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시작하는 모두에게 [영화]

비긴 어게인(Begin Again. 2014)
글 입력 2022.06.0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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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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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지는 초여름이면 생각나는 영화다. 이제 막 다가오는 여름에 나름 설레기도 하고 무더위에 걱정이 되는 마음이 영화 제목과 같은 ‘다시 시작하는’ 설렘과 비슷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볼 때면 설렌다. 어느 커플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아니지만, 완벽한 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건 아니지만 시작이라는 단어와 다소 엉성한 과정이 맞물려 ‘처음’의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처음엔 음악으로 다가왔고 그 다음엔 ‘키이라 나이틀리’, 이제는 모든 게 처음으로 가득한 빈약한 길거리로 영화를 찾는다. ‘존 카니’ 감독의 다른 영화인 ‘싱스트릿’ 역시 다소 쓸쓸한 거리를 설렘으로 가득 채운다. 아직은 밤공기가 시원한 이번 초여름 역시 연례행사처럼 ‘비긴 어게인’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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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나에게 가장 큰 영화의 우연적 상황은 ‘노팅힐’이다. 당대의 유명한 슈퍼스타가 우연히 동네 허름한 여행서점에 왔고 우연히 커피를 흘려 인연을 만든다. 정말 아름다운 우연이다. 이 우연 못지않게 ‘비긴 어게인’ 또한 마음에 드는 우연이다. ‘그레타’는 남자친구와 싸우고 친구의 집으로 갔다가 친구가 공연하는 바에 간다. ‘댄’은 의견 불일치로 회사를 나오며 술을 마시다가 ‘그레타’가 있는 바에 가며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아름다운 우연은 아니다. 그들 모두 비루한 시간을 보내고 우연히 노래를 불렀으며 우연히 노래를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는 곧 그들의 새로운 시작이 되기에, 세상이 막막한 그들에게 희망이 되기에 개인적으로 멋진 우연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멋진’ 우연이라는 말과 걸맞게 ‘그레타’의 노래에 따라 ‘댄’의 편곡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은 영화 내 유일한 판타지적인 시간이다.

 

‘판타지’라는 말의 의미는 악기가 스스로 움직이며 연주를 하는 의미도 있지만 더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그 순간은 비루했던 그들이 만나는 순간이자, 희망을 발견한 순간이기도 한 매우 환상적인 시간이다. 영화의 메인 음악인 ‘lost stars’처럼 길을 잃은 별들이 빛을 내고자 하는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힘든 시기, 시각적 효과와 미래의 희망을 암시함으로써 환상적인 순간이 연출되지만 그 후에는 일상적인 장면으로 환상을 그려낸다. ‘그레타’와 ‘댄’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길거리를 누비는 시퀀스다.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까지도 의미를 갖게 되잖아. 이런 평범함도 어느 순간 갑자기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거든. 그게 바로 음악이야."]

 

두 사람이 듣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일상의 모습이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눈 앞에 움직인다. 그 순간은 어떠한 효과가 없는 아주 평범한 일상이지만 음악이 흐름으로써 의미있는 시간으로 변하는 것이다. ‘비긴 어게인’에 앞서 ‘원스’와 ‘싱스트릿’을 제작한 ‘존 카니’ 감독이 3개의 음악 영화를 만들면서 느꼈을 내용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녹여낸 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는 바로 음악이다. ‘그레타’의 재능을 알아본 ‘댄’이 같이 음악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한 그 시점부터 그들의 삶은 유의미한 삶으로 변했다. 그 전의 삶이 의미 없는 날들이라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사정으로 잠시 밑바닥을 쳤지만 음악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그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빛을 낸다는 것이다.

 

‘그레타’의 데모 테이프를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 역시 새로운 출발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거리에서 새로운 음악을 만든다. 다시 시작하는 모든 게 모여서 ‘비긴 어게인’을 만든다. 다시 시작하는 설렘을 가진 이들에게 근사하고 으리으리한 작업실은 너무 작다. 그렇기에 영화 속 음악이 연주되는 날 것의 길거리는 그 의미를 더 강화한다. 어떻게 보면 풋풋하고 순수하다. 즐거움이 가득하다.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길거리에 모인 ‘싱스트릿’ 소년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싱스트릿’의 소년들은 그 목적이 뮤직비디오였기 때문에 외형적인 꾸밈이 많았다. 물론 그것에 대해 부정적이진 않다. 오히려 인기를 위해서 화장을 하고 큼지막한 옷을 입은 소년들이 순수하고 귀엽다. ‘비긴 어게인’은 그 외형적인 꾸밈을 내려 놓고 정말 순수하게 음악을 녹음한다. 화려한 의상과 시선을 끄는 화장은 없다. 그래서 더 순수한 음악이 느껴진다. 그 싱그러움이 초여름과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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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음악의 즐거움과 싱그러움은 ‘tell me if you wanna go home’을 연주하는 장면에서 가장 잘 느껴진다. ‘그레타’는 ‘댄’의 딸 ‘바이올렛’에게도 연주를 부탁한다. 전문적인 연주자는 아니지만 그저 순수하게 같이 연주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녹음이라는 목적도 놓고 놀고 즐기겠다는 의미로 되돌아와 영화를 보는 나도 몸을 들썩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직도 이 노래를 들을 때 ‘rooftop’ 버전을 듣는다.

 

‘비긴 어게인’을 몇 번 봤는지 기억은 못하겠다. 무수히 볼 때마다 새로움은 다가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작업을 다 끝내고 음반사와 계약 논의 후 ‘그레타’와 ‘댄’의 헤어지는 장면이다. 헤어지기 전에 그 눈빛이 새롭게 다가왔다. ‘라라랜드’가 생각났다. ‘세바스찬’과 ‘미아’의 마지막 서로를 향해 바라보는 눈빛과 비슷했다. 그 눈빛에는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응원, 반가움 등 많은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비긴 어게인’도 그랬다. 영화 속 어느 장소처럼 볼 것 없는 길거리에서 헤어지기 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뭐가 담겨있었을까? 고마움과 아쉬움, 짧지만 함께했던 즐거움, 서로를 향한 응원. 사람의 눈에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음을 느꼈다.

 

영화 제목과 걸맞게 또 다른 시작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lost stars’ 노래가 흐르면서 ‘그레타’는 자전거를 타고 달려간다. 남자친구를 마음에서 완전히 정리한 것일까? 이제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 새롭게 시작되는 그녀의 삶이 보인다. 바람을 맞으며 달려가는 그녀의 입에 피어난 게 미소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과거의 추억처럼 아내와 이어폰을 끼고 데이트를 하는 ‘댄’의 새로운 시작 역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고 보면 아주 평범하고 예상에 딱 맞는 결과다. 하지만 이런 뻔한 결과가 이 영화에는 찰떡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반전이 없어서 예상에 빗겨간 서프라이즈한 상황이 없어서 완벽하다. 다시 시작하는 그 설렘의 순수함과 희망을 마지막까지 그대로 안고 갈 수 있어서 더 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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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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