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슬픔과 사랑의 거리를 재는 산문집 -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시인 황인찬의 첫 산문집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글 입력 2022.05.3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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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고 쓰는 일은 바로 그 해방을 공유하는 일입니다. 일상에서 출발하여 일상을 넘어서는 시는 우리에게 타인의 삶을 상상할 수 있게 하고, 또 그 과정을 통해 일상 너머의 세계를 짐작할 수 있게 하며, 그리하여 우리가 더욱 크고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합니다. 타인의 시를 읽음으로써 그만큼 나의 세계는 넓어집니다. 우리가 함께 시를 읽는다면 우리가 함께 성장할 수도 있겠지요.

 

- 황인찬,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중 시인의 말 「너는 내가 아니다, 나는 너다」

 

 

 

희지의 세계 : 읽고 쓰는 삶에 대하여



 

이제는 우리의 머리와 몸을 나누는 수밖에 없어

생선회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온몸을 푸들푸들 떨고 있는

도다리의 몸뚱이를 산 채로 뜯어먹으며

묘하게도 두 눈이 오른쪽에 몰려 붙었다고 웃었지만

 

- 김광규, 「도다리를 먹으며」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시간을 내어 따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고등학교를 다니던 3년 내내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야겠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 같다. 시를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이후로는 말이다.

 

학교에서 시인 초청 강연이 있었던 날이었다. 함께 시인의 시 몇 편을 읽었던 것 외에는 희미한, 아주 오래 전의 일인데도 「전쟁광 보호구역」이라는 시를 눈으로 읽어내려가던 감각이나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생뚱맞고도 아주 신이 난 얼굴로 친구들에게 시인이 될 거라고 이야기하던 때의 기분 같은 건 생생하게 남은, 소중한 기억 중 하나다.

 

한편으로는 그 시절의 단호하고도 망설임 없던 나의 태도가 낯설기도 하다. 나의 개인적인 변화를 빠르게 수용하기보다 열 번 의심하고 열 번 두드려보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할 뿐더러, 심지어 친구들에게까지 그 즉시 선언을 한 셈이니 그날의 확신과 용기는 어디에서 솟은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날 이후 매학기 신청했던 시를 읽는 방과후 수업에서는 잠시나마 ‘이 시가 유사한 시구를 반복하며 시적 상황을 강조하는지’ 따위를 생각하지 않았기에 즐거웠고, 동시에 최승호 시인의 「북어」와 김광규 시인의 「도다리를 먹으며」를 가장 좋아하게 됐다. 또 교과 수업시간에도 시 수업 만큼은 졸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대망의 「관동별곡」까지 무사히 통과해 국어국문학과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


 

어린 왕자!

이제 너는 내게서 무연(無緣)한 남이 아니다. 한지붕 아래 사는 낯익은 식구다. 지금까지 너를 스무 번도 더 읽은 나는 이제 새삼스레 글자를 읽을 필요도 없어졌다. 책장을 훌훌 넘기기만 하여도 네 세계를 넘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행간(行間)에 씌어진 사연까지도, 여백(餘白)에 스며 있는 목소리까지도 죄다 읽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법정, 「영혼의 모음(母音)」

 

 

대학에 와서는 여러 문학을 새롭게 읽고 썼다. 그중에서도 시 수업만큼이나 최선을 다했던 수업은 수필 수업이었다.

 

좋은 수필을 읽는 건 좋은 시를 읽는 것과는 다른 결의 울림이었다. 수필을 포함해 기행, 서간과 같은 교술 문학은 세계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면서 동시에 주관적으로 진실하다고 느끼는 것을 독창적으로 표현한다. 수필을 쓸 때엔, 안으로 또 안으로 들어가며 사위가 어두워지고 고요해지는 경험을 자주 하곤 했다. 무의식의 꿈, 가공을 거치지 않은 본연의 마음, 허위 없는 문장이 있는 시간인 밤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수필에 대한 글을 쓰며 ‘수필은 밤의 문학’이라고 썼다.

