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국악의 현대화가 아닌 국악의 현재와 미래 - 환상노정기

환상노정기를 보고
글 입력 2022.05.2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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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국악의 현대화'라는 단어를 쓴다. '현대화'는 한자로 '現代化'이다. '化'는 보통 'A이지 않았던 것이 A가 된다'라는 의미가 한다. 그렇다면, 저 말을 한 사람의 머릿속 사전에서 '국악'은 '현대적이지 않은 것'으로 저장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각에서는 교과서에서 우리 국악을 빼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악 러버는 슬프다.

 

 

 

1. 국악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시도 - 전라북도의 경우



내가 나고 자란 전북에서 '국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주에서는 여전히 매년 '대사습놀이'가 열린다. 그 과정에서 백일장과 전통무예놀이와 국악분야에서 전국구 대회가 열리고 판소리명창부, 농악부, 무용부를 포함한 10개 부문을 각각 시상한다. 이 중 '판소리명창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소리꾼은 '명창'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전주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도립국악원'을 가진 도시이기도 하다. 도립국악원에서는 다양한 초청 공연을 열어 국악을 장려하고, 매 학기마다 우리 악기를 배울 수 있는 클래스를 열어 도민들에게 국악과 친해질 기회를 제공한다. 전주의 직장인들은 새로운 취미로 가야금을 배울지 해금을 배울지 고민한다.

 

채석강으로 유명한 부안에서는 매년 정월에 '풍어제'와 '당산제'가 열린다. 앞바다에서는 중요 무형 문화재인 위도 띠뱃놀이가 진행되고, 마을 곳곳에선 마을의 수호수(守護樹)인 당산나무에 제를 올린다. 이에 대한 군민들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하냐고 하면, 코로나 시국에 화려하게 취임식을 한 '체육회장'을 비판하는 부안독립신문의 2020년 2월 14일 기사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더군다나 마을의 안녕을 위해 수백 년간 치러오던 정월대보름 행사를 비롯해 각종 정책회의나 토론회 등 공공행사가 간소화 또는 취소되는 마당에 이취임식만 강행됐다는 점에서 군민들 사이에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 고창 농악

 

 

고창의 경우에는 '농악'이 지역의 정체성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고창에는 고창 14개 읍면의 농악단들이 각 마을의 가락과 장단을 전승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덕분에 고창농악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당산굿, 당산제, 매굿, 풍장굿' 등의 다양한 굿의 절차가 온전히 전승되고 있다. 고창농악단은 전국적으로 전수생을 꾸준히 배출해 내고 있다.

 

 

 

2. 국악과 양악의 조화 - '록'과 '재즈', '전자음악'의 경우


 

앞서 살펴본 것들이 클래식이라면, 국악과 양악을 적절히 섞는 '크로스 오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합주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록'이나 '재즈' 분야의 약진이 눈에 띈다.

 

우선, 양악의 밴드 사운드 위에 우리 국악의 보컬을 얹는 경우다. '범 내려온다' 열풍을 일으킨 '이날치 밴드'와 다양한 무가에 주목한 '추다혜차지스다'. ‘이날치 밴드’는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이고, ‘추다혜차지스’는 3부에 걸쳐 다룬 적이 있으니 생략한다.

 

두 번째 경우는, 양악의 악기 구성을 베이스로 해서, 우리 악기 몇 개를 함께 편성하는 것이다. 재즈의 선율 위에 우리 악기의 선율을 얹은 '뮤직그룹 세움'과 '블랙 스트링'이 그들이다. 뮤직그룹 세움은 3명의 재즈 연주자와 2명의 한국음악 연주자로 구성되었으며, 한국음악 고유의 선율과 장단에 재즈와 월드뮤직을 섞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블랙스트링은 한국 전통음악에 기반을 두고, 재즈의 즉흥성과 조화를 이루며 현대적이고 독특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 컨템퍼러리 국악 그룹이다.

 

 

▲ 뮤직그룹 세움의 앨범 '만파'의 수록곡 '손'.

알 수 없는 곳에서 다가와 삶을 뒤흔들곤 하는 심연을

'이방인'을 의미하는 '손'에 비유했다. 

