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강에서 판타지를 건져 올리다 (2) [여행]

글 입력 2022.04.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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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한강에서 판타지를 건져 올리다]에 이은 ‘한강 시리즈’ 두 번째다. 글을 쓰고 읽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재미와 정보. 지난 번 포스팅한 글이 나만의 감성과 시각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을 끌어내는 ‘재미’를 추구한 글이라면 이번에는 철저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익숙해 한강은 물이나 공기처럼 ‘그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쯤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강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이번에 취재하면서 알게 됐다.

 

지금은 한강 나들이를 자제하고 있지만 한강을 좋아하는 나는 강에 대해 더 알고 싶고 자세히 공부해보고 싶었다. 한강에 섬이 이렇게 많은지, 또 예전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섬이 있다는 것도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한강에는 현재 8개의 섬이 있고 있었는데 없어진 섬 3개가 있다. 이 섬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다. 그저 한강에 솟은 모래더미에 불과하지만 도도한 물줄기를 따라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근대화 과정에서 무분별한 개발에 맞닥뜨려 아예 지도에서 없어지기도 했고 섬이 아니라 돌산이었는데 섬이 되기도 하고 아예 처음부터 인공으로 만든 섬도 있다. 한강의 섬들에 대해 알아본다.

 

 

 

한강에 섬이 여덟 개나!


 

상류부터 보면 우선 당정섬. 경기도 하남시 팔당대교 아래 위치하고 있다. 1970년대 마을 주민들이 퇴거당하고 1989년부터 한강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당정섬 일대 골재 채취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적지로 유물이 있을 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들과 환경 파괴 등을 이유로 섬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이미 당정섬의 절반이나 깎여 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퇴적작용으로 인해 모래톱이 형성되면서 차츰 당정섬의 옛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망친 섬을 자연이 복구하는 모양새가 됐다.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당정섬에는 대신 고니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2010년 이후로는 한강의 최대 철새 도래지가 됐다. 2013년부터는 하남시에서 고니 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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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섬의 고니

 

 

세빛섬은 반포대교 남단 물 위에 떠 있는 꽃을 형상화해 조성된 인공섬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초구 반포동에 속해 있다. 한강을 아름답게 밝혀줄 세 개의 빛나는 섬이라는 뜻이다. 2006년 서울시에서 추진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계획되어 수익형 민자사업으로 바뀌었다. 이후 특혜 시비, 운영방식과 경제적 타당성 문제 등으로 우여곡절 끝에 2014년 원래 이름이던 ‘세빛둥둥섬’에서 현재의 세빛섬으로 바꿔 시설을 전면 개방했다. 미디어 아트갤러리와 국제회의, 리셉션, 제작발표회, 마케팅 이벤트 등 다양한 행사를 할 수 있는 컨벤션홀과 레스토랑 등의 부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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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빛섬 컨벤션센터


 

서래섬도 반포한강공원에 만들어진 인공섬이다. 하지만 조선시대까지 이 자리에 반포섬이라는 섬이 있었다. 한강에 제방을 쌓기 전, 이 일대는 서래마을 뒤 청룡산에서 한강 모래사장으로 작은 개울들이 서리서리 굽이쳐 흐른다고 ‘서릿개(蟠浦)’라고 불렀으나 음이 바뀌어 지금의 반포(盤浦)가 됐다. 1980년대에 올림픽대로를 건설하고 한강개발을 하면서 3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고 물길을 따라 수양버들이 드리워 있고 철새도래지, 화훼단지, 수상스키장이 조성된 휴식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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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섬 산책길


 

노들섬은 동작구와 용산구 사이에 있다. 섬 사이로 한강대교(제1한강교)가 지나간다. 원래는 용산 쪽에 붙어있는 넓은 백사장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이촌동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철제 인도교를 만들면서 모래언덕에 석축을 쌓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여름에는 피서지와 낚시터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이용됐으나 1960년대 후반 강변북로 건설로 모래밭이 사라지고 한강에 완전히 둘러싸이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자연스럽게 섬이 됐다. 원래 이름은 중지도(中之島)였으나 1955년 일본식 지명 개선사업에 따라 노들섬으로 바뀌었다. 예부터 용산 맞은편을 노들 또는 노돌이라고 부른 데서 따왔다. ‘백로(鷺)가 노닐던 징검돌(梁)’이라는 뜻으로 태종 14년 노들에 나루를 만들어 노들나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지금의 노량진(鷺梁津)이다. 용산의 팔경 중 하나인 노들강변 봄버들은 노랫말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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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에서 본 여의도


 

여의도는 현재 한강의 섬 중에서 가장 크고 유명하다. 섬이지만 섬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지 오래다. 남쪽 영등포와 섬 사이는 거의 개울 수준이라서 ‘샛강’이라고도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에 속했고 정부 수립 이전에는 생활권이 마포구에 더 가까워 한강 이북으로 여겼다. 물에 자주 잠기는 탓에 ‘너나 가져라’라는 뜻을 가진 ‘너의 섬(汝矣島)’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명하지만 정설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국회의사당, 금융감독원, 국영방송사(KBS) 등 핵심 시설이 모여 있어 한국의 정치, 경제, 방송계를 ‘여의도’로 상징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여의도공원 자리가 1970년대까지 비행장과 활주로가 있던 자리라는 얘길 들으니 상상이 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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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금융의 상징 여의도


 

