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설극장] 내가 찾던 것은 브로드웨이에 없었다

글 입력 2022.05.2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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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떠났다. 9개월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 아니었던 이유는 시간의 물리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대학 신분을 딛고 나아가기까지 숱한 고민과 주저를 반복하기에 그 무게가 너무 버거워서. 어제도 오늘도 제자리를 맴도는 데 하루하루를 소비하기에 바빠서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외국에 오면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이 있었다. 온전한 나의 시간과 온전한 남의 문화가 뒤섞일 좋은 기회였다. 나는 갖은 욕심에 설렘이란 이름을 붙여 한껏 들뜬 채로 미국 땅에 도착했었다. 아무튼 기회가 되어야 할 시간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곳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무얼 해야 한단 생각에 사로잡힌 채 발만 동동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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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내가 가장 닿고 싶었던 곳. 내가 가장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곳.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곳. 기차로 2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지만, 방문을 주저하기엔 그리 좋은 핑곗거리가 아님은 알고 있었다. 어찌 됐든 나에게는 너무나 대단한 기회의 도시였고,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을 걸 아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이야기 하겠다. 나는 실망했다. 내 예상과 달리 그리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던 브로드웨이 공연의 탓일 수도 있고, 혹은 내 예상과 달리 그리 열정을 표하지 못한 나 자신의 탓일 수도 있다. 나는 자주 되물었다. "내가 정말 공연을 좋아하는 것이 맞을까?" 어쩌면 맞고, 어쩌면 아니고. 결론은 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단 것, 그거 단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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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나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사실이 그곳의 명성이나 평판에 오류가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듣던 대로 대단했고, 알던 대로 화려했다. 많은 사람이 공연에 열광했으며, 즐거운 이슈도 이벤트도 많았다. 당연히 "이 뮤지컬"도 "저 뮤지컬"도 훌륭했으며, 왜 훌륭한지 종일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명료히 대단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마음을 끌지는 못했다. 그럼 대체 내가 왕복 4만 원과 4시간을 할애하며 그곳에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깊은 회의에 빠졌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나에게 상당히 대단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뉴욕에 가진 설렘, 그러니까 욕심은, 오직 브로드웨이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뉴욕에 가고 싶어서 가지 않았다.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고, 기만이라 할지언정 나는 그곳에 꿈도 열정도 없었다. 단지 내가 가야 할 곳이었고, 그 안에서 유일한 희망을 찾는다면 그건 브로드웨이였다.
 
한국에서의 나의 삶에서 유일하고 절대적인 원동력은 공연이었다. 나는 극장에서 일하고, 공연을 자주 보았으며, 공연장에 가는 것으로 내 행복을 가득 채웠다. 그러니까 나에게 공연이란, 삶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이었고, 유학은 나에게서 그걸 완전히 앗아갈 예정이었다. 무언가를 깊이 사랑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상실의 고통은 전혀 가볍지 않다. 극장에 퇴사 결정을 통보하고, 마지막 관극을 마치고, 가지 못할 공연의 티켓팅 창을 들락거릴 때의 내 마음은 "아, 뉴욕 정말 가기 싫다."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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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유학의 목적지가 뉴욕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뮤지컬의 본고지, 세계의 공연 메카, 뉴욕. 이 얼마나 운명적인 일이던가. 감히 투정 부릴 상황이 아니란 판단에 상실의 고통은 저만치 미뤄두고 욕심에 욕심을 채웠다. 브로드웨이에 가면, 브로드웨이에 가면. 공연이 나의 삶에 주던 그 모든 기쁨을 그곳에서 채울 수 있을 거란 헛된 희망을 품으며 매일 되뇌었다. 브로드웨이에 가면.

설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으리으리한 공연장에서 환희에 찬 전 세계의 관객들을 만나는 일은 즐거웠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여행을 간 것도 견학을 간 것도 아니었다. 생각보다 정서에 안 맞던 미국 공연들과 낮지 않던 언어의 장벽을 비롯해, 지나치다 싶은 티켓 가격과 오가는 교통비까지. 무엇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그저 피로만 쌓여갔다. 한국에서도 라이센스 뮤지컬들은 잘 보지 않던 나였다. 그 사실을 망각하고 또다시 되물었다. "내가 정말 공연을 좋아하는 것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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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브로드웨이에 발길을 끊었다. 보고 싶은 공연이 없었고, 갈 돈도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더 이상 뉴욕에는 내가 사랑하는 무엇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나는 브로드웨이의 문화에 감탄했지만, 감탄은 감동이 되지 못했다. 나는 브로드웨이를 사랑할 수 없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이 보고 싶었고, 정서에 맞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그런 공연들이 그리웠다. 화려하고 웅장한 것들을 매일 예찬하며 쫓을 만큼 나는 화려한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차라리 그곳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없었더라면, 그랬다면 조금은 덜 슬펐을지도 모르겠다. 애초부터 무엇도 없는 곳이었더라면, 차라리 그리움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곳은 그 유명한 브로드웨이가 아니던가. "내가 정말 공연을 좋아하는 것이 맞을까?" 이 질문은 가혹했다. 내가 감히 삶의 전부라 부르던 것에 대한 회의는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돌아오는 법이었다.

