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리지 않는 이름, 뮤지컬 '스메르쟈코프'

어느 사생아의 존재 증명기
글 입력 2022.04.1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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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나누고 공유해야 할까. 공연 관람을 마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온통 급작스럽고, 튀어 오르고, 뒤섞이며 모호하고 난해한 이 작품은 겉과 속의 모양새가 마치 극 중에서 '스메르쟈코프'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발작'이라는 키워드 같았다.


우선 나는 이 작품의 바탕이 되는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관람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물론 그 때문에 더욱더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의도를 적절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이 작품이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관람했던 관객에게도 혹은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를 온전히 처음 만난 관객에게도 유독 낯설고 어려운 작품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친절하고 혼란스러운 작품을 어떻게 소화해 내야 할까' 하는 질문에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답해보고자 한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나처럼 처음 이 작품을 관람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작품의 낯섦과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꾸미기]123.jpg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는 2018년 초연되었던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스핀 오프 작품이고, 환상 문학의 거장 EH 호프만의 환상 공포소설 <모래 사나이>의 모티브를 중심으로 각색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아버지의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4명의 형제들의 심리를 따라가며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와 함께 삶과 죽음, 선과 악 등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최후 작품이자,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로 일컬어지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원작으로 하는데 특히 인간의 모순과 내면의 혼돈, 영혼의 갈증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이가 있는지 관객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작품의 시놉시스는 아래와 같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SYNOPSIS

 

러시아 지방의 지주인 표도르 까라마조프는

평생 방탕하게 욕정을 쫓으며 살아온 호색한이다.


첫 번째 아내로부터 드미트리,

두 번째 아내로부터 이반과 알료샤를 얻었으나

모두 내팽개치고 자신의 아들로 추정되는 

사생아, 스메르쟈코프를 하인으로 부리며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누군가에 의해 표도르가 살해당한다.

표도르와 유산 문제로 다투다 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공언하고 다닌 드미트리는 유력한 용의자로 수감되고,

모스크바에서 유학 중이던 이반, 견습 수도생인 알료샤,

하인 스메르쟈코프까지, 아버지를 향한 증오와 혐오가 있던

네 형제들은 점점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4형제 중 사생아이자 하인인 막내 '스메르쟈코프'가 바로 뮤지컬 <스메르쟈코프>의 주인공이다.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는 원작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찾기 힘든 '스메르쟈코프'의 러시아 유학 시절부터, 아버지의 죽음 직전 모스크바로 돌아온 후까지의 시간을 통해 과연 '스메르쟈코프'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지 보여준다.


특히 세 명의 스메르와 조시마, 쌍둥이 형제 그리고 광기와 환상을 첨가하여 현대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다중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스메르쟈코프'라는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더욱 간결하고 강렬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럼 이쯤에서 뮤지컬 <스메르쟈코프>의 시놉시스를 살펴보자.

 


[꾸미기][스메르쟈코프] 메인포스터.jpg


 

뮤지컬 <스메르쟈코프> SYNOPSIS


아버지라 여겨지는 표도르를 살해한 후 

며칠간의 긴 발작을 시작한 스메르쟈코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에서 긴 여행을 시작한다.


표도르의 제안으로 시작한 모스크바 요리학교부터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던 공동묘지까지,

산자를 자백하게 만드는 고문기술자부터 

죽은 자의 고백을 들어주는 조시마 장로까지,

수많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꿈인지 사실인지 모를 만남을 이어나간다.


그 만남 속에서 그는 하나씩 깨달음을 얻어나간다.

자신의 이름, 태어난 의미, 그리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까지. 

  

 

'스메르쟈코프'는 자신의 아버지 표도르를 살해했다. 이 지점을 얼마나 촘촘히 이해하고 있는가가 관객들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되는데, '스메르쟈코프'와 아버지 그리고 4형제간의 관계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스메르쟈코프'의 깊은 내면을 다룬 이 작품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내가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관람하지 않아서 깊이 있는 이해와 관계성 파악이 불가했음에도 뮤지컬 <스메르쟈코프>에서 아주 인상 깊었던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름'에 관한 것이다.

 

극 중에서 '스메르쟈코프'는 자신의 이름이 '수증기'를 뜻한다고 말한다. 수증기는 기체 상태의 물을 일컫는 말인데, 액체인 물, 고체인 얼음과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사생아로써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집안에서 하인으로 살아온 '스메르쟈코프'의 캐릭터와 일생을 함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된다.

 

또한 '불리지 않는 이름'은 생명력이 없고,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으니 까라마조프가에서 '스메르쟈코프'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존재의 의미가 매우 미약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게다가 '고통은 살아있는 증거'라고 말할 만큼, 그렇게라도 '살아있음'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증명하고 싶었던 '스메르쟈코프'가 마치 수증기 같은 삶을 살아야 했을 때 느꼈을 괴로움과 절망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만하다.

 

결국 '스메르쟈코프'의 탄생은 '존재의 증명'에 가깝다. 그는 스스로 '악'이 되면서까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 증명하고, 인정받고 싶어 했고 너무나 살고 싶어 했다. 물론 그것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관객들이 이 작품을 통해 '스메르쟈코프'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공감함으로써 그의 존재 가치가 조금쯤은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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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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