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통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불의 마차 - 연극 'IS GOD IS'

어느날 떨어진 '신'의 명령이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
글 입력 2022.04.16 18:4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당신은 '신'을 믿는가? 만약 신을 믿는다면, 당신에게서 '신'의 존재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혹시 신을 통해 삶의 모든 방향을 정하고, 신이 내린 명령을 따르고자 모든 선택과 행동의 기준을 신에게 맡기고 있지는 않는가?

 

여기, 어느날 떨어진 '신'의 명령으로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연극 IS GOD IS다.

 

 

*

스포주의

 

 

IsGodIs poster 370X520mm.jpg


 

<시놉시스> : 미국 북동부 원룸 아파트. 화상흉터를 가진 쌍둥이 러신과 아나이아는 죽은 줄만 알았던 엄마의 편지를 받는다. 쌍둥이가 찾아간 곳에서 엄마는 꺼져가는 숨을 붙들며 자신을 이렇게 만든 남자를 잔인하게 죽여달라는 부탁을 한다. 쌍둥이는 당황하지만 이내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두 사람은 남자를 찾아가는 길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연극을 보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아동가족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본 연극의 시놉시스가 가족의 갈등과 폭력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극에서 그려진 가족의 문제가 왜 'GOD(신)'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되는지, 가족의 문제가 발생한 원인과 현상은 어떤 전개로 그려질지도 궁금했다.

 

연극을 다 보니, 우선 임산부나 심약자 등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하는 사람은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하게 됐다. 연극의 전개 과정 속에서는 가족 간 분노와 폭력, 갈등의 피날레가 끊이지 않고 엔딩까지 계속되기 때문이다. 살인과 폭력, 방화, 복수 등 끔찍한 내용이 줄줄이 이어나오는 전개 과정 속에서, 마치 "고통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달리는 불의 마차"를 직면해야 한다.

 


2021_1117_IS Good is_공연_058.jpg

 

 

본 연극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에게서 편지가 오자, 쌍둥이들은 십여 년만에 어머니를 찾아가게 된다. 온몸이 화상의 흉터로 번져있어 곧 생을 마감할 것만 같은 어머니는 입을 뗀다. "너희들의 아버지를 죽여다오."

 

아버지를 죽이라는 명령의 바탕에는 오래 전에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쌍둥이의 아버지는 그의 아내, 즉 쌍둥이의 어머니에 인정받지 못하고 살았다는 이유로 그녀의 몸에 불을 붙게 해 목숨을 앗아가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쌍둥이인 두 딸들 또한 어머니와 같은 공간에서 화상을 입었고, 그 흔적은 몸에 고스란히 남겨졌다.

 

쌍둥이의 아버지는 그 사건 이후 흔적을 감추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 또 다른 쌍둥이를 낳았다. 전처와 달리 새 부인의 쌍둥이들은 모두 아들이었다.

 

러신과 아나이아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신(God)'으로 칭하고, 신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는 여정을 떠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신이 명령한 아버지의 '피'를 가져오기 위해(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되려 쌍둥이들은 비이성적 사고와 비합리적 신념에 휩싸여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가고 만다. 특히 내성적이고 소심하지만 공감 능력이 뛰어난 쌍둥이 동생 아나이아와 달리, 저돌적이고 충동적인 쌍둥이 언니 러신은 아버지를 알고 있는 지인, 아버지의 새부인, 아버지의 쌍둥이 아들을 살해하며 브레이크 없는 '폭력의 되물림'을 지속하고 만다.


 

2021_1117_IS Good is_공연_208.jpg

 

 

그렇다면 극속에서는 왜 끔찍한 폭력과 살인이 이어나왔던 것일까. 필자는 연극을 다 본 후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궁금했다. 앞으로 살펴볼 다양한 관점과 해석은 아동가족학의 학문을 바탕으로한 시선을 통해 풀어낼 것이기에, 연극 내부의 요소보다는 스토리와 원인에 대해 집중할 것이다.

 

 

 

보웬의 다세대 중심 가족치료이론에서 본 연극 IS GOD IS


 

본 연극에서 일어난 가족의 문제를 '가족치료'의 이론 중 하나인 '다세대 중심 이론'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다세대 중심 이론에서는 가족을 '정서적 단위'로 보며, '가족의 정서과정은 역사를 통해 지속되며 이전 세대에서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문제는 세대를 거쳐 문제가 되기 쉽다'고 본다.

 

"우리 삶에 만성불안(chronic anxiety)이 항상 존재한다. 만성불안의 감소는 오직 분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라는 말이 있다. 분화란 쉽게 말해 한 개인이 가족 구성원 또는 타인으로부터 자율성을 가지는 동시에, 독립적인 주체로 자리할 수 있는 상태다. 정신내적으로는 사고와 감정을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이며, 대인관계적으로는 자신과 타인 사이의 분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연극에 따르면 '신(God)'이 내린 명령에 의해 쌍둥이들은 자아분화를 이루지 못한 채 삶이 온통 감정에 의해 지배되는 파국을 맞이한다.


