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왜 스메르쟈코프였을까? [공연]

왜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가 아니라 스메르쟈코프였을까?
글 입력 2022.04.1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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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메르쟈코프>는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스핀오프 뮤지컬이다. (이때 ‘스핀오프’란 기존 작품에서 파생된 새로운 작품을 의미한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와 세계관을 공유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지난 시즌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공연이 인상 깊었던 지라 이번 <스메르쟈코프> 공연도 많은 기대를 안고 관람했다. 그리고 분명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스메르쟈코프> 역시 전체적으로 너무 만족스러웠다.

 

다만, 결코 친절한 극은 아니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도 상당히 어려웠는데 <스메르쟈코프>는 한층 더 난해하다. 특히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보지 않았거나 극에 대한 기본 정보를 모른다면, 사실상 극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본 글은 필자가 공연을 본 후 들었던 의문에 대한 나름의 답과 함께, 공연 <스메르쟈코프>를 조금 더 편하게 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를 이야기 하기에 앞서 간략하게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살펴보려고 한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원작으로 제작된 창작뮤지컬이다. 줄거리 자체는 아버지 표도르 까라마조프를 살해한 사람이 누구인지, 4명의 형제들을 중심으로 사건의 진실을 풀어 나가는 내용이다. 그와 동시에 작품은 신, 선과 악, 인간 본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는 4명의 형제 중 하인이자 사생아인 스메르쟈코프의 이야기를 다룬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버지라 여겨지는 표도르를 살해한 후 며칠 간의 긴 발작을 시작한 스메르쟈코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에서 긴 여행을 시작한다.

 

표도르의 제안으로 시작한 모스크바 요리학교부터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던 공동묘지까지. 산 자를 자백하게 만드는 고문 기술자부터 죽은 자의 고백을 들어주는 조시마 장로까지 수많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꿈인지 사실인지 모를 만남을 이어 나간다.

 

그 만남 속에서 그는 하나씩 깨달음을 얻어 나간다. 자신의 이름, 태어난 의미, 그리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까지.

 

  

[스메르쟈코프] 메인포스터.jpg

 

 

 

왜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가 아니라 스메르쟈코프였을까?


 

처음 공연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궁금했다. 왜 하필이면 스메르쟈코프일까? 비록 도스토옙스키가 사망하며 미완의 소설이 되었지만, 원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알료샤다. 원작을 생각한다면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후속작은 <스메르쟈코프>가 아니라 <알료샤>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작가는 왜 스메르쟈코프에 집중했을까?

 

스메르쟈코프가 표도르를 살해한 사건의 범인이라서? 단순한, 표면적인 이유의 접근은 적절하지 않을 듯 하다. 이전 작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는 끊임없이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지’ 그 사실 보다는, ‘누가 가장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을 지’ 그 마음과 이유가 더 중요하다고 외친다. 이번 <스메르쟈코프>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가 한 행위와 그를 둘러싼 사실이 아니라 스메르쟈코프가 극에서 가지는 의미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돌아보도록 한다.

 

필자가 본 스메르쟈코프는 ‘정의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기반으로 한다.) 4명의 형제 중 스메르쟈코프를 제외한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는 비교적 상징하는 바가 뚜렷하다. 드미트리가 감정, 욕망을 대표한다면 이반은 이성과 합리, 알료샤는 포용과 종교적 신성의 인물로 표현된다. 반면 스메르쟈코프는 그저 발작이 잦은 하인이자 사생아, 이반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스메르쟈코프가 표도르를 죽인 이유 또한 스메르 개인의 생각이라기 보다는 이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표현됐다. 결국 우리는 스메르쟈코프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이다.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는 “한 인물의 탄생기에 초점을 맞춰 현대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다중성을 담아냄”을 의도로 기획된 창작 뮤지컬이다. 우리에게도 존재할 양면성을 가진 인물이, 자신의 존재를 성찰해 가는 여정을 다뤘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가 선과 악, 성과 속, 즉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스메르쟈코프>는 보다 개인적 차원에서 인간 실존, 인간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

 

작가가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통해 순수와 혼란의 미성년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4명 중 단연 스메르쟈코프일 것이다. 특정 가치를 연상 시키지 않고 오롯이 개인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니 말이다.

 

 

 

왜 스메르쟈코프가 3명일까?


