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어에 의한, 모어를 위한 기록 - 털 난 물고기 모어

모어, 아름답고 찬란한 이름
글 입력 2022.05.1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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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 아티스트를 처음 내 눈으로 보게 된 것은 <킹키부츠>라는 뮤지컬이었다. 원래 그 뮤지컬의 분위기도 그렇지만 그 안에 나오는 모든 드래그 아티스트들은 하나같이 자신감 있고, 즐거워 보였다. 그런 분위기에 빠져 찾아 본 다른 드래그 아티스트들 또한 그랬다. 자신들이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졌고, 그 일을 즐겼다.


매사 당당하고, 화려하며, 즐겁게만 보이는 그들. 그러나 <털 난 물고기 모어>를 본 순간 그러한 외관 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이면들이 있었다. 그 이면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면과 많이 닮아 있기도 했으며, 많이 다르기도 했다.

 

 

털난물고기모어_표지_띠지유_인쇄용.jpg


 

그동안 우매한 인간들이 보내온 시선과 폭력은 그저 일상이었을 뿐,

그것들은 안고 사는 일은 시시하다.

나의 바람은 아름다운 사람으로 아름답고 끼스럽고 깨끗하게 살아나가는 것.

어제는 그랬고 오늘은 이렇고 내일은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한 사람이 써낸 일상의 기록



드래그 아티스트로서 모어의 기록은 화려하고 독창적이었다. 이태원의 자하 클럽에서 뉴욕 전위예술의 메카인 라 마마 극장 무대에 섰다는 것은 아직 보수적인 인식이 많이 남아 있는 한국에서 일궈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멋대로 생각하기에 모어의 모든 삶이 범상치 않은 것 같았다. 화려하고, 아름답고, 카리스마 있고. 내 마음대로 가진 환상은 마치 하나의 뮤지컬을 보는 듯 요란했으나, 책을 편 순간 일상은 그저 일상이었다.


물론 그의 삶이 평온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최근을 그려낸 그의 일상은 그랬다. 친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어느 날은 기분이 나쁘고, 어느 날은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은 누구나 겪을 법 했지만, 쉽게 겪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청춘을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이라고 했던가. 그가 과감 없는 필체로 풀어낸 글은 언뜻 보기에 블랙코미디 같기도 했다. 어딘가 씁쓸한 웃음을 자아냈지만, 글로 보기에 그런 웃음을 자아내었을 뿐 그가 겪었던 일을 실제라고 생각하면 씁쓸한 웃음조차 지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부분이 일상의 기록을 일기처럼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삶이라는 것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모어는 아름답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우리가 이분법적이고, 고정관념적으로 갖고 있는 남성의 아름다움과 달랐다.

 

 

아빠, 난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어요. 발레리노가 아니라.

 


모어의 삶은 어째서인지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있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죽음과 조금 더 가깝지 않았을까. 모어는 자신의 주변에서 죽어나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또한, 삶과 죽음의 중간에 서있는 자신의 이야기도 담담히 꺼내놓는다.


모어가 책 초반 죽음을 이야기할 때는 가슴을 쥐는 듯 마음이 아프지만, 인생은 점점 삶이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모어의 반려 고양이인 모모, 사랑하는 남편과 친구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까지. 죽음이 점점 삶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은 대서사시 같기도 했다.


모든 대서사시가 그렇듯 그전에 있었던 일들은 현재를 위한 발판이다. 불행했던 일도, 행복했던 일도 모두. 모어가 주변에서 주는 따스함과 행복함에 둘러싸이기까지, 모어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살기 잘했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삶과 죽음 사이, 어쩌면 죽음에 가까웠던 과거의 일들은 지금을 위한 발판이 아니었을까.

 

또한, 그랬기에 모어는 모든 일들은 담담히 그리고 과감히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름답고 찬란한 이름 모어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경멸한다고 이야기한다.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경멸과 혐오의 정서는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혐오와 경멸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포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해라는 것이 왜 필요할까.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이해를 받을 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다수의 사람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이해라는 단어를 앞세워 평가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물고기가 털이 없는 이유는 물살을 더 손쉽게 뚫기 위해서이다. 내 곁에 털 달린 물고기가 있다면, 다수와 다르게 생겼다고 경멸하고 혐오할 일이 아니다. 물살을 손쉽게 뚫을 수 없음에도 우리 곁까지 다가와 있음에 따듯한 시선을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거친 물살을 뚫고 꾸준히 상류로 오르려는 털 난 물고기를 조용히 응원하고 싶다. 남들과 다르게 아름답고, 찬란하고, 깨끗한 이름. 모어를 위해서.


 

533

지민아, 이만하면 쓰겄다.

-엄마

 

534

끼순아, 애썼다.

-모모

 

535

You make the world more beautiful.

-남편

 


[김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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