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러분은 어떤 글씨를 갖고 있나요? [문화 전반]

익숙하지만 잊지말아야할 손으로 쓰는 글씨
글 입력 2022.04.1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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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드는 것보다 자판을 누르는 것이 더욱 익숙해진 때, 강의의 내용을 수기로 작성해 제출하라는 교수님이 한 분 계셨다. 3시간을 쉬는 시간 없이 하는 수업에 직접 손으로 써서 제출하라니. 과제를 내주는 교수님이 많았지만, 그만큼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매일 가지고 다니던 노트북을 넣어두고, 찾지 않은 것이 오래인 연필을 한 자루 꺼냈다. 그 흔한 연필깎이도 없는 터라 커터칼을 꺼내 삐뚤빼뚤 깎아대기를 한참. 이상한 연필이 만들어내는 글씨는 악필이라는 단어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손글씨를 써본 적이 언제인가 생각해 보면, 가끔 시험에 나오는 서술형 문제가 다였다. 하지만 손글씨를 언제 시작했나 생각해 보면, 내 기억의 한계 그 이전부터였다. 처음으로 글씨를 배우던 때,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손글씨를 갖기 시작했다. 이렇게 컴퓨터와 노트북을 활용하는 것이 익숙해지기 전, 좀 더 나은 글씨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우리와 함께 자란 우리의 글씨는 점점 커지는 몸과 마음에 따라 같이 커졌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오래 쓰지 않은 물건에 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오래 쓰지 않은 글씨에도 먼지가 쌓여버렸다. 한국뇌연구원에 따르면,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손으로 글씨는 쓸 경우, 더 높은 이해력과 기억력을 가질 수 있다. 기술력으로는 최고를 달리고 있지만, 남을 이해하며 감정을 나누는 감성이 부족해진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손글씨 되살리기


 

쓰는 사람의 마음이 가득 담긴 손글씨는 그렇게 점점 잊혀 가는 듯했지만, 다시 살리기 위한 활동들도 눈에 띄게 활발하다. 다만,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손글씨를 많이 쓰자는 취지가 아니다. 바로 손글씨와 함께 거기에 담겨 있는 감성을 살리자는 취지의 캠페인들이다. 사견이지만 감성이 부족하다는 시대에 이런 취지의 캠페인들은 참으로 달갑다. 감성을 담은 손글씨란 오직 나만의 감성과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을 수 있는 매개이니 말이다.

 

[한글한글 아름답게]

이런 캠페인에는 대표적으로 네이버의 '한글날 손글씨 공모전'이 있다. '한글한글 아름답게' 캠페인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캠페인은 나의 손글씨를 컴퓨터상에서 쓸 수 있는 일명 '폰트'로 만들어준다.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손글씨가 AI라는 기술을 만난 것. 앞서 기술이 최고조를 달리고 있지만, 감성이 부족하다는 현 상황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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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각자의 이야기를 모아 만든 폰트는 무려 109개에 달한다. 딸을 위하는 마음이 가득 담겼던 메모장 속 엄마의 손글씨부터 누군가를 향한 진심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던 손글씨까지. 109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손글씨에 담겨 있었다.

 

가끔 인터넷에는 부모님이 연애할 때의 연애편지가 올라온다. 한 자 한 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듯 보이는 손편지에서는 사랑의 감정이 가득 묻어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우리는 설령 비슷한 경험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한글한글 아름답게의 109가지 폰트들도 그러하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우리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감성을 느끼며, 내가 가진 손글씨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손글씨 문화확산 캠페인]

교보문고에서 진행하는 이 캠페인은 깊게 생각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널리 늘리기 위해 시작했다. 2015년부터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이 캠페인은 네이버의 캠페인과 마찬가지로 손글씨 대회를 열며, 1명의 손글씨를 폰트로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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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네이버의 캠페인은 각자의 이야기를 손글씨로 담았지만, 이 캠페인의 경우,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의 구절을 손글씨로 담아낸다. 놀랍게도 이 손글씨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들을 가장 잘 나타낸다. 우리는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감명 깊게 읽었던 문장이 모두 다르다. 또한, 같은 문장을 읽었더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모두 다르다. 그리고 그런 각기 다른 감상들이 그들의 손글씨에 잘 드러나 있다.

 

 


여러분은 어떤 글씨를 갖고 있나요?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일찍 일을 나가시는 부모님과 대화하고 싶어서 거울에 메모를 붙이고 갔었다. 다녀올게 혹은 오늘은 무엇이 먹고 싶어 같은 일상적인 것들. 그리고 거기에는 엄마의 짧은 답장이 달렸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엄마의 글씨체는 참 예쁘다. 일반적인 어른들의 글씨 같지만, 자세히 보면 동글동글한 글씨가 참 다정하다. 마치 엄마의 다정함을 꼭 빼닮은 듯하다.

 

글씨체는 그 글씨를 쓰는 사람을 닮는다. 다정한 사람은 다정한 글씨를 쓰고, 시원한 사람은 시원한 글씨를 쓴다. 연필보다는 자판이 더 손에 익은 시대이지만, 나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은 모두 같은 글꼴이 아닌 내 손으로 쓰는 글씨이다. 손 편지가 낯간지러운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닐까. 나의 모든 것, 나의 모든 마음이 드러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감성이 부족하다고 이야기되는 시대에 우리의 감성은 더욱 표현될 필요가 있다.

 

나는 과연 어떤 글씨를 갖고 있을까? 망설이지 말고, 급히 깎은 연필이 삐뚤빼뚤해도 흰 종이를 펼쳐보자. 그 안에 그려내는 까만 글씨는 오로지 내가 가득 담긴 나만의 글씨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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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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