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영 기다리고 있을 테다 - 연극, 돌아온다

돌아온다, 돌아오지 않는다.
글 입력 2022.05.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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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에 연극을 보러 간다. 그것만으로 나는 산뜻한 설렘을 느낀다. 예술의전당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며, 거기 서린 기억들도 전부 아름답기 때문이다. 로비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 밖으로 나오면, 정면에 커다란 오페라하우스 건물과 우측 편 음악당이 가장 먼저 보이고, 계단을 조금만 오르면 두 건물의 정문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한적한 광장이 나온다. 시계탑과 앉을만한 곳과 모차르트 카페가 있는 광장에서 남은 시간을 보낸다. 넉넉한 테라스가 인상적인 모차르트 카페에는 몇 사람들이 벌써 마실 것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행한 회사 후배와 연극 관람을 마치고 저기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팜플랫을 스윽 훑어보았다. '돌아온다', 누군가 '돌아온다'라고 써보는 일은 기다릴 그리운 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운 이, 그립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사랑하는 행위이다. 사랑이라, 나는 아직 사랑에 대해 아무런 나의 말을 적어볼 수가 없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린 적이 있었을까? 아직 누군가를 기다리며, 타는 듯 초조함과 행복을 누려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내가 기다린 것들은 대개, 아직 오지 않은 것들과 일어나지 않은 것들, 그러한 것들에 대한 내 기다림을 사랑이라 불러볼 수는 없으리다.

 

누군가 돌아온다는 것은 나와 관계를 맺은 누군가에 대한 감정이고, 그 감정 아마 대부분은 사랑일 것 같다. 나는 그들 각자가 사랑하는 모습을 궁금해하며 객석에 앉는다. 극이 시작하기 전부터, 마련된 무대 세트 위에 배우들이 잔잔거리며 움직인다. 허름한 막걸리집의 세트는 대단히 어여쁘다. 그리고 세트 뒤로는 나무 몇 개와 가로등, 전봇대 등이 마찬가지로 어여쁘게 서 있다.


어여쁘다. 왜 이런 것들에 흡족한 감정을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곧 극이 시작했고 산뜻한 목관악기가 퐁퐁거리는 왈츠 박자에 맞추어 흘러나온다. 그리움을 멋대로 떠안기는 선율, 극은 작정했구나. 곧 잔잔거리며 서성이던 배우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배우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 보이면서 그들은 캐릭터가 되어 간다. 역시나 술집 주인이었던 한 남성과 아들을 기다리는 초등학교 여교사가 운을 떼고, 속속들이 배우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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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집 나간 아내를 그리는 남편, 잃어버린 아버지를 후회로 추억하는 사내, 그리고 서로를 찾고 있는 모자 母子가 등장한다. 그들이 이 식당을 찾고, 오래도록 전전하는 까닭은 오직 애타게 그리운 이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 이 말 한마디를 믿으며 연거푸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 그 말을 믿게 만드는 힘과 이 가게를 찾게 하는 힘과 막걸리를 계속 들이켜게 하는 모든 것의 이유에는 오직 사랑, 사랑밖에 맞아들어갈 다른 것이 없다.


초행인 손님은 단연 의심부터 하고 본다. 대저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랑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 식당을 꾸준히 찾는 손님들은 그 사실을 확고한 진실처럼 믿으며, 초면인 손님들에게 막걸리를 권한다. 한번 잡숴보라고 따뜻한 미소로 건네보는, 누런 막걸리 잔. 그들은 정말로 그리운 이가 돌아오리라고 확신하는 것 같다. 그들의 미소는 이 확신이 주는 행복감처럼 보인다.


