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추억을 잠시 맡아드립니다. [문학]

글 입력 2022.04.24 14:5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오늘은 뭘 쓰지?


  

그런 사람이 있다. 별거 아닌 일인데도 그 사람이 관련되면 꼭 끝이 웃긴다거나 생각지도 못한 행동으로 해결하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 그동안의 일상을 얘기하면 마치 이야기보따리가 열린 것처럼 재밌는 추억이 마구마구 쏟아져 정말 즐겁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또 정반대의 사람이 있다. 추억이 있냐 물어도 딱히 기억나지 않고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맨송맨송하게 그저 흘러가다 누가 말해줘야 '아, 내가 그날 그런 걸 했구나.'하다가 불쾌한 일만 또렷이 기억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상이 재밌든 재미가 없든 시간은 차곡차곡 흘러가고 무의미한 시간이 즐거운 시간보다 늘어났을 때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designer-desk-architectural-tools-notebook-working-place-concept.jpg

 

 

지나간 시간이 모두 즐거운 날들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어릴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밀린 일기장을 붙잡고 하루하루가 똑같았는데 다른 걸 쓰려고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말이다.

 

어른들은 어린 시절 모두가 추억이라고 하는데 어린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재밌는 일이 하나도 없는데 뭐가 추억이냔 말이냐! 어릴 때는 '추억'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리움이 적다. 딱히 쌓인 추억도 없고 어린이에겐 추억이라고 하기보단 기억에 가까우니 말이다.

 

그런 어린이들에게 누군가 다가와 기억을 돈으로 바꿔주겠다고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린 시절의 나라면 냉큼 바꿨을 것이다. 그리고 과자를 사 먹으러 갔을 것이지. 이것은 마을의 비밀 전당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추억이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거라고 생각해요.

어린애들은 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 하지 않고 '돈만 받을 수 있으면 됐어'하고

간단히 팔아넘길지는 모르겠지만요."

 

- 반짝반짝 추억 전당포 中

 

 

 

ㅊㅜㅇㅓㄱ 전당포


  

마을 바닷가 절벽 아래 돌계단을 내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더 이상 모래는 보이지 않고 자갈밭이 나온다. 자갈밭을 지나가면 빨간색 지붕에 크림색 돌벽을 한 카시스 무스 같은 집이 'ㅊㅜㅇㅓㄱ 전당포'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어른들은 들어오지 않는 오직 19세 이하만 출입이 가능한 전당포가 말이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하루토'는 형인 '야마토'를 따라 처음으로 추억 전당포에 방문한다. 전당포의 주인인 마법사는 책 속의 모습과 달랐다. 로즈핑크 빛 망토에 반다나로 반짝이는 은발을 묶고 있으며 귀 옆에 늘어뜨려진 세로로 말려진 머리칼을 한 마법사는 전혀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다람쥐가 주는 과자를 받으며 하루토는 마법사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억이라며 추억과 기억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다. 새로운 게임을 사고 싶었던 하루토는 그날 이후 찾아와 엄마에 관한 추억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한다.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하루토는 엄마와 있었던 좋은 추억도 나쁜 추억도 차별 없이 마법사에게 내어준다. 아직 어리니까. 추억보다는 당장 얻을 수 있는 물질적인 무언가가 더 가지고 싶었으니까.

 

돈이 적다며 불평하는 하루토를 뒤로 하고 누군가 마법사를 인터뷰하겠다며 찾아온다. 마을 아이들 모두에게 연락을 돌려 마법사에 대한 질문을 모아온 '리카'는 당차게 전당포를 방문해 마법사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인터뷰를 허락해준 건지. 이 세상에 다른 마법사도 존재하는지. 마법사는 언제부터 존재해 왔는지. 어째서 아이들만 올 수 있는지. 등 여러 가지를 물었지만, 마법사는 모든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준다. 다소 아리송한 대답에도 리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 나간다.

 

어째서 추억을 돈으로 바꿔주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마법사는 말한다. 파는 것이 아니라 맡아주는 것이라고. 다시 추억을 찾으러 올 때까지 소중히 간직하다 책장에서 흘러내리면 불가사리로 바꿔 바다에 잠재운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리카는 더 이상 질문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무언가 이해할 수 없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리카는 전당포를 나와 기사를 썼지만, 선생님은 믿어주지 않았다. 중학생이 쓴 꽤 잘 써진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다. 리카의 글을 믿어 주는 것은 오직 동급생인 유키나리 뿐이었다.

 

그 이후 리카는 자주 전당포에 방문한다. 추억을 맡기기보다 마법사와 이야기하기 위해 갔다.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었던 유키나리와 교제를 시작하고 고등학교에 진학 해 전당포에서 새로운 친구인 메이를 사귀고 유키나리와 메이 문제로 싸우고 헤어지는 등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어른에 점점 더 되어갔지만, 리카는 추억을 맡기지 않았다.

 

오히려 마법사를 걱정했다. 대학에 들어가 어른이 되는 스무살까지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 다시 마법사를 방문한 리카는 마법사를 걱정하는 나머지 어른이 되어서도 전당포를, 마법사를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마법사와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을까?

 

 

 

라떼는 말이야


 

우연히 중학생 때 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정말 좋아했던 책이다. 주인공이었던 하루카보다는 나이가 많았지만 다른 주인공인 리카들보다는 적은 나이. 이 책의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책을 통해 추억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 당시 굉장히 감명 깊게 읽었던 나머지 대학생이 되어서도 이름이 생생하게 한 권 사보려고 찾아보자 이미 절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고 책으로 어렵사리 구하긴 했지만, 전당포에도 맡긴 적 없는 나의 추억이 모래처럼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슬프기도 했다. 어른이 되자 어릴 때 추억들도 희미해져 간다. 아주 극적이지 않은 추억은 그저 기억되어 희미해져 사라져 버린다. 어른이 되기전 청소년기까지만 해도 나와 추억을 함께 회상해주고 쌓아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지만 어른이 되자 하나둘 멀어졌다.

 

그래서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초기에는 비꼬는 의미로 쓰였지만, 요즘에는 대중적으로 자신의 추억 이야기를 할 때 많이 쓰곤 한다. 희화화해서 말하면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추억을 떠올려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추억은 누군가의 소중한 기억이자 자신이 쌓아온 것.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표현 그리고 가치관을 이루는 기틀이다. 그렇기에 꼭 좋고 즐겁다는 이유로 추억이 소중하다는 것은 아니다. 화나고 창피하고 슬펐던 기억들도 분명히 소중하다. 그러한 추억들이 사람을 더 성장시키기 마련이다.


 
추억이라는 건 정말 즐거웠거나 분했거나 실망했거나, 이런 식으로 네 기분이 움직인 일을 말하는 거야.
 

- 반짝반짝 추억 전당포 中
 

 

보다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되어도 지금 이 시기를 생각했을 때도 추억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게 매일 매일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이제 나는 추억의 소중함을 아는 어른이 되었으니까.

 

 

[빈민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