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끝없이 미끄러지며, 해태에게

글 입력 2022.05.1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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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썼던 마지막 말이 ‘사랑하는 해태가’였는지, ‘건강을 빌며 해태가’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혹은 그 어떤 다정한 말 한 조각 없이 급작스레 끝난 편지였을지도. 네 앞에선 구태여 작동시키고 싶지 않았던 이성이란 굴레에 기름칠을 해본다.

 

너라면, 어떻게 말해도 필시 의미가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사랑이란 단어에 너를 욱여넣었을 것 같지 않다. 맞지 않나? 이러나 저러나 넌 언제나 나의 예상 밖에 존재한다. 그 사실에 토라진 티를 내면 넌 입꼬리를 죽 늘리며 기꺼이 내 고루한 예상 안으로 편입해줄 것 같다. 그게 싫다.

 

오후로 접어들면 햇빛이 담뿍 쏟아지는 집으로의 이사를 준비하면서 이런 기분이 들면 안 되는 것이다. 그때 그때 손에 집히는 쪽지들을 욱여 넣어둔 상자를 열어보며 네 지문이 낭자한 편지가 없음을 깨닫고, 그것이 이 상자에도 저 상자에도 동시에 존재하는 슈뢰딩거의 무언가이길 바라는 건 우스운 짓이다. 너는 여기에 있되 평생 있지 않기를. 기억의 갈피를 갈라 너를 속속들이 끼워둔 채 간직할 수 있기를, 동시에 너를 영원히 잃을 수 있기를.

 

이런 내가 멍청해 보이는가?

어쩔 수 없다. 사람이 사랑임이 분명한 것에 사랑이란 이름을 허락치 않으면 이리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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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알다시피 나는 책을 살아왔다. 책은 실체들의 세계가 아닌 실체들이 드리운 그림자의 세계였다. 그림자의 세계는 오로지 '책을 읽는 나'에게만 수몰할 수 있을 만큼 어두웠고, 설익은 문장들에 눈물 몇 방울 떨군대도 티 나지 않을 만큼 축축했고, 열오른 머리를 간간이 식힐 수 있을 만큼 서늘했다.

 

스스로를 실체가 아닌 실체의 그림자에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나는 검고 어둡고 자주 서늘했다. 그러나 그것이 꼭 불행과 이어지진 않았다. 나는 오히려 실체들이 간과하는 그림자의 세계에 속해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나는 내가 읽고 쓰는 사람임이 수치스러우면서도 자랑스러웠다.


그런 나를 기꺼이 광원의 방향으로 끌어당긴 것들은 종종 존재했다. 뒷축이 꺾인 검은 운동화, 털이 누렇게 뜬 길고양이, 오로지 내 몫으로 준비된 홀케이크, 모서리가 속속들이 접힌 소설책... 그렇게 중심으로 끌려 나와 광원을 온전히 받게 되면 나는 해태, 너를 떠올리는 일이 잦았다. 뒷축을 꺾어 신는 해태, 잦은 파마에 머리가 누렇게 뜬 해태, 오로지 내 몫으로 준비된 둥근 해태의 시간, '나보다 머리 긴 애 접어' 하면 속속들이 접히는 해태의 손가락...

 

넌 안경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넌 책을 읽을 때 손을 자주 베였다. 넌 떡볶이를 먹을 때 양념을 그릇 모서리에 닦아냈다. 넌 말을 할 때 자주 입술을 침으로 축였다. 나만큼이나 단어를 고르고 또 골랐다. 넌 가장 나 같지 않은 나였다. 납작하게 말하자면 네가 좋았고, 그때까지만 해도 스스로가 싫었던 내가 나를 닮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게 묘하게 느껴졌고, 젠체를 해보자면 난 금성인에게도 너의 존재를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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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에 맞지 않는 날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안의 징조로 쓰이는 법이다. 나는 그날의 날씨가 꼭 그림자 세계의 날씨 같다고 느꼈다. 우리는 함께 이름 모를 직선 거리를 따라 걸었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하얀 향수 가게에서 막 나온 터라 온 몸에서 낯설게 뒤얽힌 외래어의 향기가 났다.

 

테라스가 넓게 트인 카페를 찾았다.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라고 생각해 발걸음이 삐걱댔지만 길고 어려운 이름의 차를 시켰고 너는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네게 내 글을 보여주었다. 너는 수치심에 몸을 꼬는 나에게 굳이 내 글을 음독했다. 네 키만큼이나 낮은 목소리는 녹음해서 듣자면 내것과 심히 유사했다.