어쩌면 내가 영어를 못해서, 이해를 못해서, 즐기지 못 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다. 남들은 못 가서 안달인 이곳에서 왜 나는 회의감 따위를 느끼고 있어야 하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사랑하는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떠나온 유학길에, 유일한 희망이었던 브로드웨이마저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 이후, 연속되는 상실감만 물 밀듯 밀려왔다. 우스운 일이다. 고작 취미 생활 하나 못 한다고 이리도 우울할 일인가.
 
 *
 
고작 취미 생활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건 한참 더 시간이 흐른 후였다. "내가 정말 공연을 좋아하는 것이 맞을까?"에 대한 고민에 완전한 대답은 결국 그리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지난 관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가장 행복했고, 타인의 관극 후기를 읽으며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공연 산업의 뉴스를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 안 되겠다. 나는 이거 없이 못 살겠구나.

졸업과 취업을 준비하며 모든 것을 인정했다. 나는 한국의 공연 문화를 사랑했던 것이며, 그곳에 있을 나의 역할을 갈구하고 있던 것이다. 미국의 문화를 공부하고 경험할 순 있지만, 즐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는 한국의 공연 시장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곳에서 다시금 그때의 전율과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취미를 넘어서는 내 안의 무언가를 그곳에 두고 온 느낌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어쩔 수 없는 공연인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그리운 혜화, 그리운 공간들이 눈앞에 선하다. 그럼 나는 어떻게 돌아가야 할까? 이렇게 그냥 그리움 하나만을 가지고 소비자로 돌아가는 것이 맞는 일일까?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공연에 강렬한 끌림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대체 내가 뉴욕에서 보낸 시간은 무엇일까? 학위를 따기 위한 과정? 상실 후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고뇌의 시간?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뉴욕을 떠나기 전, 나는 브로드웨이에 대한 모든 미련을 남김없이 버렸다. 보고 싶던 공연 중 못 본 것들도 많지만, 글쎄, 아쉬워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더는 모르겠다. 나는 한국의 공연 산업에 작은 점을 찍고 싶어졌다. 나를 채우던 무언가가 그곳에 있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내가 공연계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 남기로 했다.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나의 좌표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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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브로드웨이를 동경하고, 그곳의 문화와 공연을 찬미하지만, 그건 미국의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사랑한 공연은 철저히 한국의 것이었다. 분명한 차이가 있겠지만, 솔직히 아직도 모호하다. 나에겐 공부와 경험이 더 필요하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그것을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내게 익숙하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그 확신에 나는 귀국을 포기했다. 대체 무엇이 나를 브로드웨이로 하여금 경탄이 아닌 그리움으로 이끌었는지, 그것을 알아내야 했다.

우선은 나에게 명찰이 필요할 것 같아 전공 공부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했다. 언젠가 내가 한국의 공연 산업에 나의 점을 찍을 수 있을 때, 그 자리의 명목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한 채 공연만 쫓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직장을 구했다. LA로 이사를 왔다. 나는 회계 실무를 익히며 회계학 공부를 할 것이고, 한국의 문화 예술계에 돌아갈 때 그 명찰은 재무 관련의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아직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방향을 찾고, 미래를 설계하고, 공부를 더 하고 싶다.

나는 귀국 후 한국의 문화 예술 경영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그 안에서의 나의 연구 방향과 목표를 찾을 때까지는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 예정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매일 목표를 위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나의 미래는 조금은 더 형태를 갖출 것이다. 공연을 못 보는 건 여전히 슬픈 일이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 그리움을 엔진 삼으면 그 힘이 어마어마할 거란 것을 느꼈다.

그래서 문화 공부를 시작했다. 문화 심리학, 예술의 역사, 그리고 철학까지. 공연예술은 어떤 마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에 대한 대답을 내 언어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거창히 말했지만, 그냥 공연예술을 조금 더 진중히 여기기로 한 나의 다짐이다. 9개월간의 유학을 통해, 또 한 번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을 통해, 내가 궁극적으로 행사하고 싶은 영향력을 찾아내려는 중이다. 그리고 그곳이 한국의 공연예술계임을 다시금 깨닫고, 마음에 새기고, 잊지 않으려 하는 중이다.

뉴욕에서의 나는 조급했다. 내가 한국에서 사랑하던 것들을 미국에서 찾아내려는 미련한 욕심을 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그저 나의 욕심일 뿐이었다. 그래서 괴로웠고, 그저 그리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젠 그 모든 그리움을 꿈으로 탈바꿈해볼 작정이다. 과거에 머물던 것들을 슬며시 미래로 날려 본다. 다시 만날 그날엔 나의 좌표를 당당히 외칠 수 있길.
 
*

고뇌와 좌절의 시간 탓에 [은설극장] 작성에 소홀했다. 깊이 반성하며, 앞으로의 [은설극장]은 조금 더 짙고 구체적인 공연 산업의 이야기로 채워보려 한다. 나만의 풀어낼 수 있는 공연 문화의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의 [은설극장]에 대한 기대를 당부하며, 9개월간의 뉴욕 유학 생활에 대한 고찰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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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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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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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ps
    • 쓰신 글들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공연예술을 향한 열정과 애정이 느껴져서 이번 글도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앞으로의 <은설극장>도 기대하면서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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