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보라색 연기 - 글 쓰는 나의 초상

글 쓰는 나의 초상
글 입력 2022.05.2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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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줄었다. 글을 쓸 만큼 머리가 채 깨어나지 못한 이른 아침부터, 딱히 갈 곳이 없는 나는 서재를 맴돈다. 나는 이 공간에 대해 규칙 하나를 새워두었는데, 그것은 절대 서재 안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글을 쓰노라면 손을 놀리는 시간보다 헤매이는 시간이 더 길다. 옥상을 전전하며 답답해하고 서성이고 미간을 찡그리다간 별안간 글 길을 찾아 어린애처럼 허둥대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는 빈 시간 동안 자연스레 담배가 늘더라는 것이렸다.


인센스를 샀다. 공간 안에서도 무언가 타는 연기가 필요했다. 내 글은 연기를 필요로 한다. 폐부를 답답하게 채워 놓고서는 삽시간에 흩어져버리는 것, 이것은 허무를 감각화하는 것이다. 글이 그랬다. 무언가 구상할 때 가슴 즐겁고도 답답하게 채워 들었다가는, 비로소 쓰는 때 일순 흩어져 내게 허무만을 남기고 그랬다. 자취도 찾아볼 수 없이 허공이 되어 버린다. 너무도 쓰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더 많은 담배를 태우게 되는 원리가 그랬다. 가슴 답답하고도 허적한 것, 조금만 더 가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신기루가 연기처럼 스러지는 현실에 대한, 그런 감각이라고 써볼까. 여하간 쓸수록 답답함만이 늘어나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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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피워둔 인센스 홀더에서는 보라색 연기가 빠져나온다. 바이올렛 향이라고 적혀 있다. 나는 이제 글 쓰는 일 자체를 생각할 적에 보라색 향기를 상기한다. 그것은 시각화된 허무이고, 향기로 된 답답함이면서도, 고통스레 사랑스러운 것이다. 흉통이라기보다는 편두통 같은 사랑이다. 대단히 향기롭지만, 편두통을 일으키는 것, 그것은 나의 사랑하는 글쓰기와 닮았다. 나는 쓸 때마다 두통을 앓았다. 쓰는 중에는 항상 가슴이 무거워지고 뻐근했다. 향 담배의 연기가 거기, 너무 부풀어 넓어져 버린 가슴을 아주 잠깐만 채워주곤 말았다.


하지만 거기 나를 걱정하실 이들이 있을 것 같아, 문맥을 벗어내면서라도 한 마디 적어둔다. 이것은 나르시즘이라는 행복의 변형된 한 가지 양태라는 것, 다만 나의 행복을 다 알려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어제 사랑하는 그대가 주는 고독에 대해서 적었지. 두통이 있어 글에 다 녹여내지 않았지만, 나는 그 고통스러운 행복이 어떤 감각인지 사실 조금 알 것도 같다. 춘광사설에서 아휘는 결국 보영이라는 파멸을 잘라냈다지만, 적어도 나와 나의 글은 서로를 파멸시킬 것 같지는 않아, 잘라낼 것 같진 않아 전부 다는 모르겠다.


내 안에는 대단히 우직한 채찍을 쥔 손, 그리고 청금 같이 단단한 아집의 몸체가 함께 있었다. 채찍을 쥔 손은 쉴 새가 없이 나를 후려갈겼고, 아집은 얼마든지라는 식의 앙다문 얼굴로, 오히려 늠름하고 자신 있는 얼굴을 하고서 저항했다. 그러면서 이따금 외마디 날숨이 흐르면 그것이 글 될 만한 것, 연기 모양의 비닐봉지가 되어 굳곤 한다. 여전히 바람불면 날아갈 것들이다. 그래도 미미한 고통과 견디는 힘으로나마 현재를 긍정하며, 그 흔적들은 글로 적었다. 내 과거의 글들이 지난하고 지리멸렬했던 까닭이 이것일 테다.


