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종로 스케치 2 - 북촌, 안국

종로는 지금을 생각하게 한다.
글 입력 2022.05.1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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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북촌을 떠돌았다. 덧없는 휴일이 저물어갈 때, 거기서 만나자, 짧은 메시지만 남기고 황급히 각자의 집을 떴다. 어린이날의 오후는 무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16시는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쯤이었을까, 아니면 추락을 거부하며 발악하는 시간대였을까. 자외선의 따끔함을 얼굴로 맞았다.

 

우리는 북촌을 떠돌았다. 안국역 3번 출구 바로 앞부터는 이국적인 정취가 흐른다. 한글로 된 간판과 한옥을 본뜬 양식의 집합 앞에서 이러한 정취를 맡는다는 것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종로 3가에서 내려, 인사동을 지나 창덕궁을 스치고 가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짧았다. 마침 저녁엔 그 주 말미에 있을 모임을 위하여, '시네마 천국'도 보아두어야 했기에 내몰리는 마음으로 걷는다.

 

휴일이 저물어가고, 할 일이 있는 상태에서 한 바퀴 돌아본 북촌은 뜨거웠다. 내몰리는 달뜬 마음. 나는 이러한 상태를 좋아라 한다. 그때야 휴식은 가장 빛나기 때문에. 뜨거운 상태의 북촌은 그럼에도 흐트럼 없는 얼굴로 차분하게 손을 맞는다. 한옥의 표정이 그랬다. 아니면, 목재가 주는 시원함의 인상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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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그늘진 얼굴과 햇살을 같이 담으려 욕심부린 탓에

모르는 사람이 찍혀버렸다.

죄송하다.



계동길을 따라 쭈욱 걸었다. 군데군데에는 나무로 된 건물들이 그늘 아래 지그시 눈을 감은 채로 앉아 있었고 자외선이 먼지를 이미 다 태워버린 전처로 세상은 더욱 선명했다. 너무 센 조명에 상기된 것 같은 얼굴들은 이따금 땀을 흘렸다. 이제 야외에선 마스크를 벗어도 좋다는 말에 너와 나는 드디어 민얼굴을 햇빛에 말리며, 흐르는 땀으로 다시 적시기를 반복한다.

 

계동길 끝엔 중앙고등학교가 있다. 닫긴 교문, 담장 너머로, 가려보기엔 너무 무성한 나무가 머리칼을 축축이 쏟아내린다. 몇 사람들은 그늘 앞에서 사진을 찍어댔고, 시커먼 옷을 입은 우리는 사진 대신 걸어온 긴 길을 돌아보았다. 사위로 고개를 휘- 저었다. 고교 바로 우측의 오래된 매점 하나가 눈에 걸린다. 욘사마의 얼굴이 햇빛에 누렇게 떴다. 이럴 땐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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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고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우측으로 돌았다. 지도는 그 길이 아니라 말했지만, 높은 언덕 위에 걸린 푸른 하늘은 지도보다 훨씬 가까이서 반짝거린다. 공교롭게 프레이밍 된 저 구도는 언제나 바다를 연상시키곤 하지만, 바닷비린내가 나지 않아 반쪽짜리 꿈이다. 너머에 바다가 있을 것 같은 이 대책 없는 기대감, 이런 것들이 가슴에 맴돌면, 픽셀이 거의 소실된 유년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려 애써보곤 한다. 분명 어디에서 본듯한 광경인데, 기억나지 않는 이 뭉클함이란. 특별히 기억의 랜드마크가 서 있지 않은, 대수롭지 않은 어느 한순간이 유년의 텅 빈 심상에 물감을 불어넣었으리라고, 다만 생각하고 말았다.


언덕배기 너머엔 가파른 내리막, 아무런 소음도 없는 순간을 밟아 내리는 중, 눈앞의 울창한 숲 속에서 새소리가 날아들었다. 공기로 된 몸체를 가진 새의 소리는 용케 흩어지지도 않고선, 투명한 레이어로 겹겹이 쌓인 적막의 벽을 관통했고 미동도 없는 막막한 수면 위로 가루 같은 파문을 낸다. 그 조약돌은 창덕궁 담장 안에서 날아왔다고, 경로를 수정한 지도가 말했다.