 

목소리를 공유하는 자들은 같은 피치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네가 듣는 음악들은 시끄럽고 요란하기만 했다. 그래서 난 네 몫까지 고요해지고 싶었다. 네가 내 몫까지 내 음성과 피치가 꼭 같은 목소리로 온갖 정의와 옳고그름, 희망에 대해 떠들어주길 바랐다. 그로 인해 우리 앞에 길고 두터운 방패가 차곡이 쌓이길 바랐다.

 

기억이 나는지? 너는 내 글을 혹평했다. 심하게 혹하게 혹평했다. 그건 행성 B612를 닮은 내 존재에 떨어진 운석 무더기와도 같았다. ―너는 또 내가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하겠지만― 혹평까지는 예상하지 않았다. 좋은 점을 먼저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혹은 나중에라도 덧붙이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노력하면 잘 될 거라는 속없는 소리를 해주리라 여겼다. 아는가? 너는 구두로 말할 때 문장에 마침표를 잘 찍지 않는 못된 버릇이 있다. 접속사를 타고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너의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들으며 ―너는 그렇게 여기지 않을 지 모르겠지만 이건 내가 쓰는 편지니까― 나는 행성을 잃은 어린왕자됨을 느꼈다.

 

너는 내 글이 지나치게 상념적이라고 했다. (이 편지는 그래서 상념만으로 채웠다)

너는 내 글이 지나치게 두껍다고 했다. (이 편지는 그래서 두껍고 둔한 단어로만 채웠다)

너는 내 글이 지나치게, 지나치게 서럽다고 했다. (이 편지를 채우기 위해 세상 모든 서러움을 끌어다 댔다)

 

행복이 뭔지 '알면서' 행복하지 않음에 대해 쓰는 건 죄악이라는 네 말을 이제는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 글쓰기의 인과가 되었다. 나는 행복이 뭔지 '알기에' 행복하지 않음에 대해 쓰는 사람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너는 내가 나에게 떨어진 행복들에 빚져가며 불행과 절망과 우울에 대해서만 쓰는 못된 버릇을 갖고 있다고 했다. 너는 내 모든 조각을 애정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내 글만큼은 그러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넌 또다시 틀렸다. 글이 내 모든 조각이다. 내 혈관에는 굽은 활자가 흐른다. 너는 나를 애정한 적이 없다.

 

내가 실패한 예술가가 된다면 다 네 책임이다.

내가 망한다면 내 재앙은 다 네 몫이다.

내가 성공한다면,

정말 드물게 그 엇비슷한 걸 쥐게 된다면

나는 공모전에서 낙방한 내 원고 수십 수백 개를 엮어 너에게 부칠 것이다.

네게 떨어질 것은 오로지 그것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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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며칠 간은 너를 저주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연필을 깎았다. 아주 많은 싸구려 공책을 샀다. 종이가 쉽게 갈리고 찢어졌다. 나는 나의 어쩔 수 없음에 어쩔 수 없어하며 남의 문장들만 열심히 먹고 또 체했다. 날 그렇게 만든 네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관성을 이길 수는 없더라. 네 혹평에도 굴하지 않은 나는 ―사실 하던 짓 말고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후로도 하릴없는 글을 썼다. 햇살이 노랗게 부서지던 여름, 너에게서 자꾸만 알 수 없는 자음과 모음의 덩어리들이, 그들이 끝없이 배설하는 찌꺼기들이 보인 건 그때부터였다. 구겨진 종이에 몇 번을 쓰고 지워도 풀리지 않던 문장들이 해안에 밀려오는 파도마냥 막힘 없이 쓰이는 경험을 했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것이 쉬이 말하는 뮤즈라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까지 당도한 것이다. ―네가 들으면 웃을 걸 안다. 마음껏 웃어라. 난 못된 너를 뜯어먹고 살고자 한다.―

 

하지만 곧 ‘뮤즈’의 정의를 검색해보다 괜히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에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자존심이 상했다. 너는 너로 남아야 한다. 그 무엇 따위도 될 수 없는, 그저 교실 맨 오른쪽 분단 셋째 줄에 앉은, 항상 헤프게 웃는 모두의 과녁. 물을 잃은 금붕어. 해태이다.

 

나는 왜 내 글을 기꺼이 칭찬하는 이들의 호감을 넘어 너의 비난을 거름 삼았을까. 그 자체로 내가 얼마나 비뚤어진 글쓴이인가가 증명된다.


