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9년 지기, 하연에게

글 입력 2022.04.2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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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 9년 전에 처음 만난 우리를 말이야. 학창시절을 통틀어 최악의 담임을 만났던 그해, 우리는 같은 교실에 앉아 있었지. 그 담임이란 작자는 툭하면 회초리로 아이들을 때리고, 머리와 이마를 쥐어박곤 했잖아. 회초리를 심하게 맞은 아이는 다음날이면 맞은 부위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오곤 했어. 숙제를 해오지 않거나 수업시간에 1분이라도 늦으면 교실 앞으로 불러 엎드려뻗쳐도 시켰었지? 상당히 굴욕적이었는데 말이야. 입학하고서 처음으로 두려움에 떨었던 것 같아. 중학교는 이렇게 무서운 곳이구나, 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에는 체벌이 그 선생님만의 교육 방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건 뭔지 알아? 그 독불장군 선생님 밑에서 1년을 꼬박 고생했는데도, 나는 그해에 가장 행복한 중학교 시절을 보냈어. 친구들이랑 노는 게 너무 재밌었거든. 왜 그런 거 있잖아. 윗사람이 지나치게 권위적이면 아랫사람들끼리 똘똘 뭉치게 되는 그런 거. 그래서 우리 반이 유독 단합이 잘 되었나 봐. 학기 초부터 담임의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는 모두가 본능으로 깨달았지.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만이 학교생활을 버틸 유일한 탈출구라고. 너에게 온 마음을 의지하게 된 건, 그러니까 반에서 너와 가장 친한 친구로 거듭난 건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어.


복도 쪽 창가 자리, 끝에서 2번째 줄에 짝꿍이 된 우리는 어색한 첫인사를 주고받았지. 어느 순간 우리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있었어. 친해지게 된 계기라면, 네가 내 책상에 별안간 컴퓨터 사인펜으로 낙서를 하면서부터 시작되었지? 처음에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책상 귀퉁이에 조그맣게 낙서하는 것도 아니고, 한 면적을 차지할 만큼 너는 내 책상에 큼지막하게 그림을 그리곤 했으니까.

 

너무도 뜬금없는 그 돌발행동에 화가 나기는커녕 도리어 웃음만 나왔어. 네 그림 실력이 예상보다 출중했기 때문일까? 나는 잠자코 너의 낙서를 지켜보며 더 많은 책상 면적을 내주기 시작했고, 나의 우정을 내어주기 시작했어. 하루 이틀 지나고 나니 그것이 나름대로 네 친밀감의 표현이라는 것도 알아차렸지. 지지 않을세라 서로의 책상에 경쟁적으로 낙서를 휘갈기며 깔깔 웃음을 터뜨리던 그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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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 Kim Choong Weon '

 


낙서로 싹튼 우정은 점점 단계를 발전해 나갔어. 아침마다 빵을 사와 나눠 먹는 건 어느새 당연한 일상이 되어있었지. 기억나니? 우리, 수업시간에도 꽤 자주 빵을 나눠 먹었잖아. 실은 몰래 빵 먹기가 너무 좋은 자리이기도 했어. 그때 우리는 교실 거의 맨 뒤쪽에 앉아 있었으니까 말이야. 물론 독불장군 담임이 담당하는 한문 시간에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빵 봉지조차 꺼내지 않았지. 몰래 먹는 걸 들켰다가는 회초리에서 끝나지 않고 교실 앞으로 불려 나가 어떤 수치심과 모욕을 당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그래서 늘 다른 수업시간을 골라 맛있는 크림빵을 나눠 먹고는 했잖아. 그렇지만 아마 몇몇 선생님들은 알고 계셨을 거야. 교실 앞에 떡하니 서 있노라면, 누구라도 그 모든 진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니까. 제아무리 입을 가리고 우물우물 조심스럽게 빵을 먹는다고 해도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었겠지. 우물 안 개구리였던 우리를 애써 모르는 척해주신 걸 거야.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행동이었는데, 선생님들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해. 어쨌거나 매일같이 등굣길에 사 온 빵을 함께 나눠 먹은 그 한 달간의 시간은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어.


한 달이 지나고, 자리가 바뀌어도 우리는 지겹도록 붙어 다녔지. 그해뿐만 아니라 중학교가 끝날 무렵까지 말이야. 시험이 끝날 때마다 함께 놀러 가는 것은 어느덧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있었어. 뭐, 굳이 시험 기간이 아니더라도 허구한 날이면 아지트인 우리 집에서 잔뜩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말이야. 틈만 나면 동네 슈퍼에서 먹을 것을 한아름 사와 저녁까지 늘어지게 영화를 보곤 했는데. 그 행복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어. 그렇지만 중학교 시절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마침내 고등학교에 진학할 시기가 오고야 말았지.


