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 달간 SNS를 끊어보았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4.1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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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대단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다. 인터넷상으로 얼굴을 마주하기 꺼릴 만큼 불편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오래도록 연을 이어가고 싶은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취미를 나누고, 하루의 일상을 가볍게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SNS만 한 곳이 없었다. 나는 관심이 가는 작품이나 소소한 자랑거리가 생길 때마다 쉴 틈 없이 SNS(주로 인스타그램)에서 떠들어대곤 했다. 핸드폰 뒤편으로 쌓인 메신저들은 애써 무시한 채 하루에도 몇십 번씩 SNS를 들락거리면서 말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건 작년의 한 해를 되돌아본 연말 즈음이었다. 여느 때처럼 나의 일상을 거리낌 없이 SNS에 전시하던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을 마음껏 쏟아낸다거나 타인의 일상을 부지런히 챙겨보는 일은 이미 일과가 되어있었지만, 그 모든 일련의 행위가 'SNS 중독'이라는 사실은 미처 자각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 중독의 신호탄을 지금껏 애써 무시해왔는지도 모른다. 잘못된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는 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난 언제나 겁쟁이였다.


내가 지독한 SNS 중독자라는 사실을 물리적으로 깨달은 건 핸드폰으로 ‘앱 별 하루 이용 시간’ 통계를 스치듯 지나쳤을 때였다. 근래 들어 SNS 사용량이 조금 늘어난 것 같더라니, 인스타그램 사용시간이 하루에도 몇 시간을 넘기는 날이 허다했다. 일상의 단편을 공유하기 위해 시작한 SNS가 이제는 하루의 상당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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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ket Research Telecast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직전 학기에 여러 일이 겹쳐 번 아웃(burnout)이 왔다. 끊임없이 어딘가로 도피하고자 했던 나는 정처 없이 가상의 공간을 헤매고 다녔다.


SNS로 즐겁게 일상을 공유하고 나서도 늘 나보다 잘난 이들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는 어쩜 그리 글 잘 쓰는 인물들이 많던지, 그 앞에서 급속도로 초라해진 나의 글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끊임없는 자기 비교와 자아비판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 괴로워했다. 그렇지 않은 걸 알면서도 인터넷 세상에서는 모두가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기에 그 지나친 긍정성이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온갖 번뇌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고, 한동안 잠잠하던 식이장애가 다시 찾아왔으며, 짙은 우울감과 염세가 온종일 나를 뒤덮었다. 나는 자기혐오의 굴레 속에서도 여전히 SNS를 놓지 못했다. 저 자신을 더욱 나락으로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계속해서 우울과 무기력의 늪으로 켜켜이 침잠해갔다.


 

 

단짝 친구, SNS



물론 SNS가 늘 내게 독인 것만은 아니었다.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감사하게도 과분한 인연을 많이 만났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새로운 인연이 싹트기도 하였다. 더하여 학생 때부터 머릿속의 온갖 생각을 토해내는데 바빴던 나의 가상 세계는 현실의 그 어느 곳보다도 견고해 보였다. 온통 ‘나’로 가득한 그 공간을 좋아했다. 그곳엔 비틀린 사회를 향한 날 선 비난과 조소가 오갔고, 미래를 향한 은근한 기대와 꿈들이 떠다녔으며, 좋아하는 책과 영화와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마디로 내게 SNS란 현실 세계로부터의 훌륭한 도피처이자 내밀한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하여, 오랜 세월을 함께한 단짝 친구 같은 존재를 몇 개월이나 떠나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몇 개월간의 SNS 중단은 곧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친한 친구나 한두 번 얼굴을 마주친 지인들, 심지어는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는 이들과도 SNS상으로 나름의 끈끈한 연대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영화 계정이었다. 나의 치기 어린 생각을 토해내던 학창 시절의 계정은 고이고이 묻어둔 채 나는 대학교에 들어와 이전처럼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짧은 감상 글을 새 계정에 올리기 시작했다. 인상 깊게 본 영화에 대해 열심히 떠들었을 뿐인데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나의 글에 관심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인연에 낯섦을 느끼면서도 마치 그것이 당연한 순리라는 듯 나는 점점 더 많은 이들과 작품 취향을 공유했고, 대화의 지평을 확장해갔다.


그래서 처음에는 두렵기도 했다. 마음 맞는 이들과의 일상적인 소통이 얼마나 짜릿하고 즐거운 일인지를 알기에 내가 이 세계를 잠시라도 떠날 수 있을까, 예전처럼 일주일 정도만 계정을 비활성화했다가 금세 되돌아오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SNS를 하면서도 왜 이따금 마음이 허하고 우울해지는 걸까, 하고. 그런데 아뿔싸. 돌이켜 보니 극심한 자기혐오와 우울증을 앓는 시기에 결정적인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존재가 바로 SNS임을 뒤늦게야 자각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SNS에서는 모두가 행복한 존재로 비추어지기 마련이니까.


한병철 작가의 저서 『타자의 추방』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오늘날 우리는 경계 없는 소통에 우리를 내맡긴다. 디지털 과잉소통에 우리는 거의 정신이 팔려있다. 그러나 소통의 소음은 우리를 덜 고독하게 해주지 않는다. 어쩌면 이 소음이 우리를 언어 창살보다 더 고독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_p.59


오늘날에는 새로운 형태의 소외가 생기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세계나 노동으로부터의 소외가 아니라, 파괴적인 자기소외, 즉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다. 이 자기소외는 다름 아닌 자기 최적화 및 자기실현과 더불어 생겨난다. 성과 주체가 자신을, 예컨대 자신의 몸을 최적화해야 할 기능적 객체로 지각하는 순간, 이 주체는 자신으로부터 서서히 소외된다. 부정성이 없기 때문에 자기소외는 의식되지도 않은 채 진행된다.