나중에야 드러나는 설정이지만, 이 가게에는 서로를 애타게 애타게 찾는 부부 귀신이 아직까지도 맴돌고 있단다. 죽어서까지 서로를 찾는 귀신 부부, 그들의 한이 이승의 그리움에 반응하여 신묘한 조화를 이뤄내 주는 것일까? 그것까지 연극이 다 이야기해주지는 않는다. 조금 깨는 생각이지만, 저희도 아직 못 만난 통에 누가 누구를 만나게 해줄 것이냐, 하고 혼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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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들의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는 빈약하다. 어느 여고생이 애타게 찾던 강아지와 다시 만난 것 정도, 극 안에는 그 정도만 드러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믿음은 사실에 기반한 확신의 덕분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애타는 사랑이 쉴 자리를 필요로 한 까닭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마음속, 두터운 의심을 깨고 믿음을 깃들게 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근거와 사례들이 필요한 법이라지만, 너무도 간절한 것들 앞에서는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더라. 그러니까 꿈이나 사랑이나 뭐 그런 것들. 어느 펜싱선수가 '할 수 있다'고 되뇌인 것도, 어느 아낙이 전장에 나선 남편을 떠올릴 때마다 '돌아온다'고 되뇌이는 것도 다 이러한 모습들과 어울린다.


그렇다면 사랑은, 믿음에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한편, 그렇다면 사랑은 믿음을 세우는 만큼 믿음을 지워버리는 것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그래, 어쩌면 모든 드라마와 비극의 극작 원리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섣부른 생각마저 들기 시작한다. 어떠한 형태의 사랑이든, 사랑이 사람을 세우고 다시 사람을 땅바닥에 내리꽂아 버리는 모습은 반복된다. 사랑은 한 어머니를 세우고, 다시 그만큼 메다꽂아 버린다.

 

결국, 한 어머니는 아들을 영영 잃어버리었고 다른 어머니는 아들을 되찾았으나, 한 남편은 부인을 잃고 다른 아들은 결국 제가 버린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이 되어 버림받는다. 귀신은 그들을 구제해주지 않았다. 역시 그들은, 아직도 구천을 떠돌며 서로를 찾느라 다른 이들을 돌아볼 여력 따위 없었던가. 대단히 비뚤어진 생각이지만, 이 극 안에서 귀신은 사랑이 얼마나 오래도록 인간을 기다리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로서만 기능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모든 애끊는 사랑 중, 단 하나의 모자만을 상봉케 해주었을 리 없다. 연극은 여전히 따뜻한 무드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이쯤 연극에 대한 나의 낭만적 태도는 죽었다.


귀신은 트릭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연극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극이 내게 쥐여주는 생각은 조금 더 담담하다. 사랑이 귀신의 힘을 믿게 만들 정도로 맹목적이고도 원초적인 동력이었지만, 사랑이 누군가를 더욱 일으켜 세우고 누군가를 더욱 좌절시키게 만드는 힘이었지만, 그것이 비어버린 자리는 자신 스스로 일구어나가고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자살을 생각한 남편은 이 가게와 더불어 막걸리를 끊어버렸고 아들을 잃은 엄마는 한동안 더 이 가게 안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자기 센 머리 속의 아버지를 보곤 오열한다.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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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연극의 의도완 아주 다를 해석을 쥐고 객석을 떠난다. 본 극의 톤은 비극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으니 말이다. "돌아온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올 기다리는 자리에는 슬픔만이, 전사 통지서처럼 날아들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유일하게 상봉한 모자도 곧 이별을 겪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느라, 간암 말기가 되도록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으셨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연극의 이 밝은 톤이 주고자 했던 것과는 다르게, 돌아온다고 외는 것,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이별을 맞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돌아온다, 돌아온다. 영화에서는 꼭 이렇게 말해보는 이의 기다림에 끝일랑 없었다. 돌아온다는 것의 마침표, 상봉과 해후, 어쩜 많은 기다림이 그럴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녀는 기다렸을 것이다. 어떻게 하더라도 기다리는 마음을 지워 보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 이 모든 것을 알고서라도 기다렸을 것이다. 돌아온다, 돌아온다. 어느 미망인이 외던 마음처럼... 갸륵하게 굽어보는 어느 신이 장막을 들추어 기다린 끝, 미래를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신을 부정하면서라도 외워보았을 것이다. 돌아온다, 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돌아온다. 오늘, 내일, 영영 돌아오지 않더라도, 너는 돌아온다. 다만 그것은 내 사랑이었을 뿐이다. 돌아오지 않을수록, 네가 돌아오리라는 내 마음만 더 붉게 타들며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영영 기다리고 있을 테다.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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