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늙은 개와 사람들이 있는 집

본가에 가면 왜 마음이 슬퍼질까
글 입력 2022.04.2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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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는 올해 열다섯 살이 된 늙은 개가 있다. 늙은 개는 절뚝거리며 천천히 걷다가 얼마 가지 않아 넘어지고, 넘어지면 홀로 다시 일어설 힘이 없어 짖는다. 그럼 아버지가 달려와 개를 일으켜 세운다. “그래도 얘가 옛날에 우리한테 참 많은 기쁨을 주지 않았느냐” 말하면서.

 

늙은 개는 혼자 있으면 바닥에 똥을 지르고, 힘이 빠져 똥을 눈 자리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는다. 희고 뽀얀 털에 연갈색 똥을 묻히고, 왈왈 짖는다.

 

그날 집에 갔을 때도 늙은 개는 똥을 바르고, 배가 뒤집힌 채 누워 있었다. 늙은 개는 몸에 힘이 빠진 채 내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고 있었다. 이제 늙은 개의 눈동자는 뿌연 회색빛이다. 옛날에는 그 투명한 눈부처에 내 얼굴이 비쳐 보여서, ‘크림아’, ‘크림아’ 하며 많이도 불렀던 그 이름을 이제 다시 부를 수가 없다.

 

본가를 한 주에 한 번 간다. 목요일마다 본가 근처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손님처럼 나를 반겨준다. 나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다시 조용히 나의 모든 것이 있는 면목동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어느 날에는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없다.


얼마 전에 어머니는 휴대폰 사기를 당했다. 이미 사라져 버린 휴대폰 매장에 전화를 걸었다가 KT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남자는 다음번에 휴대폰을 개통할 때 20만원 할인을 해드리겠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그건 “남들한테도 다 해주는 게 아니냐”고 맞받아친다. 남자는 어려운 용어를 섞어가며, 이건 당신만을 위한 특별한 할인임을 자꾸 강조한다.

 

아마도 어머니는 다음번에 휴대폰을 바꾸러 갈 때도 얼마간의 사기를 당할 것이고, 그 사실을 영영 모른 채로 지내다가 다음 휴대폰을 바꿀 때야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억울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예, 예를 남발하다가 전화를 끊겠지.

 

우리 어머니는 점점 늙어간다. 집에 갈 때마다 어머니 가게에는 아메이 물건을 파는 아줌마가 앉아 있다. 아줌마는 나에게도 “이거 하나만 설명할게”, 하며 새로 나온 립스틱과 친환경 세제에 대해 설명을 한다. 나는 곧바로 자리를 피하고, 어머니는 그걸 잠자코 들어주고 있다.

 

어느 날부터 우리 집 창고에는 아메이 치약, 아메이 샴푸, 아메이 콤부차 같은 것들이 쌓여갔고,어머니는 그것들이 좋아서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잘했어 엄마. 좋은 거라면 써야지.” 나는 잘했다고만 말한다.

 

아버지는 거실에 모로 누워 TV를 보고 있다. 저번 주에도 봤던 오징어 게임을 오늘도 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아버지는 남들과는 다른 고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향해, “너는 모르겠지만”, “너는 이런 걸 좋아할 수 없겠지만” 같은 말을 하며 홍상수 영화를 보고, 이문열 소설을 읽었다.

 

대학생이 되고,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고상한 영화와 책뿐이었다. 나는 “아빠는 모르겠지만” 같은 자세로 누워 그것들을 보았고, 아버지는 어느 날부터인가 나에게 고상한 취향을 뽐내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집에 있을 때는 그랬다.

 

아버지는 “딸년 대학 보내놨더니” 같은 말은 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하지만 그보다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대신 내가 만든 소설책을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며 “내가 너라면 이런 문장을 쓰지 않았을 테야”, 하고 읊조릴 뿐이었다.


문밖에서는 TV 소리와 함께 아버지 목소리가 들린다. “바퀴벌레 같은 새끼들이”로 시작하는 이야기.

 

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어머니는 “유진이 나온다, 유진이 듣는다” 말하고, 모른 척을 했다. 나는 웃으며 거실로 나간다. 아버지는 한참을 더 말하다가 조용해진다.

 

나는 잠자코 누워 있다가 아버지를 돌아본다. 아버지가 눈을 감고 있다. 나는 조용히 TV를 끈다. 어느새 눈을 뜬 아버지는 몸을 벌떡 일으키고, 다시 TV를 켠다. 우리 집이 TV 소리에 잡아 먹혀 버린 것 같다. 어머니는 TV 소리가 들리는데 잘도 잔다.

 

다음 날 새벽에 눈을 떴다. 어머니는 입을 허 벌리고 잠들어 있다. 그 옆에는 늙은 개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며 누워 있다. 나는 잠들어 있는 엄마 얼굴을 확대해 사진을 찍는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다음 주까지 엄마 생각을 조금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늙은 개의 잿빛 털을 가만가만 쓰다듬는다.


아침 일찍 짐을 챙겨 집을 나온다. 나의 모든 것이 있는 면목동으로 가기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는 본인만의 행복을 찾아 잘 살 것이다. 잘 살 것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하루만 더 자고 가면 안 되겠냐고 애원한다. 나는 마음이 너무 슬퍼서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오늘도 늙은 개와 사람들이 있는 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그 무엇도 책임지지 않은 채로, 그 무엇도 훌훌 털어 버리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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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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