 

어떤 글의 서두에는 ‘솔직해지면 덜컥 울고 싶어진다.’라고 썼다. 가식을 걷어낸 이후를 상상했을 때 그곳에 견딜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까봐 두려워진다는 의미에서 쓴 문장이다. 하지만 좋은 수필을 읽고 나면, 그러니까 타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솔직해지기 이전의 두려움은 사실은 별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어릴 적 병원에 가면 주사 바늘을 보고 잔뜩 겁을 먹어 울음을 터뜨리다가도, 찰나를 어른들이 흔드는 장난감에 정신을 빼앗기고 나면 ‘별 거 아니었네’ 생각하며 머쓱한 얼굴로 진료실을 나오게 됐던 것처럼 말이다. 화자의 이야기에 깊이 빠지는 동안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은 각자의 손에 쥐어지고, 모두가 자신만의 한 줄의 고백을 적게 되는 것이다.

 

 

 

시 한 입, 산문 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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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온북스에서 출간된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은,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등의 시집을 써온 황인찬 시인의 첫 산문집이다. 정확히는 시와 산문이 함께 실려있는 시산문집으로, 네이버 오디오클립 ‘황인찬의 읽고 쓰는 삶’에 연재된 100편의 콘텐츠 중 49편을 선별하여 엮었다. ‘황인찬의 읽고 쓰는 삶’은 매주 시인이 직접 고른 시 한 편을 낭독하고 시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나 이야기를 더불어 들을 수 있는 10분 가량의 콘텐츠였다. 즉 이 책은 대본에서 시작된 글이기 때문에, 글에서 입말과 글말 사이의 친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책날개에 적힌 시인의 약력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있다. ‘시를 이용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자주 고민합니다. 시를 통해 타인과 깊게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매일 시를 쓰고 읽습니다.’ 실제로 시인은 이 책을 “이 시 진짜 맛있으니까 한 입만 잡숴봐!”라고 시를 권하는 산문집이라고 소개했다. 한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시 영업사원’다운 소개말이라고 생각했다.

 

산문집은 1부 ‘혼자여도 괜찮을 거야’, 2부 ‘내가 아프던 밤’, 3부 ‘계속 시작되는 오늘’ 총 세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1. 너 혼자 올 수 있겠니

2. 너 혼자 올라올 수 있겠니

3. 너 혼자 여기까지 올 수 있겠니

 

안개가 자욱한데. 내 모습을 볼 수 있겠니. 하지만 다행이구나 오랜 가뭄 끝에 강물이 말라 건너기는 쉽겠구나. 발밑을 조심하렴. 밤새 쌓인 적막이 네 옷자락을 잡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서 건너렴.


- 박상순, 「너 혼자」

 

 

이 시는 1부의 가장 첫 번째에 실린 박상순 시인의 「너 혼자」다. 화자는 ‘너’에게 ‘너 혼자 올 수 있겠’느냐고 반복하여 묻는다. ‘내 모습을 볼 수 있겠’느냐고 묻는 걸 보면 두 사람은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서로가 보일듯 말듯한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다.

 

‘나’는 ‘나’가 있는 곳까지 ‘너’가 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삼십 센티미터의 눈금과 사십 센티미터의 눈금의 줄자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청춘을 밟고 오는 ‘너’의 소리를 들으며 ‘하지만 기운을 내렴’, 격려의 목소리를 혼잣말처럼 ‘너’에게 건넨다.

 

 

“너 혼자 올 수 있겠”느냐고 묻는 저 말이 어찌나 다정하고 또 슬프게 들려오는지, 한때는 저의 ‘눈물 철철 시’가운데 하나였어요. 어째서일까요. “너 혼자 올 수 있겠니”라는 그 말이 그토록 슬프게 들린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 너 혼자 올 수 있겠느냐는 저 말에서 우리가 혼자가 아니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일 거예요.