 

뮤지컬 <스메르쟈코프> 관람평을 보면 3명의 스메르쟈코프와 의식의 흐름 진행에 산만함을 느꼈다는 내용이 많다. 이해가 된다. 3명이나 되는 스메르쟈코프는 시종일관 무대 위에 있고, 느닷없이 무덤 관리인부터 요리학교 선생님, 고문기술자가 등장하는 식이다. 특히 스메르쟈코프를 제외하고는 한 배우가 두 개 이상의 역할을 연기하기에 혼동하기 쉽고, 워낙 특별한 맥락 없이 새 등장인물이 나와 극을 따라가기가 버거운 면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필자는 처음 극을 보며 왜 굳이 스메르쟈코프가 3명일까, 3명의 스메르쟈코프는 무엇을 의미할까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리고 각 장면을 보며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다. 보통 한 인물을 여러 명이 연기할 때는 각 사람에게 부여된 역할이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하지만 <스메르쟈코프> 만큼은 극을 보며 각 장면이나 인물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지 않을 것을 조심스레 권한다. 극의 진행방식처럼, 그저 의식의 흐름에 맡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실제 공연을 보면 3명의 스메르쟈코프들이 각각 의미하는 바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극 내내 서로 중첩되는 양상이 강하다. 필자가 본 회차는 공연이 끝난 후 ‘매핑 스메르쟈코프’라는 심층분석 토크쇼가 진행되어 이현정 안무감독과의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이현정 안무감독 역시 3명의 스메르쟈코프가 의미하는 바가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이 점을 고려해 안무를 창작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러니 3명이 각각 독립된 페르소나라고 이해하기 보다는, 스메르쟈코프의 무의식을 표현한 것이라 보는게 적절할 듯 싶다.

 

무덤 관리인, 요리학교 선생님, 고문 기술자 등 스메르쟈코프가 만나는 인물들과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극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결국 극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스메르쟈코프의 무의식일 뿐이다. 전체적인 흐름은 스메르쟈코프가 겪었던 사건을 회상하는 느낌이 강하지만, 기본적으로 무의식은 ‘비현실’ 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인물들은 스메르쟈코프의 무의식 속에서 ‘선택’된 사람들이다. 현실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스메르쟈코프가 던지는 물음, 혹은 그에 대한 답과의 연결 장치로 받아들이면 극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어찌되었든 극을 보는 동안 우리는 스메르쟈코프의 무의식 속에 있는 것과 다름없다. 무의식은 본래 무질서와 혼란, 환상의 공간이다. 체계와 규칙이 없는 진행이 낯설 수 있지만, 작품의 궁극적인 배경이 한 개인의 무의식인 점을 고려하면 극을 받아들이는 게 한층 수월할 것이다.

 

 

 

공연을 보내며


 

처음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무대세트에 크게 놀랐다. 거대한 석상, 소극장에서 보기 힘든 회전무대 때문이었다. 무대 회전 자체가 주는 엄중함과, 회전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시야가 공연을 훨씬 풍성하고 신비롭게 해주었다. 회전 무대를 제외하고도 공동묘지 디자인 등 전체적으로 무대가 빈 곳 없이 꽉 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반적인 연출과 안무도 인상 깊었다. 3명의 스메르쟈코프가 닮은 듯 다른 듯 어우러지며 무대를 자유롭게 만들어 간다. 흰색과 검은색, 무채색의 ‘천’을 통해 사물과 감정을 표현하는 식이다. 특히 안무 중 흰색 천을 사용해 나그네를 연출한 장면은 정말 감탄하면서 보았다.

 

다만 음악은 아쉬웠다.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만의 넘버가 떠오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음악은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 따왔다. 기존 넘버의 분위기를 가져오고, 본래 선율을 일부 변주한 넘버가 많다. 이 때문에 오랜만에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추억할 수 있어 반갑기도 했고, 연결점이 느껴져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극의 후반부,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메인 넘버 ‘발작’이 나올 때는 전율이 느껴 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넘버가 없었다.

 

전체적인 음악의 분위기가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 기반하는 점은 어쩌면 당연하고 뮤지컬의 완성도를 올리는 가장 쉽고 훌륭한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극의 절정에 이르는 넘버에서조차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메인 넘버가 그대로 쓰이다 보니, 정작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넘버가 없다. 음악이 특별히 부족했다거나 별로라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브라더스 까라조프>스러워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스메르쟈코프>는 애초에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스핀오프 작으로 마케팅 됐고, 이번에 초연되는 공연이다 보니 이전 작의 기억이 짙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그늘 아래서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전 작품의 이름에서 벗어나 <스메르쟈코프>라는 작품 자체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색채를 덜어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번 초연 공연도 훌륭했지만 넘버 측면을 보완하면 훨씬 훌륭한 공연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어쨌든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공연이었다. 이번이 초연인만큼 계속 다듬어 다음 시즌 때 더 좋은 공연으로 다시 관람하고 싶다.

 

 

[이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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