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끌릴 수밖에 없는 '봉사자들' [음악]

Too Valuable To be said
글 입력 2022.05.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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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선물 같은 앨범을 들고 나타나 여러 시공간을 물들였던 밴드가 있다. 바로 'The Volunteers', 봉사자들이다. 백예린, 구름, Jonny, 김치헌으로 이루어진 ‘봉사자 팀’의 등장은 가요계와 여러 리스너의 귀에 아름다운 색채를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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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예린에 대한 큰 애정으로 관심을 갖게 된 이 밴드가 2018년부터 ‘사운드 클라우드’를 통해 음악을 발표하고 있었다는 걸 미처 몰랐다. 백예린은 솔로 아티스트로서 오래전부터 자신과 자신을 향한 시선 사이에서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쌓아온 것처럼 보인다. 유독 엄격하게 들이밀어졌던 타인의 잣대와 “하늘하늘한 예린”이란 이미지 속에서 강요받은 침묵. 그런 그녀와 록(Rock)의 만남은 필연이었을지 모른다.


자발적으로 서로를 치유해주던 봉사자에서 우리의 봉사자가 된 그들은 이 앨범에서 정해진 틀 없이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을 담아냈다고 한다. 앨범을 듣고 또 들으면서 아름다운 중구난방 속을 관통하는 한 주제를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앨범 전체가 자아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 같다고도 느꼈다. 그 가운데 ‘너’를 잊지 않는다.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숱한 흔들림 속에서 끝내 자신을 간직했던, 간직할 수 있게 했던 그들의 사랑과 우정에 감사하며 노래를 살펴본다.


 

 

Track 1. Violet


 

 

You all suspects

You all just watched

You all hopeless murderers

You all goddamn control freaks

All you have done is say no to my face

But everything I've done is nothing to you people, wrong people

I'm not doing anything wrong

You hate to agree with my right mind and thoughts

 


백예린 본인이 가장 분노가 담긴 곡이라고 말했듯이 도입부터 직설적이고 강한 일침을 반복한다. 당신들 모두 답 없는 용의자고 방관자고 살인자라고. 그들의 살인 행위는 단순하다. ‘부정하기.’ 


타인의 세상을 부정하는 건 참 쉽다. 하나의 유흥으로 가십으로 툭 내뱉기만 하면 되니까. 마치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건 가만두지 못하는 강박적인 본능이 잠재하듯,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결국 물어뜯어 버린다. 그 다름이 자기 세상에 사실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단 걸 알면서도 무의미한 폭력을 계속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무의미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이런 바보 같은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신이 아닌 타인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너라고. 너의 놀이는 한없이 가볍고 우습고 끔찍할 뿐이라고.

 

‘Violet’은 그 반격의 외침이다. 부끄러움을 알라는 참회의 선전포고다.


 

 

Track 2. PINKTOP



앨범 소개 글에 있는 “As long as we walk our path - honey, it don't matter."이란 가사가 포함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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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엔 핑크탑을 입은 남자가 등장한다. ‘분홍색 상의’와 ‘남자’는 사회적 시선에선 조화롭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당히 핑크탑을 입고 걸으며 시선을 빼앗는 남자는 그런 통념 따위는 별 게 아닌 것처럼 자유로워 보인다. 그렇기에 그가 하는 말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It don't matter who you are

It don't matter what you like

It don't matter how you behave

It don't matter how I dress

As long as I walk my path

"Honey, it don't matter“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걷고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니.’


이 노래를 듣고 에릭 핸슨의 시 <아닌 것>이 떠올랐다.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도 / 몸무게나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 당신의 이름도 두 뺨의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나’라고 여겨지는 수많은 것들이 사실은 내가 아닐 수 있을 거란 이야기. 내가 무엇을 입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온전한 나를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이렇게 매 순간 모든 걸 의심하고 의심당하는 혼란스러운 삶 속에서 자기가 걷고 싶은 길을 선택하고 걸을 수 있는 당신이라면,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을까. 당신의 길 위에선 어떠한 붙임도 필요 없이 당신은 오롯이 당신이다. 그 사실을 믿을 수 있다면 다른 것이야 아무렴 상관이 없는 것일지도.


‘PINKTOP’은 지나친 간섭에서 벗어나 우뚝 선 자유의 선언이자 그러한 다른 자아를 향한 응원처럼 다가온다.

 

 

 

Track 3. Let me go!



이어지는 3번 트랙 ‘Let me go!’는 그간의 억압으로부터 홀연히 벗어나 충만한 자유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것처럼 들린다. 


