 언제나 절묘하게 섞여져 있다.
흔히 미치광이, 정신병자의 색이라 불리며 심리학에서 정신분열과 밀접하게 관련 되어지는 노란색은 영화의 가장 중심이 되는 테마 컬러다(타이틀 디자인을 노란색 글자로 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청록색은 지루함, 침체, 원기상실 등을 뜻한다고 한다. 무력한 일상에서 결국 미쳐버린 정신질환자, 아서의 캐릭터와 맞는 구석이 많다.
빨간색은 극적 포인트에서만 등장한다. 아서가 억눌러왔던 분노를 표출하며 살인 할 때 광기와 피의 색으로 선전된다. 빨간 피가 흩뿌려질 때, 빨간 입 꼬리로 미소 지을 때마다 그는 아서가 아닌 조커로 거듭난다.
그러니 조커의 복장이 청록/노랑/빨강을 겹겹이 레이어링한 정장과 초록색 머리카락으로 이루어졌다는 건 매우 함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특정 색을 아주 노골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 지속시간이 길어질수록 조커가 느낀 감정들을 관객들에게도 동화시킨다.
‘조커’라는 핑계를 통한 자유와 해방
<조커>가 ‘위험한 영화’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누군가에겐’ 조커가 짜릿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지고 감정을 제한 없이 표출하는 일이 범죄 충동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유사 범죄 가능성을 가진 ‘조커 같은 사람’은 타고난 나쁜 놈이나 정신이상자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웃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회인, 우리 대부분이다. <조커>가 정말 위험한 이유는 이 사회인들이 아서를 통해 일순간 해방과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끔 선동 당해지길 원하기도 한다. 누가 조종키를 잡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앞서 <조커>가 매우 위험한 독극물이라도 되는 마냥 겁을 줬던 트위터의 내용이 수많은 RT를 낳았던 사례를 밝혔다.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공감을 표했던 것은 사실 영화의 가십거리를 실어 나르는 게 아니라 이 영화가 정말 위험해지리라는 걸 어렴풋이 바라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핑계로, 잠시나마 웃음을 멈추고 싶다는, 대신 그 뒤의 모든 감정을 폭발하며 분노하고 싶다는 비사회성 체험을 위해서 말이다.
[박태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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