 

 

어쿠스틱 악기를 사용하는 밴드들이 ‘연행’에 주목했다면, 전자음악에서는 ‘사운드’에 주목한다. 전자음악은 기존의 틀을 깨고자 하는 아방가르드 계열 디제이와 프로듀서들 중심으로 우리 음악의 소리를 차용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해파리는 종묘제례악에 앰비언트와 테크노 음악을 더했고, 음악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2관왕을 달성했다. 강원도의 ‘시골 드러머’ 양태석씨는 사물놀이 샘플로 포 비트 기반의 전자음악을 만들었다. 사운드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전자음악가들의 컴필레이션 앨범 ‘5-sanjo’는 산조에 주목했다.

 

 

▲ 양태석의 앨범, 'RE sequence4'의 수록곡 'Wing'.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소리가 인상적이다.

어린 새가 날기 위해 계속해서 낭떠러지로 향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3. 'the林'의 '환상 노정기'


 

환상노정기_포스터.jpg

 

 

그림(The林)의 '환상노정기'는 금강산 화첩기행을 떠난 김홍도의 여행담과 그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환상노정기'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로의 공인 김홍도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아버지이기도 한 인간 김홍도의 개인적 삶 또한 입체적으로 조명하여 큰 감동을 전한다. 그림(The林)은 역사 속에서 잠들어 있던 김홍도의 그림과 이야기에 음악의 서사를 더하여 우리 앞에 새롭게 재현해낸다.


'환상노정기'에서는 김홍도의 대표작인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과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 그리고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가 3D 영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한국 전통 음악인 판소리와 그 경계를 넘는 그림(The林)의 음악적 시도는 현대에 사는 우리가 과거의 김홍도를 새로운 시각으로 만나게 하는 또 하나의 통로이다.

 

 

‘환상노정기’의 경우는 앞선 모든 경우와는 조금 차별화된다. 양악의 악기 구성을 우리 악기로 대치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럴 경우, 피아노를 대신하여 가야금이 반주를 하고, 기타를 대신하여 대금이 멜로디를 주도한다. 가야금보다 두껍고 중후한 소리가 나는 거문고는 베이스의 역할을 맡는다. 종종 타악 세션이 없는 경우, 거문고의 현을 퉁기는 용도인 ‘술대’라는 나무 스틱으로 거문고의 몸통을 쳐서 비트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환상 노정기’의 경우에도 이를 거의 비슷하게 따라간다.

 

그러나, 이에 그치진 않는다. ‘김홍도’라는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익숙한 화원을 주인공으로 ‘죽은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같은 보편적 정서를 전면에 내세운다. ‘호랑이’는 토속적 동물을 등장시키고, ‘한라산’과 ‘지리산’이라는 지명을 직접 언급하며, 향토성을 강화한다. 한편으로는 '스마트폰' '셀카'와 같은 요소를 판소리 특유의 나열법 안에 차용하여 전통과 현대를 잇는다.

 

더불어,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비주얼라이저를 도입한다. 김홍도의 그림에서 모티프를 얻은듯하다. 이는 공연에 화려한 볼거리를 더 하며, 다소 뻔할 수 있는 서사의 빈틈을 메운다. 비주얼라이저가 중요한 타이밍에는 객석의 조명이 완전히 꺼지지만, 반대로 객석의 조명을 완전히 켜 전통 판소리의 경우처럼 연기자와 관객의 사이를 줄이기도 한다. 이 경우, 관객들이 '이제 함께 어울릴 시간이구나'라고 깨닫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다소 산만했다. 실외악인 판소리를 공연장 내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 같다.

 

 

4.환상노정기.jpg

 

 

국악은 단순히 유행하는 '힙한 밈'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 선조들이 물려준 유산이며, 현재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컨템퍼러리 한 장르이다. 더불어, 많은 국악인들과 국악 애호가들에 의해 이어질 미래적 자산이기도 하다.

 

국악의 수식어로 '현대화'나 '힙한'과 같은 수식어가 붙는 까닭은 그것이 힙하지 않고 구시대적인 장르라는 관념에서 나온다. 이 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국악이 일상의 음악으로 편입되어야 한다.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저희 음악이 '인기 많은 국악'보다 '인기 없는 음악'으로 안착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국악이 '국악'이 아닌 '음악'으로 인식될 날을 고대한다.

 

 

▲ 해파리의 앨범, '경포대로 가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일렉트로니카 부문을 수상했다.

 

 

 

신동하 (1).jpg



 

[신동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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