나는 다른 지역에 있는 사립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어. 기숙사가 있었고, 대학 진학 실적이 좋았으니까. 물론 내신 성적이 0.6점 부족해 1차부터 톡 떨어져 버렸지만 말이야. 내 딴에는 나름 고심해서 타지까지 나가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건데, 그대로 떨어져 버리니까 어느 고등학교에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더라. 그냥 경쟁률이 높은 공립고등학교를 쓸까, 계속 고민했어. 지역에서 그나마 내신을 쉽게 딸 수 있는 곳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으니 말이야.

 

그렇지만 네가 지역 내에서 가장 빡빡하기로 소문난 유명 사립고등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 나는 이미 그곳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는지 몰라. 애초부터 사립고등학교를 마음 한구석에 두고 있었으니까. 아이들 대부분은 공립고등학교를 선호했어. 경쟁률이 높은 그런 학교를 1지망으로 써낸 친구들은 대개 2~3지망, 혹은 5지망까지도 밀려 배정되는 경우가 많았지. 물론 우리야 1지망에 쓴 사립고등학교에 나란히 붙어 또다시 같은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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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고등학교 기간 내내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늘 붙어 다녔어. 매일같이 서로의 반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같은 반 친구들조차 우리가 친한 사이라는 걸 금세 알아차렸지. 이따금 급식을 같이 먹기도 하고, 시험이 끝나면 놀러 가고, 수행평가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으니 말이야. 내가 미술 수행평가로 끙끙 앓고 있을 때 네가 선뜻 도와주었던 일도 기억해. 내 그림 실력이 워낙 꽝이잖니. 일주일 골머리를 앓다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네게 찾아간 것 같은데, 너는 금세 그림의 윤곽을 잡고 방향을 제시해주었어. 수행평가 점수 하나에도 안절부절못하던 나로서는 너의 도움이 하늘에서 내린 구원과도 같았지. 그때 엄청 고마웠는데, 내가 표현에 서툴러서 제대로 된 인사를 잘 못 건넸던 것 같네. 정말 고마워.


혹시 기억하니? 우리 학교, 지역에서 대대로 소문난 사립고등학교라 그런지 규정이 엄했잖아. 아침에 교문을 통과할 때면 꼭 머리를 묶어야 하고, 치마는 무릎 아래까지 내려와야 하고, 신발은 흰 운동화만 허용되고, 명찰은 정해진 곳에 꼭 달고 있어야 하고···. 한 가지라도 교칙을 어기면 학생부에서 바로 이름을 적어가곤 했는데. 아침마다 그렇게 온몸을 스캔 당하고 있노라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 그런데 그 옛날 독불장군 담임 때처럼, 우리는 매일 학교 욕을 하면서 더욱 돈독해져 갔던 것 같아.


무엇보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같은 독서실에 다니기 시작했잖아. 동네 독서실과 길 건너 떡볶이집은 곧 우리의 작은 아지트가 되었어. 식욕은 중학교 때보다 더 왕성해졌지. 틈만 나면 밥 시간을 핑계로 독서실에서 나와 떡볶이집을 향하던 날들을 기억해. 맛있는 떡볶이를 배 터지게 먹은 날이면 늘 식곤증이 오고는 해서 자리에 돌아와 쿨쿨 잠든 날도 허다했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와. 식곤증에서 먼저 일어난 사람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다른 사람을 깨워주기도 하고 말이야. 독서실이 우리 집에서 가까웠던 터라 아예 집으로 방향을 돌려 침대맡에 머리를 묻고서는 맘 편히 잠들기도 했지. 그러다 엄마가 퇴근하는 소리가 들리면 후다닥 일어나 다시 독서실로 향하고···. 그런 무수한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대학에 진학해야 할 시기가 오더라. 다행히 우리 둘 다 원하는 과에 맞춰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에 합격했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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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티어스(TTEarth)

 

 