내 심리의 부분부분 중 가장 우스꽝스러우면서 자랑스러운 것은, 이런 자학적 모먼트와 승화 방식, 그리고 쾌감으로 이루어진 순환구조에 있다. 나중에 있을 글에 마저 적겠지만, 이것, 때리고 저항하는 글쓰기는 이제 완전한 과거가 되었고 지금에 나는 가만 앉아 연기를 마시며 글을 쓴다. 그러는 중 단 한 순간도 나는 자기파괴의 늪, 그 언저리조차 가지 않았다. 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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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늘었다. 무언가 대단한 걸 쓰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인내가 짧다. 변변찮은 걸 써내기에도 나는 몇 개의 담배를 다 태워내야 했던지. 글은 구상의 단계에서 가장 즐겁고, 비로소 그것을 써내는 과정은 일정 고통이 되더라. 그리고 써나가는 동안 이마에 난 이지의 눈은 개미핥기의 그것이 되어버려, 바로 앞에 놓인 문단의 땅을 더듬어 짚는 장님처럼 되어 버린다. 근시안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구상의 단계에 세워둔 전체적인 구조와 로직, 그리고 몇 가지 킬링 포인트 및 경구들은 개미핥기가 되어 쓰는 동안 모조리 잊혀 버린다.


그것이 반복되는 동안 게시된 글은 쌓이고, 내 눈먼 글이 완전히 잊혀 타인의 그것이 된 채 내게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된다. 때려서 만든 글, 하나같이 못마땅한 내 새끼들. 나는 나의 글을 너무 사랑해서, 내 글을 사랑스럽게 만들어줄 수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콩깍지라고도 하지. 사랑에 도취된 자는 그 눈에 비친 것들이 얼마 간의 환상으로 이루어진 세계인지를 분간할 수 없겠다. 사랑하는 나의 글들, 그 제대로 된 얼굴을 보기 위해 나는 이별해야 했다. 예전에 시간이 남아도는 시절엔 지어놓은 글들을 매일 같이 돌아와 눈으로 쓸어 보느라고 이별이 더뎠었는데 참, 이제 사랑이 가고 난 후 보이는 무지하고도 오만불손한 나의 파편들, 나를 째려본다.


쓴 것들이 내게로 돌아와 서로 반목한다. 쓰는 나는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자요, 때려서 훈육하는 아버지였으며, 기 쓰인 많은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비뚤어진 아들들이다. 그러나 쓰는 나의 아버지와 쓰는 나, 우리 혈육 관계가 그러했듯,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의 위세는 기울기 시작한다. 나이가 하나둘 차면, 힘에 부치는 것이다. 그러면 여전히 과거의 감정으로 남아 있는 나들, 쓰인 너희들이 투정하고 반항하기 시작한다. 부자간의 파워게임이란 일종의 인과이고 관계의 역사이다, 쓰는 나의 아버지시여.

 

거기 새겨진, 나이면서 나 아닌 것들이 각각 어딘가 왜곡되어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열해 앉아 있다. 어떤 놈은 격분하는 바로 그 순간의 표정인 채로 굳어져 박제되어 있고, 어떤 놈은 영원할 듯 우울한 채로 웅크려 있으며, 눈이 째진 놈, 입가가 째진 놈, 코가 비뚤어진 놈, 지나치게 작아진 것이 겸손한 양 주변 눈치를 살피는 놈도, 답지 않은 행복을 답지 않게 겨워하는 놈도 있다. 어느 것도 내가 아니었으나, 어느 것도 내가 아니라고 말 못할 것들이다. 박제된 과거들이 많다는 것은, 이런 이상스러운 재회와 일그러진 추억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임을 알겠다. 어느 것도 내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순간들에 쓰는 이의 사랑이라는 콩깍지가 덮어 씐, 일그러진 초상들이다.


여하간 노쇠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들들을 본다. 자신이라는 아들들을 바라보는 이 요사스러운 마음을 이해하시겠는가? 나는 피로 낳은 아들이 없어 잘 모르겠다. 모르면서 지껄이고 있다는 뜻이고 이 순간이 또 왜곡되고 있다는 뜻이나, 그 질책을 멀리서 기다리고 있을 내게 돌리고 쓴다. 나는 사랑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을 사랑하는 까닭이다. 박제하는 이 순간의 조각, 그 목고개를 아직 오지 않은 쪽으로 돌리어둔다. 질책은 모두 너, 오지 않은 너의 몫이다, 아버지, 현재라는 나여. 그러나 아들 된 자로서의 쓰는 내가 아버지께 그랬듯, 그들은 분노를 승화하여, 나를 드높이는 아픔이라는 방식의 다른 사랑으로 줄 것을 믿는다.


이렇게 나는 글을 놓지 않고 계속 쓸 수가 있게 된다.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와 개미핥기의 눈을 가진 자, 조악한 손과 일그러진 이지를 가진 이의 글이란 대저 이러해야 한다. 그러잖고서는 이 무수한 아들들의 힐난에 압도당해 더는 글을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센스가 다 타버렸다. 수수께끼 같은 글은 이만하고, 다음에 제대로된 형체를 지닌 글에서 마저 하겠다.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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