밤섬은 여의도와 한강공원 망원지구 사이에 있는 하중도다. 밤섬(栗島)이라는 이름은 섬의 모양이 밤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원래는 서울과 가깝고 땅도 넓어서 사람이 많이 살았었다. 조선시대에는 뽕나무를 많이 심어 ‘서잠실’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한강의 흐름에 방해된다고 1968년 밤섬을 폭파해 기반암 대부분이 파괴됐다. 이 때 섬에 살던 주민을 모두 이주시키는데 이 섬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희귀 성씨인 서민층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주류사회에서 멀어진 씨족 구성원들로 주로 근처 마포구 창전동으로 이주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며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고 서강대교가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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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교 북단에서 본 밤섬


 

양화대교(제2한강교)가 지나는 영등포구 양화동의 선유도는 본래 섬이 아니라 선유봉이라는 작은 봉우리였다. 신선이 놀았다고 해서 선유(仙遊)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만큼 풍경이 아름답다는 의미다. 조선시대에소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명소 중 하나다. 일제 강점기 때 둑을 쌓고 길을 포장하기 위해 채석장을 만들었는데 산이 깎여나가 섬이 됐다. 해방후 1965년 섬을 관통하는 양화대교가 건설된 데 이어 1978년 선유정수장이 생기면서 아름다운 경관도 훼손되고 말았다. 정수장은 2000년 폐쇄되고 2002년 시민공원으로 꾸며졌 시립 선유도공원으로 새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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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둘레길


 

한강 하류의 제일 마지막 섬이 백마도다.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에 위치하고 있다. 섬 남단에 김포대교가 지나가는 크지 않은 섬인데 신곡보로 육지와 연결돼 있다.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부족한, 작은 구릉이 있는데 이름은 ‘백마산’이다. 작고 보잘것없는 섬이지만 1970년 남북 긴장이 고조되면서 군사지역으로 지정되어 50년이 넘는 지금까지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때문에 근처에 사는 사람들도 섬이 있다는 건 알아도 백마도라는 이름이 있는지, 뭘 하는 섬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강에서 사라진 섬들


 

이제부터는 한강에서 사라진 섬이다. 잠실섬은 현재의 한강 본류에 해당하는 신천강과 원래 본류(현재 석촌호수)에 해당하는 송파강으로 둘러싸인 섬이었다. 특히 신천강은 건천에 가까운 물길이었으나 1925년에 일어난 을축년 대홍수로 상시 물이 흐르는 강이 돼버렸다. 결과적으로 을축년 대홍수는 한강의 물길을 바꾼 엄청난 ‘사건’이 됐다. 원래 잠실은 행정이나 생활권 모두 한강 이북이었다. 강북에 붙어 있던 잠실이 대홍수 때 강남으로 넘어갔다. 지금의 석촌호수로 돌던 물줄기가 쭉 펴지면서 여의도보다 넓은 섬이던 잠실이 강남 육지와 연결됐다. 잠실섬 옆에 있던 부리도는 1971년 시작된 잠실공유수면 매립공사로 형태는 물론 이름마저 사라졌다. 그 때 토지 보상을 받고 떠난 잠실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 신천이다.


중랑천과 만나는 성수대교와 동호대교 사이에서 한강은 폭이 넓어진다. 그곳에는 원래 저자도라는 섬이 있었다. 강남구 압구정동과 성동구 옥수동 중랑천 하구 사이에 있었던 삼각주 형태의 섬이다. 갈대와 억새가 무성해 조선시대 왕족의 여름 정자가 있었다. 비가 오면 물에 잠기는 섬이라서 기우제를 지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닥나무가 많이 자라 섬의 이름에 닥나무 저(楮)가 붙었다. 조선시대부터 1960년대까지는 사람이 살았었다. 압구정동에 아파트를 지으면서 모래를 모두 퍼가는 바람에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가끔 한강의 수위가 낮아지는 봄철에는 모래톱이 살짝 보이면서 자연의 위대한 회복력을 드러낸다.


상암동 근처에 난지도가 있었다. 원래는 한성부 성저십리가 아닌 고양군 하도면 덕은리(지금의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의 일부였으나 1949년 서울로 편입됐다. 신혼여행지로 이름을 날릴 만큼 아름다운 풍경의 섬인데. 난(蘭)이 많이 자란다고 해서 이름도 난지도다. 1978년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돼 15년 동안 산업폐기물. 건설폐자재. 생활쓰레기. 등이 쌓여 90미터 높이의 언덕 두 개로 바뀌었는데 이후 매립지를 폐쇄하고 생태공원으로 조성됐다. 현재는 평화의 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 등 5가지 테마공원으로 조성돼 있어 나름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유명한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그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초대박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 덕분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고 공감하게 됐으며 쓰게 되었다. 이 말은 또 미술, 음악 같은 예술분야를 넘어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적용되면서 설득력을 얻게 됐다.

 

알게 되면 길을 걷다가, 책을 보다가, 여행을 하다가 그리고 뉴스를 보다가 스쳐지나가는 풍경과 건물과 사람이 달라 보인다. 모르던 때는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겼던 것들이 의미를 지니게 되고 마음 속에서 되살아난다. 또 공감의 깊이가 깊어지고 주변을 더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아는 게 힘이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하는 데 저절로 동의하게 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진화사회학자 최재천은 그의 책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에서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단언한다. ‘모르면 함부로 대한다. 알면 그렇게 할 수 없다. 모르기에 함부로 취하고 모르기에 함부로 버린다’고 말한다.

 

이번 주면 중간고사도 끝난다. 나는 한강으로 달려갈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한강을 더 많이 보기 위해 알아야 하고 사랑하기 위해 더 많이, 더 깊이 알아야 한다. 물이나 공기처럼 내 주위에 한강이 그저 그렇게 무심하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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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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