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맛'을 '보다' - 취향의 발견: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글 입력 2022.05.2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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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처음 접할 때는 이전까지 몰랐던 세상의 발견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워하고 즐거워하지만, 그것에 차츰 익숙해져 갈 때쯤이면, 그리고 그것을 좋아해 갈 때쯤이면 그 세계 안에서 더욱더 세세한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 같다. 그렇게 점점 빠져들며 ‘취향’을 찾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취향’에는 그 사람의 시간과 관심이 듬뿍 담겨있기에, 그 ‘취향’은 오로지 그 사람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된다.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의 저자 정희태는 와인과 명화에 담긴 자신의 취향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와인과 명화를 36개의 키워드로 함께 묶어 이야기를 하는 전체적인 구성에서부터 이미 그의 취향이 묻어있다. 와인도, 그림도 잘 알지 못하는 필자는 두 가지를 함께 엮어 이야기해 보겠다는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했다. 와인과 그림에 모두 조예가 깊은 사람이 두 분야를 한데 놓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까?

 

사실 와인을 보고 그림을 떠올리거나, 그림을 보고 와인을 떠올리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림과 와인, 그 결합은 곧 미각과 시각의 조화이다. 매우 공감각적이라는 소리다. 정희태는 그런 흔치 않은 미각과 시각의 공감각적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_표1(앞표지).jpg

 

 

이 책은 객관적으로 미술작품과 와인의 직접적인 관련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기보다는, 어떤 한 가지의 키워드를 통해 작가가 함께 떠올릴 수 있었던 와인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관적인 작가의 경험, 생각, 사고방식, 취향이 미술작품과 와인을 흥미롭게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단순히 검색창에 검색한다고 해서 나오는 정보가 아니다. 와인을 사랑하고 그림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자신의 관점으로 엮은 이야기를 맛스럽게 펼쳐놓고 있다.

 

읽다 보니 어떻게 이렇게 와인과 그림이라는, 정말 다른 것 같은 두 세계의 접점이 이렇게 많은 것인지 놀라웠다. 일례로 <역사 : 백합의 향기를 품은 프랑스> 장에서는 ‘백합’이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 미술작품에 숨겨진 이야기들과 루아르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들이 함께 만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결국 미술과 와인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손으로 빚어온 와인과 사람의 손으로 빚어온 그림에 어마어마하게 풍부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분야는 달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발전해 온 미술과 와인은 결국 사람이 빚어낸 이야기로 다시 만난다.

 

그리고 작가는 그 안에서 자신이 발견한 와인과 미술의 이야기를, 사람의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자신만의 키워드로, 관점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인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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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책이 마냥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시각만을 무책임하게 늘어놓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렵고 복잡하다고 생각해서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와인의 종류, 지역, 역사, 특징, 맛 등등에 대한 지식을 적절하게 섞어두었다.

 

결국, 독자들은 작가의 취향을 따라가면서도 그가 들려주는 전문적인 와인에 관한 이야기들까지 산뜻하게 흡수할 수 있다. 마치 지금 와인 한 잔을 곁들인 저녁 식탁 위에서 작가가 이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꺼내고 있고, 그중 한 명인 필자가 금세 그 이야기에 매료되어버리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저녁 식사처럼 이 책은 취향이 만나는 자리, 취향을 맛보는 자리, 취향을 인도받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와인 혹은 그림을 취향으로 삼으려 그 길목에 막 들어선 사람이 있다면, 정희태가 친절하고 유쾌하게 들려주는 그의 취향에 한 번 귀 기울여봐도 좋을듯하다.

 

매번 마셨던 와인, 항상 알고 있던 그림이라도 두 개가 특별하게 마음속에 들어오는 순간, 그 그림 혹은 그 와인은 (혹은 그 그림과 와인은) 비로소 당신의 ‘취향’이 되지 않을까?

 

 

아마도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와인은 우리에게 “슬픔을 그냥 훌훌 털어버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에 공감하며 우리 같이 “안녕이라고 말하자”라고 하는 듯합니다.


한 남자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정신 착란까지 일으키며 쓸쓸히 죽어간 카미유 클로델. 그녀에게 다 잊고 앞으로는 행복하라며 이 와인 한잔 건네주고 싶습니다.

 

- p.199 <슬픔 : 슬픔에 빠진 조각가에게 건네고 싶은 와인>

 

 

*필자는 나중에 이 와인(Château Chasse Spleen)을 마시며 작가가 들려준 위의 이야기를 음미해보고 싶다.

 

 

[정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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