악이란 것이 선의 반대인지, 혹은 부재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악하다고 느꼈다. 악의 정의를 전자로 두자면 선의 대척점에 선 내가 너와 영원히 평행선을 그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네가 내 글에 혹평을 내놓은 후로 나는 나의 악이 사랑스러워졌다. 내 글이 괴로울 때마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저주하고 씹을 수 있음이 다행이게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너무 오래 괴로울 것 같았다. 활자가 내 살을 찢고 갈라봤자 혈관을 얌전히 흐르던 또 다른 활자만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나는 글로 아프고 글로 치유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넌 내게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잔인한 짓을 한 거다.

 

온도가 뚝뚝 떨어져가던 연말, 기억하는가, 너는 나에게 4장 반(혹은 다섯 장 반)으로 이뤄진 편지를 썼다.

너는 사과를 했다.

작은 칭찬도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너는 응원을 했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글을 더럽게 못 썼다.

그래서 난 그걸 열댓번은 더 읽으며 울었다.

 

울퉁불퉁하게 배열된 단어들, 일곱살배기의 앞니마냥 빠진 조사들, 지리멸렬한 문장, 납작하고 상투적인 표현... 날 울리는 건 미숙함과 단순함이었다. 그래서 난 나를 울리는 게 그리도 어려웠던 거다. 내 슬픔 역시 저만의 취향을 가지고 있음을 그때 알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세상에서 가장 글솜씨가 형편없는 네가, 평생 스스로를 건지며 살던 나를 그냥 수몰해 있어도 좋다고 물 속으로 깊이, 아주 깊이 밀어넣었다. 넌 내 글을 비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여전히 그러하다.

 

해태, 난 이제 그 차의 이름을 틀리지 않고 발음할 수 있게 됐다. 한글이 조금 미워진 만큼, 알파벳이 조금 덜 미워졌다.

 

시간을 돌린대도, 해태, 나는 그 햇빛이 잘게 부서지던 카페 테라스에서 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하지 않을 것이다. 난 아직도 네 비난들을 먹고 소화하며 그 배설물로서의 글을 쓴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너 이후로도 내 작품과 글에 대한 비난, 비판을 들은 바 있다. 숱하게 그래왔다. 그러나 너만큼 신랄하고 앞뒤 없는 비난은 없었다. 기어코 날 울린 비난은 없었다.

 

해태, 난 요즘 자주 네 존재의 부피감이 떠오른다. 현실과 분주함에 치일 때 네가 그립다는 건 불행이 맞다.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리는 없겠지만 만약 그런다면 이번에는 어떤 말로 내 행성을 유실시킬지 궁금하다. 난 여전히 이렇게 글을 쓴다. 너 보란듯이.

 

해태, 나는 요즘 자주 바쁘다. 나답지 않게 잠만 잘 수 있다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글을 돈과 교환한다. 내 글이 교환 가치를 가진다. 나는 그게 자랑스러우면서도 서글프다. 

 

해태, 오직 너만을 위한 홀케이크를 사주고 싶다. 입가 두껍게 묻힌 크림을 손끝으로 닦아낼 너에게 있는 대로 핀잔을 주고 싶다. 기꺼이 흠집 많은 카드가 긁히는 걸 보여주고 싶다. 뒷장에 휘갈겨진 내 사인을 자랑하고 싶다. 누군가 내 글을 본다고, 내가 고른 단어와 내가 엮은 문장에 기뻐하고 슬퍼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중에 네가 껴있지 않다는 게 다행이라고까지.

 

삶의 방향에 이렇게 긴밀히 맞닿아 있는 건 오랜만인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배움과 상념이 부족하고 그 무엇보다 사랑이 부족하다 느낀다. 네 말이 맞다. 나는 행복을 행복이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랑을 사랑이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구제불능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 때문에 글을 쓴다. 그게 세상이라는 도서관에 부치는 내 낡은 고백 방식이다. 그러니 부디 내 졸작拙作을, 우작愚作을 용서하라. 내 찌꺼기를 네가 용서하라.

 

― 나는 그림자의 세계에서 너와 살고, 살고, 살고, 살고, 살고, 어느 날 갑자기 코스모스처럼 죽고 싶다.

 

해태, 나는 네가 필요하다며 절실히 갈증하는 삶이 달갑다.

그러니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라.

네가 멀쩡하고

아주 가끔 아프며

그러다 나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네 일기의 구석에 내가 묻어 있으면 좋겠다.

 

해태, 꾸준히 건강하길.

이건 진심이다.

 

- 사랑하는 송림이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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