태양과 달로 표현된 저항하고 싶지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자연적인 순리, 달아오른 분위기와 사랑. 극에 다른 에너지를 표출하는 하나의 후렴구, ‘Let it go, Let me go’ 아무래도 곡의 강렬한 에너지는 그 자체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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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에너지를 ‘2021 인천펜타포트 록페스티벌’ 무대를 보고 더 사랑하게 됐다. 백예린은 간주에서 외친다. “My body, my choice. My tattoo, bitches.” 그녀의 음악적 고민과 성취를 무시하고 끈질기게 들러붙은 타투에 관한 자극적 소비를 향한 일침이었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이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영역이다. ‘나’의 선택만이 존중되어야 할 뿐이다.


 

 

Track 4. Time to fight back in my way



이 트랙은 억압된 자아를 폭발시킨 후의 정돈된 다짐이자 이야기의 interlude(간주)라고 느꼈다. 

 

 

It's now the time to fight back in my way

There's no stepping back

I gotta take my power back again

They gave no love to me

But I still love them

Growl!

Howl!

 


이젠 나만의 방식으로 싸워나가겠다. 후퇴는 없다. 소중하게 믿게 된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가져가겠다는 연약하고도 강한 울부짖음이다.


 

 

Track 5. Radio



Radio는 가상의 스토리를 상상하고 써낸 곡이라고 한다. 옛날 미국 남부 시골에서 모든 게 차단된 채 자란 아이가 자신의 유일한 즐거움인 라디오를 도시에 전파하는 과정. 


시골은 지극히 한정된 세상의 표상이다. 비단 시골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좁고 동일한 세상에 살 수밖에 없고 그런 모습을 은연중에 강요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단일한 곳에서조차 각자의 세상은 다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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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ama told me to go to church every Sunday

She believes in god but I'm livin' in hell

 

 

엄마는 신을 믿는 세상 속에 살지만 아이는 그와는 정반대의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같은 제도, 같은 공간을 공유하기에 서로의 세계관은 같은 듯 보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다르다. 무수한 파편의 세상이 얽혀 있는 이 세계.


 

If I have the answer

I wouldn't say it

I would let them learn by themselves

If I have the solution

I wouldn't say it

 


모든 파편을 아우르는 뚜렷한 정답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정답은 이내 쪼개어져 다른 형태로 변질된다. 결국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온전한 답이란 있을 수 없다. 자기 세상을 방해하는 침입자가 될 뿐이다.


그 사실이 너무나 답답하면서도 서로를 향해 할 수 있는 건 결국 침묵밖에 없는 것 같다. 그저 자신의 답을 혼자 묵묵히 되뇌고 따르는 수밖에. 언젠가 다른 세상에도 들릴 수 있도록 스스로를 향해 크게 외치면서 말이다. 점점 거칠고 크게 내뱉는 후렴은 세상을 향한 간절한 연결의 악수처럼 보인다.


 


Track 6. Crap


 

자신에 대한 애정은 타인을 향한 사랑에서도 묻어나는 듯하다. 그 사랑만으로 자신을 정의하려 하지 않고, 상대를 구원하려 하지 않는다. 그 신뢰 속에서 나의 선택을 의심하지 않고 표현할 수 있다.


 

You taught me many kinds of flavor

I taught you a few more ways of buying my heart

Don't feel so obligated to someone

Don't let them tell you what to do

You've become a man,

Sending a letter and flowers

You've become a man,

Who can express your fee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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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당사자들의 감정과 선택이 가장 중요한 영역. 사랑은 결국 개인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헤프닝. 어쩌면 사랑은 의존의 영역이 아닐 수도. 


 


Track 7. Nicer



 

You would want to be

A better existence, better shadow

Or better listener

You would have to be

Much nicer to everyone you know

But I can't I can't

 

 

‘사람 좋다’는 말은 듣기 좋은 칭찬이다. 칭찬엔 자극적인 면이 있어 노출될수록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언뜻 선순환처럼 보이는 굴레에서 ‘좋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될 때가 있다. ‘좋다’는 주관적이며 사회적인 판단이기도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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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마다 좋다고 받아들이는 영역은 다르다. 당연히 좋지 않다고 판단하는 영역도 다르다. 그런데 모든 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그 고유한 영역을 침범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좋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상충하지만 이는 쉽게 무시당하고, 으레 좋은 것이 좋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상대는 바라지도 않는 ‘친절’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까, 좋은 사람이라는 내가 되고 싶은 것일까. 과한 ‘좋음’은 누군가에겐 ‘좋음’이 아님을 안다면 어떨까. 이렇게까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건 '좋은' 것일까.