대학 합격 기념으로 우리는 일본 여행을 떠났어. 아직 공식적으로 졸업은 하지 않은 때라 미성년자 둘이 타지여행을 떠나는 데 양쪽 부모님도 걱정이 많으셨지. 그래도 우리는 부모님을 잘 설득해냈어. 양 가족은 우리가 친한 사이라는 걸 이미 중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고, 일전에 서로 안면을 트기도 했으니 말이야. 겨울 즈음에 떠난 일본 여행은 4박 5일 일정이었던가? 매일 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 음식을 왕창 털어오곤 했는데. 야식을 먹고 새벽 늦게 잠들고선 다음 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는 일이 반복되었지. 우리가 아침잠이 좀 많잖니. 그래도 행복했어. 오후 느직이 놀이공원을 방문한 날,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한 날, 일본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물씬 느끼며 열심히 돌아다닌 날들을 기억해.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야. 그 뒤로 국내 여행도 다녀오고 했지만, 우리는 늘 해외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 그러다 결국 코로나가 터져 버렸고, 우리의 해외여행 계획은 무기한 연기되었어.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마음뿐이야. 여하튼 글에 미처 적지 못한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나는 여전히 중학교 때 그 독불장군 담임 반에 걸린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 담임 때문에 여러모로 고생하긴 했어도, 그때 피어난 우정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니까.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해. 누군가와 꾸준히 연을 이어간다는 것,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잖아. 특히 대학교에 들어오고서부터는 그러한 사실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기도 해.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우리가 9년 동안 크게 싸운 적이 없다는 사실이야. 치고받고 싸우면서 더욱 돈독해지고 성장하는 법이라지만, 내가 원체 싸움질로부터 회피하는 경향이 크고 무엇보다 우리는 그럭저럭 성격 합이 잘 맞는 편이니까. 이따금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한 적은 분명 있을 테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오랜 기간을 무사히 넘겨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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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smopolitan

 

 

너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 것에 진심으로 감사해. 왜냐면 너는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빛나는 사람이었으니까. 이국적인 외모를 띠고 있어서 처음 만났던 해에는 혹시 혼혈이 아니냐고 내가 농반진반 묻기도 했잖아. 그러면 너는 사촌 중에 사실 외국인이 있다느니 뭐니 능청스레 농담을 건네와서 내가 정말로 믿기도 했고 말이야.


그리고 네가 원체 감각이 좋잖니. 그림도 잘 그리고, 말도 청산유수처럼 잘하고, 목소리도 좋고, 유머 감각도 있고. 나는 지금도 네가 하는 말을 듣고는 자지러지듯이 웃고는 해. 옆에서 가만히 네 얘기를 듣고 있으면 얼마나 웃긴지 몰라. 그런 너의 유머 감각을 종종 부러워할 때가 많아. 그래서 너랑 있을 때면 시간이 늘 쏜살같이 흘러가 버려. 요 몇 주 전에 너희 집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학창시절 때와 다름없이 밤에 야식을 먹고는 영화 를 보았지. 그 찰나의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흐르던지, 다음 날 집에 돌아갈 때면 매번 아쉬워질 지경이라니까.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대학에 진학한 지금에 와서도 이런 생각을 자주 해. 그 옛날 독불장군 선생님 반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너와 친구가 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 물론 우리는 각자의 반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다른 친구들과 열심히 어울렸겠지. 그렇지만 지금의 우리처럼 그 친구들과도 끈끈한 우정으로 이어졌을까?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친한 사이로 거듭났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속에 오소소 소름이 끼치고는 해. 왜냐면 너와는 오랜 시간 동안 정말로 무수한 추억을 함께 쌓아왔으니까. 그 추억들은 평생 가지고 가는 거잖아. 절대로 그냥 흘려보낼 것들이 아니거든. 예전에는 이런 생각의 편린들을 쪽지로, 편지로 써서 자주 건네고는 했는데, 새삼 네게 손편지를 쓴지도 굉장히 오래됐네. 매번 써야지, 써야지 다짐만 하고서는 이런저런 핑계로 계속 미루게 되어버려. 게으른 내 성격 탓이겠지. 그래서 오늘 이렇게 활자로라도 내 마음을 전해. 실물로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여전히 서툴러서 말이야.

 

*

 

그럼에도 너를 정말 많이 아끼고, 믿고, 의지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말이야. 고마워, 라는 말만으론 어째 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는 것 같네. 너를 보면서 늘 무언가를 배워. 열심히 제 갈 길을 찾아가고 있는 너를 볼 때면 무언의 존경심이 들곤 해. 친구로서 뿌듯하고 대견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말이야. 중학생 꼬꼬마 시절에 만나 벌써 이 만큼이나 컸다니. 시간이 참 징글징글하게도 빨리 가는 것 같아.


너야 워낙에 낙천적인 사람이지만 분명 네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런 어려운 시기가 찾아오겠지? 그래도 네가 지금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 물론 큰 걱정은 되지 않아. 너는 어디서나 타고난 감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상황을 헤쳐나가곤 하니까. 오랜 시간 너를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네가 정말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가 알았으면 해. 물론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말이야. 이 편지로 내 진심이 조금이라도 전해졌기를 바랄게. 앞으로 9년, 18년, 27년···. 지긋지긋하게 보고 살자. 우리의 미래가 궁금해졌거든. 조만간 집들이 또 갈게. 9년간 지겹도록 먹었던 우리의 소울푸드, 떡볶이를 사 들고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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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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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황킹
    • 잘 읽었습니다^^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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