극 중에서 '신'(God)이 지시한 명령, 즉 아버지를 죽이라는 소원은 사실 전제부터 잘못되었다. 물론, 엄연히 전남편으로부터 상해를 입고 생명을 앗아갈 정도의 위험까지 처해있기에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분노가 쌓여있는 신(God)이지만,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죽이라는 명령은 부모 체계의 갈등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자녀체계가 부모 체계로 개입을 하게 되는 '완전한 역기능'을 유발했기 대문이다.

 

보웬의 다세대 중심 이론 중 '핵가족 정서체계'에 따르면, 미분화된 가족이 싸우거나 혹은 관계가 멀어지면 가족의 불안 수준이 높아지며 배우자나 자녀에게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문제가 증상으로 나타난다. 혹은 너무나도 강한 가족결속력은 개개인에 정서적 의존성과 불안을 야기하고, 심각한 융합 상태를 이끌기도 하는데 러신과 아나이아는 바로 이러한 환경 속에서 맹목적으로 믿는 '신(God)'을 위해 목숨을 바치듯 폭력의 구렁텅이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2021_1117_IS Good is_공연_228.jpg

 

 

다세대 중심 이론에서 살펴볼 또다른 개념은 '사회적 정서과정'이 있다. 이는 사회에서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높을 때 융화의 압력이 강해지며, 집단의 분화수준이 낮을수록 사회구성원의 이기심과 공격성, 회피성이 높아진다는 개념이다.

 

본 연극의 배경은 미국 '흑인사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차별과 억압을 받은 흑인여성들의 이야기다. 오랫동안 사회적 압력과 폭력에 노출된 흑인 사회에서는 수많은 트라우마와 잔혹한 현실 속에서 투쟁해왔다. 극 속에서는 사회적 차별의 이야기라든지 가족 갈등에서의 더 근본적인 거시적 배경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는' 의무와 명령은 한낱 개인을 억압했던 거대한 힘을으로 대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두 쌍둥이 딸이 끝끝내 마주한 아버지의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왔다. "한번이라도 기를 펴고 살고 싶었어. 그런데 너희가 그걸 이해할 거라 기대하진 않는다." 즉 이를 통해 아버지 또한 사회뿐만 아니라 가정 내에서도 충분한 존중과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끊임없는 차별과 갈등의 굴레에서 역기능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개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번도 공감받지 못한 이들이기에


 

2021_1117_IS Good is_공연_177.jpg

 

 

이 외에도 필자의 눈과 귀, 그리고 가슴을 울린 대사가 있었다. 아버지를 죽이려는 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끊임없이 살해하는 쌍둥이 언니 러신에게 아나이아가 "왜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냐"는 말을 했을 때, 러신의 대답이었다. "내가 왜 공감을 해줘야 하는데?"

 

어쩌면 아나이아는 선천적인 성격인지, 혹은 심성 때문인지 태생적으로 타인의 아픔에의 공감을 더 잘했던 것일까. 어머니가 불에 타는 당시 고통스러워 했을 때 러신보다 앞서서 필사적으로 어머니를 구조하기 위해 애쓴 자는 아나이아였다. 하지만 러신은 지나온 유년시절에의 아픔과 상처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세상과 타인에 대한 불신과 분노만을 축적해왔다. 그래서 공감이라는 가치 따위가 그의 삶에서 어쩌면 역겹기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 이 둘이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가 극명히 달라졌을 때, '타인에게의 공감'이라는 주제에서 러신과 아나이아는 뾰족한 날을 세우게 된 것이다. 한번도 충분한 공감과 사랑을 받지 못한 러신이 다른 사람을 공감할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는 말을 할 때도, 아나이아가 언니를 제지할 때도 그들 모두 각자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이들의 대립을 마주보는 필자 또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떤 말이 옳은 것일까?' 하지만 끝내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와 어른들로부터 보호받고, 교육받고, 사랑을 받아야 하는 쌍둥이들이기에, 한번도 공감받지 못한 이들이기에. 이들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결국 옳고 그름은 그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사회와 가정의 미분화된 수준 때문이었다.

 

 

 

리뷰를 마치며


 

사람은 누구나 갈등을 겪으며 살아간다.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평생을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과연 어떤 갈등과 대립하고, 그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무수히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다음 두 가지 가치만은 함께 지켜보자고 권하고 싶다.

 

사회적인, 인종적인, 계급적인 차별을 너머 개개인의 인격과 개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존중',

나와 네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이해'.

 

존중과 이해의 삶 속에서 잔혹한 비극이 점차 줄어들고, 비합리적인 갈등과 폭력이 마침내 힘을 잃는 훗날의 우리를 그려보며 글을 마친다.

 

 

 

신지예 컬쳐리스트.jpeg

 


[신지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12303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E-Mail: artinsight@naver.com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