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리운 이를 향한 마음 - 연극 '돌아온다'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
글 입력 2022.05.1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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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연극 <돌아온다>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2015년 제 36회 서울연극제 '우수상'과 '연출상', 2017년에는 영화로 개봉되어 제 41회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금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연극 <돌아온다>가 2022년 5월 7일(토)부터 6월 5일(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번 <돌아온다>는 초연 당시 참여했던 배우들이 대거 합류해 탄탄한 연기력과 개성 넘치는 매력을 한껏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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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다>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식당 '돌아온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은 연극이다.

 

극에 등장하는 식당의 손님들에게는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 한 명 쯤 있다. 그들은 식당에 걸려있는 액자 속 손글씨,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라는 다소 허황스런 말을 굳게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희망'이 있기에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리 큰 근심이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는 내가 바라온 것이 이뤄지리라는 강력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쉽사리 잃지 않는다. 그것은 '돌아온다' 식당에 늘 손님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엔 막연히 한 명의 손님으로 보였던 등장인물들이 극이 진행됨에 따라 나름의 사연을 품은 인물들임이 드러나게 되고 이는 관객이 연극에 더 몰입을 하게 되는 중요 포인트가 된다. 식당에 지박령 마냥 머물고 있는 청년, 밝은 미소로 식당을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선생, 정적인 식당에 웃음과 활력을 불어넣는 할머니, 그렇게 들뜬 식당의 분위기를 적당하게 내려 템포를 조절하는 스님까지 모두 다 마음 속 깊이 간절히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 밤마다 보이는 식당의 귀신들 역시 자신의 짝을 제대로 찾지 못한 채 식당 내를 방황하는 모습이 보인다.

 

후에 '돌아온다'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 남자 또한 간절히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부터 극은 조금씩 절정을 향해 치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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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같은 순간을 막걸리와 함께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

 

하지만 그 믿음이 철저히 배신당하는 선생을 시작으로 극의 분위기는 갑자기 뒤바뀌기 시작한다. 희망차고 웃음이 넘치던 식당이었지만, 이때부터 어둡고, 쓸쓸한 적막만이 가득하게 된다. 식당을 찾아오던 사람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손글씨 액자가 부서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것이었다. 마치 모든 비극의 배경에는 우연이 아니라 의도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그 의도는 내가 막을 수 있기도, 막을 수 없기도 하다. 막을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막을 수 없다면 잠자코 기도만 하는 수밖에 없다. 때때로 모든 것을 걸었는데도 내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럼 이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이라면, 내가 한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지? 아무리 애써도 이렇게 되어버린다면, 나에게 주어진 노력의 기회조차 사치 아니던가?

 

결국 이 또한 선택과 운명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이는 인간 생애를 꿰뚫는 중요한 문제다. 운명에 순응하는 것과 선택하는 것. 무엇이 되었건 그건 당사자에게 고통이다. 고달픈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도,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도, 억겁동안 이어질 고통의 시작이니 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받아들이겠다고 선택한 선생에서부터 이야기는 다시 순항을 시작한다. 그리고 뒤이어 운명과 선택에 따른 대가를 받아들이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비추며 극은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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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모두가 해피 엔딩을 누릴 수는 없다. 그것이 이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는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믿는 건지도 모른다.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라는 동화같은 문구를 믿는 것도, 저 어딘가에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를 신을 믿는 것도, 나에게 일어날지도, 안 일어날지도 모를 행운을 믿는 것도, 그런 해피 엔딩을 염원하는 우리들의 바람이 투영된 것이겠다.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해피 엔딩은 없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진정한 해피엔딩의 원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에게 현실의 회초리는 정신 차릴 틈을 주지 않고 아프게 다가온다. 이는 분명 고통이고 우리를 병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리움이 배신당했을 때, 그리움으로 속앓이를 한 기간만큼, 아니 배 이상의 시간동안 우린 고통 속에 허덕이지만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은 허투루 날아간 게 아닌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내면에 축적되어 튼튼한 마음 근육을 빚어낸다.

 

그리고 그 긴 과정이 지난 후에 비로소 자신이 조금 더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미소를 짓게 되리라.

 

*

 

연극이 끝난 후 막걸리를 하나씩 받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극의 내용을 다시금 돌이켜보았다.

 

극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 포인트를 억지로 자아내려고 한 점이 보여서 다소 아쉬웠다. 그런 인위적인 장면이 아니어도 충분히 감동을 낼 수 있었을 텐데. 서사도 좋고 인물들간의 관계도 잘 이해가 돼서 조금 더 세심히 접근 했더라면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눈물 포인트가 다른 장면들과 어우러지지 못해서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점을 제외하고서는 모두 깔끔했다. 배우들의 발성도 좋고, 음악도 적재적소에 사용되었고, 세트 구성도 푸근한 감성을 주기에 충분했다.

 

<돌아온다> 연극은 오는 6월 5일까지 상연된다. 그리운 누군가를 마음 속으로 그린다면 <돌아온다>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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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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