 

- 황인찬,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중 「혼자여도 괜찮을 거야」

 

 

이 시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으로 연재될 당시에도 첫 번째로 소개되었다. 김현 시인과 공동 진행을 맡고 있는 문학 팟캐스트 <북북서로>를 통해 시인이 말한 바에 따르면, 어느 때보다도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시기에 이 시를 통해 수많은 ‘나’와 ‘너’가 함께 만나는 상상을 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잠시나마 혼자가 아니게 되기를 소망하며 선택한 시라고 한다.

 

시인은 이 시를 더 이상은 어리다고 말할 수 없는 나이가 된 사람이 젊은 시절의 자신에게 건네는 목소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열여덟 살인 나야, 스물세 살인 나야, 지금 여기까지 혼자서 올 수 있겠니. 너 혼자여도 괜찮은 거니.’ 이렇게 말이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손들이 있고

나는 문득 나의 손이 둘로 나뉘는 순간을 기억한다.


내려오는 투명 가위의 순간을


- 이수명,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홀로 걷던 ‘나’는 3부에 다다르면 ‘너’와 만나 ‘우리’가 된다.

 

‘슬픔’과 ‘사랑’ 두 단어 사이의 거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슬픔과 사랑 사이의 거리를 잴 수 있다면 둘은 어느 정도로 가까이 또는 멀리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제목을 한동안 ‘읽는 슬픔, 말하는 기쁨’으로 잘못 부르는 실수를 하곤 했다. 왜 기쁨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제목을 기억할 때 ‘말하는’ 뒤로 슬픔과 반대되는 의미의 단어가 이어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자면 아마 나는 슬픔과 사랑이 양극단에 놓여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소 어렵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나의 손이 둘로 나뉜다거나, 육체가 우리에게서 떠나간다거나 하는 표현은 사랑의 형상으로 좀처럼 쉽게 떠오르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 시야말로 사랑의 형상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어갈 때, 우리는 둘로 나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은 쪽과 손을 잡지 않은 쪽으로요.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가 되지만, 나는 둘이 된다는 이야기지요. 사물의 관계성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포착하는 시인은 사랑의 형상에서조차 분리와 결합의 순간을 발견합니다. 그 “너무 많은 비들”이 수많은 “투명 가위”가 되어 우리에게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 황인찬,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중 「왼쪽과 오른쪽 어디에도 비가 오지 않는다」

 

 

이 시는 책의 후반부에 실린 이수명 시인의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다.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는 문장만 보면, 비가 오는 날 함께 우산을 쓰고 가는 두 사람 중 우산을 든 사람이 상대쪽으로 우산을 기울이고 있는 낭만적인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손을 잡고 또 우산을 함께 쓰는 결합의 기쁨을 생각하기를 잠시, 2연을 통해 나의 손이 둘로 나뉘며 분리되고 떨어지는 이미지가 등장하고 3연의 ‘투명 가위’에 다다르면 두 사람을 아름답게 비추던 카메라 위로 다른 느낌의 효과가 입혀진다.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 두 어깨처럼, 둘로 분리되는 몸. 황인찬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사랑을 할 때 경험하는 수많은 감정 가운데 기쁨 이외의 순간을 짚어낸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사랑의 필연적인 속성에 의해 슬픔과도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너’와 사랑하는 ‘나’ 그리고 사랑과는 무관한 또다른 ‘나’로 분리될 수밖에 없는 우리이기에,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욕망은 끝없이 좌절하고 만다.

 

*

 

이 산문집의 제목은 우리가 시를 읽으며 시인과 나누는 마흔아홉 번의 대화를 설명한다.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고독, 슬픔, 외로움, 사랑을 읽고 말하고 쓰며 우리는 함께 울 수 있다. 함께 울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이해하고 더 나은 ‘나’로 또 각자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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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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