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가의 내면 들여다보기 [도서/문학]

이찬혁의 '물 만난 물고기'
글 입력 2022.04.1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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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 노래는 2019년 발매된 악뮤(AKMU)의 정규앨범 '항해'의 타이틀 곡이다. 아직도 차트에 머물러 있을 정도로 유명하기 때문에 한 번쯤 길가에서라도 들어봤을 것이다.

 

조금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소설도 함께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책.jpg

 

 

출판사의 책 소개는 이렇다.

 

[앨범 발매를 앞두고 녹음 작업을 하던 선은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가로서의 삶이 지금 이곳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작업을 중단하고 1년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 수많은 예술가를 만났지만, 그가 기대하는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오만과 망상으로 가득했고, 하나같이 이상한 세계에 도취되어 있었다. 여전히 갈증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은 여행의 마지막 여정을 맞이하고, 깊은 밤 파도가 부서지는 갑판 한가운데에서 우연히 단발 머리를 한 여자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삶을 뒤흔들 만남. 남은 여정을 그녀와 함께하며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삶의 답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던 선은, 한편 그녀에 대한 깊은 의문과 함께 불안에 점점 휩싸이게 된다.]

 

 


 

 

옷 없이 걷고 싶어, 아무 상관 없이 시선

부끄러운지도 모르는 어릴 때로 돌아가서

 

'해야'는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이다. '선'도 '해야'와 함께라면 꽃이 피어나고 숲속에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유로워진다. 다른 사람들은 지나쳐버리는 갈대밭을 함께 발견하고 옷을 벗으며 뛰어다닌다. 마치 도화지에 작품을 그리듯, 시선 혹은 법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나는 음악이 없으면 바다로 나갈 거야." (해야)

"왜 하필 바다야?" (선)

"바다 소리가 가장 음악 같거든." (해야)

 

 


 

 

뱃멀미를 심하게 하던 '선'은 심한 파도에도 불구하고 '해야'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온다.

 

서술을 보면 '선'은 여행과 바람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평소 바다라는 자유를 갈망하던 '선'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파도에 휩쓸려 감춰왔던 자유, 즉 '해야'라는 속성을 드러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에서 비롯된 상상이 그를 환상적인 세계 속으로 이끌고, 더 나아가서는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예술가'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닐까.

 

"진정한 예술가는 자기가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야."

"선아, 거창한 걸 생각하지 마.

뱉은 말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으면 그냥 할 수 있는 만큼의 말을 하면 돼."

 

지금까지 '선'이 자신을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데에는 스스로 정한 규칙이 큰 몫을 차지했다. 뱉은 말을 다 지킬 수 없다는 두려움, 뱉은 말을 다 지키지 못했을 때 세간의 시선. 예술가라는 이름에 얽매인 모든 압박이 예술을 가두고 있던 것이다.

 

그런 '선'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모든 규칙을 벗어던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에게서 왔으면, 선아?

그래서 만약 내가 사라져도 언젠가 다시 너에게로 돌아간다면?"

 

'선'은 잠깐 잠든 사이 사라진 '해야'를 찾으러 정원에 들어간다. 이 정원을 그의 내면이라고 추측하였다. 그는 정원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더 이상 '해야'를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순간의 역할을 다 한 영감, 즉 '해야'가 자기 안에 존재함도 깨닫는다. 이제는 '해야'가 없어도 자유로운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내 이름을 기억해줘."

"기억하겠다고 대답해줘."

 

"난 여기서 작품이 될 거야."

그녀가 자유롭게 두 팔을 벌렸다.

"이건 말한 거고."

그리고 이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말을 이루어 보였다.

 

정원의 끝에서 '선'은 바다를 만난다. '해야'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달라고 말하며 그녀의 세상인 바다로 다시 돌아간다.

 

이 장면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녀를 잡으러 같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수면으로 올라오는 '선'의 묘사가 물고기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해야'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바다로 돌아간 동시에 '선'은 뭍으로 올라와야 했지만, 마치 물고기처럼 공기를 들이마신다.

 

 


 

 

한바탕 휩쓸고 간 폭풍의 잔해 속에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한 파도

비치는 내 얼굴, 울렁이는 내 얼굴

너는 바다가 되고 난 배가 되었네

 

가사처럼 '해야'는 바다가, '선'은 배가 되어 그 바다를 '항해'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에 비치는 얼굴을 통해 나르키소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결국은 그 안에서 순환하는 존재였다는 뜻이다. '선'이 바다를 항해하는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진 '해야'는 그에게 큰 자유와 예술과 작품으로 남았을 것이라 감히 짐작해본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선'은 노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부른다. 그리고 소설은 또 다른 항해의 시작을 암시하는 듯한 문장으로 끝난다.

 

문 앞에서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띠링.

 

저자이자 작곡가 이찬혁은 앨범 수록곡의 대부분을 군 복무 동안 만들었다고 한다. 한 달 정도 배를 탔다고 하는데, 아마 그 기간에 찾아왔던 영감을 '해야'라는 존재로 의인화시켜 소설로 펴낸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개인적인 해석이고 개개인의 감상은 다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항해' 앨범만 들었을 때와 소설까지 읽은 후에 들었을 때, 노래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게 와닿았던 기억이 있다. 혹 앨범을 감명 깊게 들은 사람이라면 소설도 함께 읽어보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우리가 노래하듯이

우리가 말하듯이

우리가 예언하듯이 살길

LIVE LIKE THE WAY WE SING

 

 

 

정예지.jpg


 

[정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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