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즐거운 나의 집 [문화 전반]

노마드(nomad)와 홈리스(homeless)
글 입력 2022.05.02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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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아주 어릴 적에는 1년마다 이사를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땐 1년 단위로 이사를 다니는 것이 법으로 정해진 줄 알았더랬다. 영문도 모른 채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집을 옮길 때마다, 들고 다니던 수첩에 연락처를 꾹꾹 눌러 적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집이라는 단어는 당연하면서도 낯설다. 나에게도 나고 자란 곳이 있고, 교육과정에 따라 배웠던 ‘가족’, ‘고향’, ‘그리움’ 등의 의미들이 자연스레 떠오르지만 그것을 선뜻 ‘나의 집’이라고 정의 내릴 수는 없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뿐이리…

 

- 노래 ‘즐거운 나의 집’中  -

 

 

한국에서 ‘즐거운 나의 집’으로 유명한 이 노래는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원작은 미국 극작가인 존 페인이 극본을 쓰고, 헨리 비숍이 작곡한 오페레타 〈밀라노의 아가씨 클라리〉에서 여주인공 클라리가 부르는 아리아이다.

 

대략적으로 알아본 바로는, 가난의 설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시골 소녀 클라리가 정든 가족을 뒤로한 채 무작정 밀라노로 떠나고, 적잖은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어느 날 갑자기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온다는 내용이었다.

 

이렇듯 ‘즐거운 나의 집’은 가정과 고향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노래였다. 이 노래 덕분에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는 ‘집이란 기쁘고도 아늑해야 한다’라는 이상적인 관념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극본을 쓴 존 페인은 가정을 꾸리지 못한 채로 방랑하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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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나는 독립이라는 목표를 꿈꿨고, 첫 자취는 지방에서 상경한 서울 유학생이 학교의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렇게 원룸에서 혼자 산 지도 어느덧 6년이 넘었다. 내내 같은 집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자취방에 처음 발을 붙였을 땐 단순히 잠을 잘 수 있는 곳이기만 하면 되었다. 친구들을 초대할 환경이면 좋겠다는 소망은 항상 있었지만, 어느 해에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역병을 맞이한 이후로는 수업을 듣는 동시에 일과 작업을 하는 곳이 되었다.

 

노랫말처럼 밤은 고요하지 않았고, 창에는 달빛 대신에 앞 건물의 꺼지지 않는 불빛이 흘렀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쉼이나 아늑함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동안 생긴 짐들만 방 한 켠에 먼지와 함께 켜켜이 쌓여갈 뿐, ‘즐거운 나의 벗’은 내 마음의 짐까지 감당해주지는 않았다.

 

졸업을 하고 친구들은 하나둘씩 본가로 돌아갔고, 나는 여전히 서울에 남았다. 월세가 부담이 되어 전셋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6년 만에 집을 새로 알아보려니 강산이 변하고도 남았다. 처음 독립을 꿈꿨을 때와 달리 왠지 모를 미련과 막막함이 공존했다. 막연했던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말이 피부로 직접 와닿는 시기가 온 것이다.

 

집을 알아보면서 나는 매번 나의 형편과 욕망을 재며 정당성을 입증해야 했다. 집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방을 쪼갠 말도 안 되는 매물이 허다했고, 물리적, 심리적 안정감이 절실한 사회초년생의 마음을 이용한 전세 사기는 날이 갈수록 판을 쳤다.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끝이 없는 불신과 부딪혀야 했다. 안전성을 확인하는 데까지만 해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됐고,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대가 없이 주어지는 건 없었다. 집이라는 단어가 결핍이라는 의미로 다가오는 것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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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안정감 사이에서 노마드(nomad)와 홈리스(homeless)의 입장을 반복하며 집의 의미를 무너뜨리고 다시 짓기를 반복한다. 나는 앞으로 어디로 흐르게 될까. 최종적으로 내가 돌아갈 곳은 어디가 될까.


 

 

민정은.jpeg

 

 

[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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