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목숨의 값어치가 큰 사람은 누구인가 - 서클 [영화]

당신이라면 누굴 살리시겠습니까?
글 입력 2022.05.0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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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명의 사람이 고문실에 갇혀 있다.

당신은 마치 파리처럼 죽어 나가는 희생자 중 오직 한 사람만을 살릴 수 있다.

누구를 택할 것인가?

 

- 넷플릭스 영화 소개말

 

 

밀폐된 공간으로 납치된 50명의 사람들. 혼란 속에서 울고 당황스러워하다가 이내 상황에 적응하게 되고 몇 가지 규칙을 발견하게 된다.

 

 

규칙 1. 사람들이 각각 서있는 작은 원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

규칙 2. 2분마다 투표가 진행되고 선택받은 사람은 죽는다.

규칙 3. 2분간 투표를 하지 않아도 랜덤으로 누군가는 죽는다.

규칙 4. 두 명 이상 동표를 받으면 재투표가 이루어진다.

규칙 5. 자기 자신에게는 투표할 수 없으므로 한 명이 남을 때까지 투표는 지속된다.

 

 

처음에는 이곳에 오게 된 기억을 되짚어 보고, 모두 자신의 오른쪽 사람에게 투표도 해보고(자신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예 투표를 하지 않는 등 다양한 이상적인 시도를 해본다. 그러나 누군가는 계속해서 죽어나가고 서로에 대한 의심만 커질 뿐이다.

 

이내 데스 게임을 멈추지 못하고 죽음에 가까워지자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동정심을 유발하고, 자신을 변호하고, 자발적으로 죽거나, 다른 사람이 죽을 이유를 찾아내며 각자 살 길을 궁리해 나가기 시작한다.

 

움직이기도 어려운 작은 원 안에서 몸싸움 하나 없이 오직 말로만 1시간 반의 러닝 타임을 꽉 채운다. 한정된 공간으로 인한 한정된 행동에도 불구하고 몰입감을 유지하면서 결말로 나아간다.

 

 

영화 포스터.png

영화 스틸컷

 

 

 

죽어도 되는 이유, 살아야만 하는 이유



이곳에서는 다수결의 투표로 선택이 진행된다. 민주주의적 심판의 특성을 통해 미국의 사회적 통념이나 계층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드러난다.

 

노년층과 청년층의 갈등 - “어차피 먼저 죽을 사람들이잖아요.” 노인은 살 만큼 살았다는 주장과 노인도 살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충돌한다. 상대적으로 소수자인 노인은 힘을 잃고 선택받아 가장 먼저 죽게 된다.

 

외국인과 본토인의 갈등 - 타국으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생각하며 말도 잘 통하지 않기에 죽여도 된다고 주장한다.

 

범죄자에 대한 심판 - 경찰은 현실에서 본 범죄자를 발견하고 범죄자가 여자친구를 때린 죄를 말한다.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른 악한 인간은 죽어도 된다고 동조한다.

 

인종차별에 관한 갈등 - 흑인 남성은 흑인은 현실에서 항상 천대를 받았다며 흑인은 특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건 다른 일이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등장해 지지를 받지 못 한다. 그러나 이후 죽일 사람이 없을 때 아무 이유 없이 흑인이나 동양인이 죽어나가는 상황으로 보아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심판 - 동성애자는 죄인이기 때문에 레즈비언 여자에게 투표하자는 사람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설득하려던 사람이 되려 죽게 된다.

 

어린이에 대한 심판 - A가 몇 개인지 성적으로 아이에 대해 판단하려 한다. 10살짜리 아이에게 성적이 나쁘면 나쁜 아이라는 이유로 심판대에 올리려는 사람도 등장한다.


죽음의 선택까지 단 2분. 시간이 매우 촉박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자신의 가치관으로 누굴 죽일지 사람들을 설득하기 바쁘다.

 

코 앞에 닥쳐운 죽음, 촉박한 판단의 시간,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작은 공간이라는 제약 속에서 다양한 인간상은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들의 사회 계층 간 편가르기와 갈등의 다양한 양상은 빠른 호흡으로 진행된다.

 

 

 

목숨의 값어치가 가장 큰 사람


 

사람이 적어질수록 최후의 한 명이 누가 될지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누구를 살려야 하는가, 누구의 목숨의 값어치가 더 클까? 현실에서는 함부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임산부, 자녀가 많은 사람, 미래가 푸릇푸릇한 어린아이 등 생존의 가치가 높은 사람을 찾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나 임산부를 살려야 한다고 말하고 이게 정의라고 믿는다.

 

반대로 자신도 살고 싶다며 차라리 다수에게 보호받는 아이와 임산부를 먼저 죽이자는 주장도 등장한다. 갈등을 이어나가다가 임산부와 어린아이, 그리고 임산부를 지키려고 하던 20대 남자가 최후의 3인으로 남게 된다. 이후의 결말은 너무 큰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 게임에서는 1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죽는다. 지금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1명을 제외하면 죽는 건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 1명이 내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에 아무도 쉽게 삶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코앞에 닥친 죽음 앞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해지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나 임산부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생존을 선택할 것인가?


 

[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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