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렇게 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지
글 입력 2022.05.1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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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까지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 다짐 같은 게 있었다. 실존을 고민할 때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남들과 조금 다른 구석이 있지만 그렇다고 유별난 존재는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땐 규격 외의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 다음으로 글을 잘 쓰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모호한듯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는데 이건 전혀 이루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20대 중반의 나는 끊임없이 바뀌는 목표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많은 걸 경험하면서 과거의 목표가 의미를 잃기를 바랐다. 그래서 다른 목표를 가지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희망했다.

 

하지만 실존은 더는 나를 고민케 만들지 못하고, 사회에 나서면서 남들만큼만 살기를 바랄 정도로 평범해지자 더 이상 이전 같은 목표를 만들지 못했다. 매년 친구와 함께 만드는 소소한 새해 다짐 목록을 해치우려는 시도도 하기 전에 잊어버리고 마는 30대가 되었다.

   


“맙소사, 이게 전부라니. 사람들은 세상에 와서 기성품처럼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삶을 찾아서 그냥 걸치기만 하면 된다.”
 

   

스무살 전후의 나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자전적 소설에 푹 빠져있었다. ‘지하실’에서 “공예품같은 인간”이란 표현을 발견하고는 마음에 새겼다.

 

만들어진 삶을 살지 않으려고 했다. 나라는 사람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호전적인 생각이다. 그때의 나는 남다르고 싶은 마음이 컸던 미숙한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반골기질이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지금의 나는 평범하기 그지없다. 신점을 보러 가서 ‘인생에 고행이 없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남들처럼 성실하게 회사에 다니며 경력을 쌓는 걸 우선시하는 삶에 서있다. 특별할 것도 특이한 것도 하나 없다. 다른 것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흔한, 찍어낸 듯한 삶이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존에 대한 고민이 끝나면서 무언가를 잃은 게 아닌가 싶은 그런 생각. 나를 좀먹기도 했지만 나를 뒤흔들 정도로 영향력이 있던 것을 상실해서 빈 구멍 하나가 생겼는데 그걸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실존이 아니더라도, 나를 관통하는 것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해서 그저 그렇게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 키워드는 부조리였다. 여전히 나는 어렵게 정의를 사수하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고 응원하려고 하지만 그때만큼 반응하지 않는다. 기대할 것 없는 기사라는 걸 다 알고 흘긋거리면서도 이제는 어지간한 큰 일이 아닌 이상 화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관심사에 지쳤다고 할 수도 있고, 내 몸과 정신이 편한 쪽으로 나를 옮겨갔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든 결론은 나는 많은 것들을 손에서 놓고 있다는 것. 나는 예전만큼 과민하지도 예전처럼 스트레스에 나를 빠뜨리지도 않는다. 그때는 감수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일상의 피로감에 그저 잔잔하게 살고만 있다. 이렇게 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린 시절엔 당연히 영원히 내 것일 거라 생각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뿔을 세우고 살았다. 그때는 내게 많은 뿔이 있어서 세상이 나에게 주는 많은 자극을 날카롭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자극이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고 자아를 형성하게 했다. 그런데 이제는 뿔이 없다. 닳아 사라졌다. 둥글둥글한 것은 더 이상 뿔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자극이 유령처럼 나를 통과해버린다. 정말이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이제는 가진 것이 없어서 목표조차 품지 못한다.

어떡하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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