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신을 죽여라 - 연극 'Is God Is’

글 입력 2022.04.24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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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동부 원룸 아파트. 화상흉터를 가진 쌍둥이 러신과 아나이아는 죽은 줄만 알았던 엄마의 편지를 받는다. 쌍둥이가 찾아간 곳에서 엄마는 꺼져가는 숨을 붙들며 자신을 이렇게 만든 남자를 잔인하게 죽여달라는 부탁을 한다. 쌍둥이는 당황하지만 이내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두 사람은 남자를 찾아가는 길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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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서 숨을 헐떡이는 어머니. 어머니가 자신이 낳은 쌍둥이 아이들, 러신과 아나이아에게 신의 이름으로 명한다. “아버지를 죽여라.”

 

어머니의 온몸에는 화상 흉터가 있다. 마치 악어가죽을 뒤집어쓴 것만 같다. 아버지를 죽이라는 끔찍한 살인 청부를 받은 두 쌍둥이의 몸에도 같은 화마가 휩쓸고 간 자국이 선연히 남아 있다. 쌍둥이와 어머니의 몸에 불을 붙인 남자,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 그를 죽이기 위해 러신과 아나이아는 긴 여정을 떠난다.

 

극단 백수광부, 장일수 연출의 연극 [Is God Is]의 줄거리다.

 

언뜻 보았을 때 연극 [Is God Is]는 존속살인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현대 비극으로 보인다. 극 중 배경은 2010년대 미국이지만, 극 속 주인공에게 결함을 부여하여 운명론적 관점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을 마주하는 이야기는 고대의 그리스 비극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 비극에서는 감정의 정화, 즉 카타르시스를 유도하는 것을 중요히 여겼던 것에 반해, [Is God Is]는 미국 흑인 사회를 표방하는 다채로운 캐릭터를 비극적 사건에 활용하여 동시대 서양의 사회문화적 현안을 꿰뚫는다. 즉, 이 연극은 정통 비극보다는 비극의 언어를 빌려 치밀하게 쓰인 현대 정치극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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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주인공 러신과 아나이아는 화상 흉터를 입은 ‘흑인 여성’이다. 미국 사회에서 이들의 정체성이 갖는 함의는 단순하지 않다. 게다가 그들은 성장기에 충분한 사랑이나 넉넉한 양육 환경을 누리지 못했던 인물이기에, 추측건대 분명 녹록지 않은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러신과 아나이아가 필연적으로 겪어야 했던 고통의 근원은 아버지의 범죄이지만, 연극 밖의 시선으로 보자면 그들의 결함은 개인의 의지를 짓누르는 백인 주류 사회가 낳은 인권유린을 표방하기도 한다. 이는 흑인 여성 작가로서 [Is God Is]를 집필한 작가 앨리샤 해리스의 정체성과도 긴밀하게 관련된 상징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의 몸(흑인 여성)이 무대 어디에 적합할 것인가에 대해 매우 좁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진정으로 절망감을 느꼈고, 내가 직접 극을 쓰기로 결심했다.


- 앨리샤 해리스


 

나는 관객으로서 미국의 연극 무대에 [Is God Is]가 상연된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체제의 전복을 꿈꾸는 흑인 자매의 투쟁기는 그 자체로도 완벽히 정치적인 연극이지만,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텍스트의 말맛이 살아있는 훌륭한 희곡이다. 그간 성매매 여성, 노동자, 부랑자 등의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연극 속 흑인의 전형성을 과감히 해체하고, 성격과 서사가 입체적인 두 명의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인상적인 특징이다.

 

이외에도 쌍둥이 자매의 여정에 함께하는 여러 인물 또한 ‘강한 흑인 남성’, 내지는 ‘가난한 흑인 여성’의 이미지를 탈피한 개성 넘치는 캐릭터이자, 그 자체로 설득력 있는 서사를 지닌 개인들로 묘사된다. 이토록 다채로운 인물들이 ‘복수’와 ‘살해’로 점철된 서사에 활력을 더하니 극을 지켜보는 관객으로서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한 마디로 탁월한 희곡이다.

 

한편으로는 미국이 보편적 인권의 토양을 열심히 다져온 국가이기에, 나는 이 극도 꽤 오래전에 쓰였던 연극이겠거니 생각했다. ‘인종’과 ‘젠더’는 미국 연극계에서도 오래도록 언급되었던 이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흑인 여성을 다루는 현대극의 역사도 그간 차곡히 쌓였으리라 예측했으나, [Is God Is]는 초연된 지 5년이 채 되지 않는 신작이었다.

 

자못 놀라 흑인 연극의 역사를 찾아보니, 흑인 연극, 그중에서도 흑인 여성에 관한 연극은 2010대부터 점차 조명을 받기 시작했단다. 인종과 젠더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품는 무대는 주류 연극계의 관심사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화의 포용력을 키우고자 부단히 노력한 이들의 땀이 이제야 비로소 결실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껏 까마득히 걸어왔던 길이라 여겼던 것이, 앞으로도 갈 곳이 먼 고행길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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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역사는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때로는 사회적 범죄로 재생산되었다. 그러니 [Is God Is]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시공간적 배경을 막론하고, 피의 복수로 권력의 전복을 꿈꾸는 모든 소수자의 목소리로도 해석된다.

 

이 극에서 쌍둥이 자매는 돌팔매를 휘두르며 살인을 저지른다. 양말에 돌을 넣어 급조한 돌팔매는 어찌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하찮은 무기로 보인다. 이는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쓰인 돌팔매처럼 보이기도 한다.

 

‘흑인’과 ‘여성’의 정체성을 지닌, 의심할 여지 없는 소수자들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인종차별이라는 막대한 체제에 당돌하게 저항하는 것. 이는 수천 년 전에 쓰인 구약 성경에도 나타나는 작은 이들의 투쟁이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그 과정에서 흘리는 피가 정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거대 권력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고자 벌인 일이, 나와 같은 소수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패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극에서도 복수의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두 주인공이 혼란을 겪으며 그들을 수틀리게 만드는 이들에 폭력을 행사한다. ‘가지지 못한 것’, ‘가질 수 없는 것’, ‘나를 혐오하는 사람’, ‘나를 배척하는 시선’을 향해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분노를 표출하고, 이는 참혹한 살인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그들을 화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아버지 또한, 소수자의 분노에 점철된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흑인으로서 받은 차별은 그에게 사랑의 개념을 지워버렸을 테고, 쌍둥이 자매의 어머니 또한 그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기에, 아버지는 한없이 뒤틀린 채로 불을 질렀다. 그의 행동을 옹호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폭력과 복수는 바로 이렇게 악순환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Is God Is]에서 ‘God’은 쌍둥이 자매의 어머니로 묘사된다. 아버지를 죽이라는 명령은 두 주인공에게 신탁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 메시지 하나를 붙들고 모든 여정을 끝낸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그들의 저지른 살육의 끝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어쩌면 그들이 진정으로 죽여야 할 존재는 신이 아니었을까.

 

죽음을 종용하는 신을 기꺼이 죽일 용기, 그 용기가 이 세상을 바꾸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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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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