 

서울 어느 곳이나 두르고 있는 흰색의 소음들,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가 제거된 잠깐의 공간에서 눈을 씻고 도시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잠시 우리는 눈을 맞추고 입을 잠궜다. 그리고 모습을 감춘 새들은 자꾸 공기로 된 조약돌을 던져, 이 바삭하고 얇디얇은, 페스츄리 같은 적막에 기분 좋은 실금을 내주었다. 완파되지 않아 형태를 유지한, 충분히 작은 구멍이 난 적막을 측면에서 그려보면, 투명한 유리 레이어 위에 캔디 파우더가 쏟아져 있을 것 같다. 녹여 굳힌 설탕 캔디를 바수어 흩뿌려둔 듯, 도넛에 입힌 슈가 코팅이 아주 섬세한 충돌만으로 어여쁘게 바스라져 뿌려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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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를 내는 창덕궁 돌담을 찍고 크게 돌아, 안국역 2번 출구로부터 북으로 쭉 이어진 북촌로를 지나, 사든 맥주가 이미 다 식어있을 만큼 걸었다. 그 길의 언덕배기 끝, '감사원' 정류장에서 쉬기로 한다. 해 떨어지는 것을 배웅하기로 했다. 휴일의 여남은 시간을 비유하고 있는 태양이, 꼭 그에 대한 내 마음처럼, 아쉬운 듯 타는 듯 뜨겁게 갈증을 외치고 있었기에.

 

땀을 삭히며, 앉아서 오래도록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것들이었지만, 더 정확히 말해보자면 그 순간에 의해 소환된, 단장丹粧된 과거이다. 우리는 예상외의 수확들을 와락 안아 든 마음 뒤로 과거를 드리웠다. 그러니까, 너무나 즐거운 순간에 소환된 기억들은 조금쯤 '지금'에 물들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반짝이진 않았으나, 보단 차돌처럼 묵묵하니 기억된 과거들에 '지금'의 색이 입히었다. 지금으로 인해 기억된 과거가 변모되는 것에 기꺼워하며, 4년만큼 긴 먹색 포목을 구뷔구뷔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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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에는 거꾸로 내려 들어갔다. 한옥 길 사이를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오려는 정수리들이 너무 많아, 사진을 찍으려고 선 줄이 너무 길어, 삼청동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우측 가변으로 빠져나왔다. 루프탑과 경복궁과 북악산이 한 번에 보이는 뷰포인트가 나온다. 이때의 하늘은 태양의 마지막 외침만이 하늘의 경계 어딘가에 커다랗게 웅성거리는 모양이 된다. 우렁찬 주홍빛, 그것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어떤 무구한 어린아이의 표정을 떠올린다.

 

이야기가 충분했기에, 그때부터는 쭈욱 걷다가 잠시 사진을 찍고 다시 걸었다. 낮과 밤의 경계쯤에 평평한 거리로 내려와 정독도서관 뜰을 한 바퀴 휘- 돌았다. 어슴푸레한 정독도서관 뜰에는 기대치도 않은 정자와 물이 흐르지 않는 연못과 마찬가지로 멈춘 물레방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는 이제 완전히 졌다. 석식으로 시킨 국수 면과 함께 하루 기행을 꼭꼭 씹어 삼켰다. 나는 서재로 돌아와 기다리고 있는 영화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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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케치는 우리의 여정을 주욱 나열해 소묘하는 것으로 마치련다. 의미마저 포착해 담아보기엔, 중간 중간 우리가 나눈 대화가 너무 많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지? 거리와 사람의 한가운데에서는 아름답다,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말만을 뱉었다. 그늘과 한적함이 있는 어느 높은 곳에 이르러서야 너와 나와 과거와 지금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방과 서재에서는 손 틈 사이로 흐르기만 했던 지금, 까만 이불을 덮은 채 잠든 먹색 포목 같은 과거를, 느끼고 호흡하고 만끽하기 위해 우리는 걸었구나,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이 가까이서 느껴지기 위해 지금은 아깝고도 아쉬운 것이 되어야만 했고, 다시 그를 위해선 아름다운 곳을 걸어가야 했다. 지금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공간, 그곳은 언제나 낯선 곳이어야 하며, 건물 사이로 시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이것은 아마 남은 종로 스케치 전반에 서릴 생각이다. 종로는 어느 골목에서든,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든 '지금'을 생각하게 하니까. 세운상가 폐 철물점의 굳게 닫힌 셔터와 북촌의 거리 변을 따라 눈 감고 앉아 있는 나무집들이 그렇다. 그런 것들은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 계속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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