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분’의 논의가 만들어낸 ‘전체’의 질서, ‘전체’ 속에서 변화하는 ‘부분’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5.09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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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인식은 범주적이다. 작은 것들을 묶어 하나의 범위로 여기고, 큰 단위 속에서 각각의 개별자를 구분한다. 심지어 이러한 인식은 끝이 없어서, 한 범주에서는 부분으로 여겨졌던 것이, 또 새로운 전체가 되어 다른 하나의 단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끊임없는 포함관계로 연상하는 우리의 인식은 세상의 이치를 반영하는 것인가?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한 이치가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하이젠베르크에게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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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자서전적인 저서 『부분과 전체』를 보면, 물질의 단위, 개념, 자신으로 대표되는 ‘부분’적인 것들은 이들을 포함하는 단위들과 반드시 함께 논의된다. 그가 이론물리학을 시작한 시점부터 과학적 발견을 이룩하기까지의 과정에서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국가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에서도 항상 조그만 개별 요소와 큰 틀 사이의 관계를 고민한다. 따라서 그의 인생과 이 저서는 부분과 전체의 불가분성 속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자가 모여 만들어지는 세상


 

<부분과 전체>에 기술된 하이젠베르크의 인생 속에서 전체는 필연적으로 부분들이 모여 이루어지며, 부분들은 그것들이 속한 전체에 영향을 받으며 그 속에서 변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과 전체’의 상호관계가 잘 나타난 부분은 크게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는 하이젠베르크 자신의 과학적 탐구이다.


이 책에는 하이젠베르크가 세상의 모든 물질(전체)을 구성하는 원리로서의 입자를 찾기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한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가 평생을 바친 분야가 부분과 전체에 관한 탐구였던 것이다. 책 속의 하이젠베르크와 동료 학자들은 과학적 이론의 발견에만 그치지 않고, 각자가 발견한 양자와 원자 개념을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원리로 주장한다. 즉, 그들이 발견한 파편의 질서가 어떻게 전체 사물에 적용되는 질서로 해석될 수 있을지 탐구했던 것이다.


또한, 하이젠베르크는 세계 2차대전 속에서 하나의 작은 입자가 전체 세상을 바꿔놓는 것을 목격한다. 핵폭탄의 발견을 통해, 당시 원자 이론 속 연구 성과였던 ‘핵분열’이 세상의 정치질서 전체를 변화시킨 것이다. 이를 통해 하이젠베르크는 세상의 미세한 부분인 ‘입자’가 전체에 가져올 수 있는 변화에 관해서도 실감한다. 즉, 하이젠베르크는 부분을 통해 전체 속의 원리를 탐구하고, 부분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경험하며 둘 사이의 밀접성을 실감했던 것이다.

 

 


논의가 모여 만들어지는 이론


 

부분과 전체의 상호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두 번째 부분은 당시 ‘양자역학 이론’의 수립 과정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이 막 태동하고 있던 때부터 양자역학 이론이 세계적으로 빠르게 전개되던 시기에 연구 인생을 보냈고, 그 자신도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다. 이러한 하이젠베르크는 그의 저서에서,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라는 요소를 활용해 양자역학이라는 분야가 어떻게 자리 잡았고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고민과 연구를 통해 풍부해졌는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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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젠베르크에게 보어,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볼프강 등과의 만남은 양자역학의 해결되지 않은 부분(예컨대, 원자 이론 등)을 적극적으로 논의할 기회였다. 그들의 대화는 언뜻 서로 다른 이론을 가진 학자들의 토론 정도로만 여겨질 수 있으나, 각자가 고려하지 못한 부분에 관해 깨달음으로써 더 넓은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촉진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당시 양자역학이라는 전체분야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론을 주장하는 물리학자들이 모여야 했던(일명 ‘솔베이 회의’) 것처럼, 양자역학이라는 하나의 분야는 여러 가지 연구 성과라는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부분들이 상호작용하며 발전해나가고 있었다.


그는 과학과 종교, 혹은 과학과 철학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상호작용을 실감한다. ‘원자 이론과의 첫 만남’ 장에 등장하는 수많은 토론과 그 후 슈뢰딩거와의 대화 부분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원자의 구조를 논하기 위해 인간의 인식에 관한 철학적 개념을 검토하고 고민한다. 그는 하나의 큰 이론을 형성할 때, 그 근원적인 부분부터 꼼꼼히 탐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개인이 모여 만들어지는 국가


 

세 번째는, 하이젠베르크라는 개인(부분)이 국가와 사회(전체)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이다. 하이젠베르크는 2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공동체 속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은, 세계 1차대전 발발 당시 아버지의 참전과 이후 청년운동을 경험하면서 심화되어 그의 일생 동안 계속된다.


그 고민은 한 국가의 구성원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정체성을 신념으로 삼는 것으로 일단락이 된다. 하이젠베르크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미국으로 망명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누군가는 남아서 독일의 물리학을 재건해야 한다.’라며 조국에 있기로 결정한다. 이를 통해, 국가 공동체가 그것의 부분 요소인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이, 하이젠베르크에게는 인생을 바꿀 정도로 지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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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이젠베르크가 정부에 무조건 복종하지는 않았다. 핵폭탄을 개발하려는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는 했으나, 핵폭탄을 실제로 개발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당화’인지 실제인지에 관한 논란이 있으나, 일단 본 글에서는 하이젠베르크의 입장을 믿기로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인류에게 위험할 수 있는 연구를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비록 잘못된 예측이었지만 세계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핵폭탄이 개발되지 않을 거라 여겼다. 따라서 핵폭탄을 개발해서도 안되며 개발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는 수많은 인류 속 하나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중요시한 결과이며, 세계 공동체의 흐름을 고려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세계가 혼란한 상황에서, 독일 국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인류 중 한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인식하고 어떤 ‘전체’를 위해 행동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 하나의 파편일지라도


 

그의 연구와 인생이 말하듯, 세상은 다양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단편적인 면들이 모여 구체적인 모습을 이룬다. 반대로, 큰 단위는 하염없이 작은 요소들에 영향을 주며 이들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부분과 전체를 염두에 두었기에, 하이젠베르크는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부분에 관한 설명인 ‘불확정성 이론’을 아주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었으며, 개인으로서도 국가와 사회의 영향을 직시하며 자신의 역할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총체적인 사고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개인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하이젠베르크라고 해도, 젊었을 시절부터 부분과 전체의 연관성이나 각 부분의 중요성을 인지했던 것은 아니다. 책의 서두에서 한 청년에 의해 토론회에 참여하게 된 상황을 보면, 하이젠베르크는 중심질서로부터 떨어져 나온 부분적 질서들로 인해 혼란해지고 머리가 아프다고 서술하고 있다. 즉, 부분의 중요성보다는 중심으로 직결되는 것들만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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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이젠베르크가 연구를 통해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중심질서를 발견한 이후, 이 회고록을 쓰며 자신의 삶에서 나눴던 수많은 ‘부분적’ 대화들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톺아본 것은 부분들이 모여 중심질서로 이어지는 길을 제시할 수 있으며 중심질서와 부분 질서가 합쳐져 전체를 이룬다는 것을 깨달은 바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이젠베르크는 『부분과 전체』 속에서 하나의 파편조차 전체를 구성하는 데에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이야기를 하며, 독자들이 각자의 삶 속 하나하나의 경험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넓게 바라보는 시각을 기를 수 있도록 독려한다.



<이미지 출처>

동아사이언스 [사이언스N사피엔스]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2022.01.06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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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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