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긴 시간 끝에 되찾은 희망으로 쓰는 편지

글 입력 2022.05.0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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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수님. 몸 건강히 지내고 계시는지요? 그동안 마음을 전할 기회가 마땅치 않아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연락을 드립니다. 수많은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냈던 병의 시대는 이제 차츰 걷히는 듯싶습니다. 거리는 조금씩 활기를 띠고 있고 주저했던 만남이 재개되고 있습니다. 예년보다는 걱정 없이 피는 꽃을 보며 교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립니다. 재난이 막 시작됐던 시기였던 그때,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저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많은 희망을 꿈꾸었습니다. 각계 전문가들이 뉴스에 나와 멸망을 논하던 시기에 감히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너머로 가는 길에 서 있는 지금, 교수님께 전하지 못한 진심이 늦게라도 닿기를 바라며 편지를 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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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학교에 오기 전까지 ‘선생님’에 관한 좋은 추억이 많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거짓말로 아이들을 괴롭게 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공부를 못해도 좋지만 ‘그 수준’에 맞는 삶을 살게 되어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은 오히려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을 뚝 떨어트렸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의 수준에 맞는 삶이라 해도 아름답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기계적으로 순서를 나누는 교실에서 저는 인간이 아닌 부품이 되었고, 좋은 삶을 살 자격이 타인에 의해 판정되기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또래였던 수백 명의 학생이 사고를 당했을 때, 수능 공부 외에 모든 이슈에 무관심하기를 바랐던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슬퍼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학교 측은 외부인에게 학교가 정치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이유로 리본을 매달며 추모하려고 했던 아이들을 가로막았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라는 위로도 불편했던 이유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더는 우리를 위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중첩된 회의감과 실망감은 세상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않게 했습니다. 불의에 눈 감기를 가르치는 어른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과 행동보다도, 정말 그것이 맞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목격하는 것이 절망적이었습니다. 어떤 희망은 누군가의 빛바랜 모습 때문에 사라지기도 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저런 것일까. 겁 없이 무모하던 마음은 생기를 잃고 뜀박질을 멈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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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2년의 세월 끝에 들어간 대학교에서 교수님을 만난 것은 그럼에도 삶에는 언제나 희망이 남아있다는 증거겠지요.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모든 수업이 비대면 형식으로 바뀌어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태였는데도 차분한 얼굴로 학생들을 맞이하는 모니터 속 교수님의 표정에 마음이 놓였던 기억이 납니다. 낯설었지만 따뜻한 목소리에 이내 모든 긴장을 풀었습니다. 교수님의 수업은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집에서 저마다의 팬데믹을 보내고 있는 모든 학생의 손을 잡고 목표 지점까지 함께 가려는 교수님의 열정에 누가 감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여태껏 들어왔던 대면 수업보다도 훨씬 교수님과 가까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교수님은 회의와 실망을 안긴 어른들이 준 상처를 치료해주셨습니다. 가만히 있지 말라고, 차별과 불평등에 저항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한 학기 내내 무엇이 정의로운 사회인지, 정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우치게 하셨습니다. 수업에 사회적 이슈를 적극 끌어들이며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자기만의 서툰 의견을 자유롭게 꺼내놓도록 하셨습니다.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듣기 좋은 말만 선별해야 하는 학생은 요구되지 않았습니다. 뾰족한 시선으로 사회의 허점을 구석구석 찌르고 그 안에 놓인 자신을 성찰하는 ‘인간’만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정치적 과제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스스로 충분히 정의로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정의라는 개념이, 그것을 이루는 평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방대한 학문과 역사를 관통하여 태동한 결과인지 알려주시며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하셨습니다. 어쩌면 교수님을 만난 후 찾아온 변화 중 가장 커다란 것은 ‘부끄러운 마음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요. 대학교를 나와 아는 것이 많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저는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상합니다. 저를 작은 존재로 느끼게 한 것은 그동안의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인데, 왜 고등학교에서 잃어버렸던 희망이 대학교에서 되살아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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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선생님들은 저를 ‘비교적’ 작은 존재로 호명하셨습니다. 쟤와 비교하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니 1등이라는 큰 존재가 되어서 통쾌하게 복수하라고 하셨죠. 하지만 제가 큰 존재가 되는 그 세상으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불행을 좀먹으면서 행복을 쟁취하는 끔찍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이 미래라는 가르침 때문에 나아가고 싶은 곳이 없었고 그래서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교육에 관심이 많아 전공으로 공부하면서도 교사라는 직업을 일찌감치 단념했던 이유는 희망의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본보기로 삼을 만한 선생님을 만난 경험이 극히 적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교수님이 제시하신 세상에서는 차별 없이 모두가 작은 존재였습니다. 작아도 되었습니다. 작은 존재도 배우며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무지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그 세상을 알고 싶게, 또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누군가를 밟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정의로운 사회라고 하셨습니다. 상처를 받고 희망을 잃었던 것은 온전히 상처를 주고 희망을 빼앗는 이들 때문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스스로 옭아매고 있던 누명에서 그제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갈 곳이 선명하게 보였고,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채택하신 방법론인 작문은 자신을 돌아보며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게 했던 훈련이었습니다. 차별적 상황에 놓인 경험을 글로 풀어내게 하셨던 교수님은 불평등과 혐오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공언하며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를 꼬집도록 하셨고, 나아가 저 자신도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차별을 가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하며 또 한 번 반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정리된 생각들의 발표와 토론으로 이루어졌던 수업에서 소외되고 누락된 학생들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비교 불가한 자기의 삶에 비추어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거기서 1등이 되거나 완벽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박식하다 해도 특정한 삶을 살지 못해봤기에 완전히 알 수 없는 지식과 경험이 이 수업의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층위에 있지 않았고 다만 다른 결을 가졌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결을 존중하며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타인을 이해하는 성취에 끝내 도달했습니다.

 

정의롭지 않은 나를 발견하여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셨던 교수님 덕분에 저는 저와 세상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점을 모두 꺼내어 바로잡고 고칠 힘을 주셨습니다. 저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도 옳은 것은 분명히 존재하며, 역사의 지평선은 희망과 비관을 오르내릴 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견고하게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장차 교육가가 될 이들을 가르쳤던 교수님은 학생들이 자기 자신은 물론 이 세상과 이 세상에서 자라날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교수님이 직접 보여주신 희망으로 인해 학생들은 교육의 힘과 가치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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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중간고사 기간을 맞은 학교에서 여전히 강단에 서 계실까요. 이제는 학생들을 직접 만나 가르치시나요. 생동하는 교정을 거닐며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을 학생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더욱 활발히 충돌하고 성찰하며 나아갈 테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은 그렇게 하나둘 늘어나 그 미래를 앞당길 거예요. 차별과 혐오가 부끄러움 없이 터져 나오는 사회에 반발할 거예요. 그들의 세상은, 저의 세상이 그랬던 것처럼 보란 듯이 넓어지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교수님! 희망을 되찾은 저는 이제 미래가 두렵지 않습니다. 교수님처럼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매일의 내일을 기대합니다. 결국에는 옳은 세상이 올 겁니다. 사회가 자꾸 거슬러 올라가 퇴보하려고 해도 꿋꿋이 맞서 끝내 흐르겠습니다. 나아진 세상에서 다시 뵐 그날을 기약하겠습니다. 꼭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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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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