 


Track 8. Medicine


 

 

I'm such a trouble to you

But I'm a fucking medicine to the world

At least to my brother

 

 

‘평판’은 주관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일상에선 누군가의 개인적인 판단이 불변의 정보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분명 나에게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왠지 그 판단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다른 대상이란 그토록 쉽고 가볍게 여겨진다.

 

당신에게 엉망인 사람이라 해서 모든 이에게도 그럴 것이란 판단은 실은 굉장히 자기중심적일지도 모른다. ‘Medicine’은 나에게 독 같은 대상이 어딘 가에선 약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준다. 약과 독은 한 끗 차이이기도 하다. 같은 성분의 제품이 누군가에겐 이롭고 누군가에겐 해롭다. 치명적인 약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를 구원으로 이끈다면 그건 해롭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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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내가 누군가에게 독이 되고 있다면 그건 나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단지 내 성분이 그 대상과 조화하지 않는 것이다. 나와 꼭 맞는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당신은 결국 어딘가에서 반드시 필요한 치료제가 될 것이다.

 

 

 

Track 9. S.A.D



S.A.D는 Social Anxiety Disorder, 사회 불안장애(사회적 관계에서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불안 장애)의 약자다. 이는 보통 후천적인 경험에 의해 발생하는 장애다. 그 경험은 대개 나의 특성을 비웃고 가치 절하한 이들을 거쳐 일어날 것이다. 날 약이 아닌 독 같다고 하는 사람들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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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조롱으로 한 사람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수도 있고, 자기혐오의 굴레에 빠져 살게 될 수도 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아픔의 늪이지만, 이내 깨달을 수밖에 없는 사실이 있다. 누구나 남들과는 다른 ‘괴짜’ 같은 면이 있단 걸. 나는 곳곳의 울퉁불퉁한 마음을 고칠 사랑으로 가득한 기특한 사람이라 걸.



I would've done anything to fix their uneven hearts with love

I'd treat you like my family

So you could realize how fucked up you were

You were

You were

The worst

I don't get any lower now

 

 

다르다고 날 탓하는 따분한 시선은 그야말로 유독하다. 'S.A.D'엔 당당히 자신과 사회의 부조화한 면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런 나를 비난하는 당신과도 조화롭지 않다는 강렬한 전언이 담긴 듯하다.

 

 

 

Track 10. Summer



노래의 메시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기 전에 먼저 특정한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노래가 있다. 'Summer’도 그중 하나다. 연보랏빛 배경에 주황빛 노을이 번지듯 스며드는 하늘, 차분히 가라앉은 낙조, 갖은 초록이 무성한 나무, 부담스럽지 않게 스쳐 가는 서늘한 공기가 흘러가는 구체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곳은 나 혼자서도 충만하지만, 왠지 다른 사람을 초대하고 싶어진다. 그래야만 완성될 것 같은 공간이다.


백예린 본인이 이 노래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본 기억의 감정이 녹아들어 있다고 한 말에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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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아홉 트랙에서 쉬지 않고 말했듯,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 근본을 이루는 듯하다. 그것이 없다면 결국엔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자기애만으로 사랑을 완성하는 데엔 왠지 부족한 감이 있다. 누구든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사랑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런 사랑을 한다는 건 나에 대한 사랑을 뒤흔들기도, 더 강화하기도 하는 알 수 없는 도박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결국 그 도박이 우리를 움직인다. 끝없는 심연이든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천공이든 우리를 다른 곳에 위치시켜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그것이 사랑의 역할이 아닐까. 다른 이를 나에게 초대하는 것이 결국 사랑의 완성이 아닐까. ‘Summer’는 소중한 ‘나’에서 그치지 않고 기꺼이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연서이자 부탁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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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적으며 좋아하는 걸 표현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임을 다시 느낀다. 하지만 노래를 곱씹으며 확실히 느꼈다. 이번 여름에도 봉사자들의 노래는 빠질 수 없다는걸.


노래가 지닌 잠재력은 생각보다 거대하다. 시공간을 물들일 물감이, 얼기설기 엮인 감정 주머니가, 따뜻한 친구가, 든든한 촛불이, 도피처가, 타임머신이, 자장가가 될 수 있다. 어떤 것이든 그것을 느낄 수 있다면, 당신에게 그 노래의 가치는 이미 고유하게 풍부하다. 


당신에겐 어떤 노래가 그러한가.

 

 

[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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