자기착취뿐만 아니라 신체도식의 장애로 나타나는 자기소외도 자기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거식증, 폭식증, 대식증 등은 심각해져가는 자기소외의 증상들이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몸을 더 이상 감지할 수 없게 된다. _p.62-63



SNS 중단 시기에 읽었던 글이라 의미심장하게 와 닿은 대목이었다. 저자가 위 본문에서 언급한 자기착취와 식이장애 역시 내가 1년 전부터 앓고 있는 고질병 중 하나이기에 더욱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의 안녕



SNS를 끊은 첫 주의 소감은 다름 아닌 ‘후련하다’였다. 나를 얽매고 있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친한 친구들, 지인들과 마음 편히 소통하지 못한다는 점이 자못 아쉽게 다가왔지만, 곧 ‘나의 일상을 공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이전보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여하간 매일같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했던 이전의 삶에 비하면 이제는 무언가를 공유해야겠다는 압박과 강박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새로운 취미



고작 석 달간 SNS를 끊었다는 것만으로 무언의 변화가 있었느냐 묻는다면, 아주 미묘한 변화가 생겨나긴 했다. 우선, SNS를 대체할 새로운 취미이자 단짝 친구가 생겼다. 바로 ‘책’이다.


SNS를 하는 기간에도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지속해서 책을 찾아본다는 사실을 알았고, 엄마 역시 매년 꾸준한 독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으므로 이참에 내가 본격적인 독서를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근 몇 년간 핸드폰을 켜기만 하면 습관적으로 SNS를 드나들었으니, 해당 시간을 때울 새로운 대상이 필요했던 참이었다. 그래서 전자책을 폈다. 밥을 먹을 때, 대중교통을 탈 때,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때 등등. 그저 시간과 공간만 허락한다면, 나는 어디서나 책을 펼쳐 들었다. 예전 SNS를 하던 때처럼 말이다.


독서의 세계는 영화에 처음 빠져들었을 때만큼이나 심란했다. 읽을수록 조바심이 났다. 아니, 세상에 좋은 책이 이렇게나 많다고? 이 책을 이제라도 접해서 다행이다. 역시 작가님이 유명한 이유가 다 있었구나. 한국 문학계는 가히 최고다! 식의 혼잣말을 매일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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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막 시작한 초반에는 유명 북클럽 중 한 곳을 구독하고, 이곳에 게재되어 있지 않은 책의 경우 모조리 전자책을 통해 구입했다. -전자책이 더 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의 신분으로 점점 책값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결국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도서관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간 전자책에 너무 익숙해져 온 터라 알게 모르게 종이책에 대한 거리감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별 기대를 품고 가지 않았던 동네 도서관은 예상외로 나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걸어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이 도서관은 몇 년 전에 막 지어진 신식 도서관으로, 엄마가 자주 애용하는 곳이기도 했다. 깨끗하고 깔끔한 시설은 물론이며 무엇보다 새로 지어진 도서관 치고 고전부터 현대문학까지 다양한 가짓수로 찾아볼 수 있는 책들이 많아 나는 첫날부터 이 공간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도서관에 방문한 날로부터 2주마다 빠짐없이 책을 빌려오고 있고, 글을 올리는 오늘은 격주마다 돌아오는 도서 반납일이다.


올 초에 세운 목표 중 하나가 ‘책 50권 읽기’였는데, SNS를 끊은 1분기 만에 해당 목표를 벌써 달성해 버렸다. 뿌듯한 마음이 들긴 했으나 이렇게 빨리 끝내버린 것이 못내 아쉬워 결국 ‘책 100권 읽기’로 목표를 재설정했다. 부디 SNS를 다시 시작하더라도 지속적인 책 읽기와 한 해 목표는 꼭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다른 변화가 있다면, 책을 읽으면서 특정 장면에 감명을 받아 무작정 새로운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더디게 배워가는 중이다. 1분기 만에 새로운 취미가 2개나 생겼으니 그간 SNS를 끊은 점에 후회는 없다. 더하여 끊임없는 자기학대와 식이장애로부터도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점에서 이제는 다시 SNS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애당초 하루에 적정 시간만 인터넷을 하고, 스스로 사용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SNS 중단을 고려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예부터 심각한 SNS 중독자였으므로 나름의 용기와 절제가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복귀!



며칠 전, SNS를 다시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나의 복귀를 환영해주어 기뻤다. 좋아하는 이들과의 대면은 늘 설렌다. 그것이 비록 인터넷 대면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몇 달여 만에 방문한 인터넷 세상은 역시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언제든지 떠나고, 돌아올 수 있는 가상 세계의 미덕이 아닐지. 다시 중독 증세가 나타난다면 또다시 SNS 중단 선언을 할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글을 쓰고, 마음 맞는 이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딱 적정 수준의 즐거움만을 SNS에서 누리고 싶다. 한 번 빠져들면 지나치게 몰입하는 오랜 성향 탓으로 나는 여전히 SNS가 무섭고, 조심스럽다.


반가운 이들과의 인사는 ‘그럼에도’ 내가 SNS로 돌아온 첫 번째 이유일 테다. 부디 SNS가 앞으로도 나의 삶을 잠식하는 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행복을 선사해주는 무해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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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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